텅빈 외야석 이제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리는 아마야구에 외야까지 만원관중을 이루는 광경은 보기 어려워졌다. 내년이면 이 또한 사치스런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 텅빈 외야석 이제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리는 아마야구에 외야까지 만원관중을 이루는 광경은 보기 어려워졌다. 내년이면 이 또한 사치스런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 이호영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아마추어야구를 대표해 왔던 고교야구의 열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준결승 이상의 비중 있는 경기를 제외하고는 동대문야구장의 텅 빈 관중석이 꽤 익숙해졌다.

이렇게 위기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고교야구가 올해는 커다란 암초까지 만났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모든 대회가 끝나는 11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

11월 철거 운명, 잠시만 뒤로...

환유의 풍경(Motonymic Landscape)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 모델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환유의 풍경을 선택했다. 공대위는 이 모델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많은 비용(약 3500억원)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환유의 풍경(Motonymic Landscape)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 모델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환유의 풍경을 선택했다. 공대위는 이 모델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많은 비용(약 3500억원)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서울시청 보도자료


현재 동대문야구장은 지난 13일 벌어진 서울시 추계리그 결승전 이후 올해 예정된 대회가 모두 끝났다. 애초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모든 대회가 끝난 11월 중반 꼼짝없이 철거되어야 하는 운명인 셈.

하지만 당장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4개 주요대회(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를 위해 사용할 대체구장 건립이 차질을 빚으면서 동대문운동장 철거는 잠시 내년으로 미뤄졌다.

여기에는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 철거 제안과 7개 대체구장 건립에 합의했던 동대문야구장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입김이 작용했다. 비대위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가 주축이 된 서울시와의 합의기구다.

비대위의 한 인사는 "동대문운동장 철거는 어디까지나 약속했던 7개 대체구장이 제대로 건설될 때 가능한 것이다"면서 "현재 상황으로는 내년에 열리는 대회 운영에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철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비대위와는 전혀 다른 뜻이 있는 집단도 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와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바로 그 대상. 그들은 비대위가 대체구장만 지어주면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과 달리 원천적인 철거 반대와 개조를 통한 보존을 외치고 있다.

공대위는 8월 16일 체육시민연대를 비롯해 문화연대, 문화유산연대, 전국노점상총연합,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전국빈민연합,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빈곤사회연대 등의 단체가 서울시의 일방적인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결성한 비정부기구(NGO) 위주의 연대다.

당사자간 합의, 제대로 되고 있나?

그간 공대위는 중요한 사항들이 서울시와 비대위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내 왔다. 공대위의 최인기 전국빈민연합 사무총장은 "서울시가 주장하는 합의는 일종의 기만적 합의다"며 운을 띄웠다.

이어 최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쓴소리를 했다.

"서울시가 KBO나 대한야구협회를 파트너로 선정해서 마치 야구계의 모든 합의를 끝낸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 문화재 시민위원회도 다양한 인사를 포섭하고 기구를 구성해 마치 문화계의 전체 인사가 동의한 것처럼, 이를테면 합의의 수준을 높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노점상을 대표하는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 발전협의회도 유명무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 측에서 사회적인 명분을 만들려고 한 것이 뚜렷하다.

서울시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런 일로 300여 회 논의를 했고 아무런 장애 없이 완전한 합의를 이끌었다고 호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작 저항하거나 싸운 주체는 없었다. 또한, 아직도 동대문축구장 안팎에 위치한 노점상의 생존권은 추상적인 개발이라는 환상에 완전히 묻혀 있다."


시청 앞 1인 시위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은 14일 시청 앞에서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1인 시위를 펼쳤다.

▲ 시청 앞 1인 시위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은 14일 시청 앞에서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1인 시위를 펼쳤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제공

실제로 야구계를 대표한다는 비대위의 경우 야구계 안팎으로 완전한 합의를 이끌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다.

야구계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협은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공대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은 세 차례 있던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기자회견의 전면에 나섰으며 14일 낮 12시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나 총장은 일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선수협은 동대문운동장 보존을 위한 모금운동과 촛불시위 등 다각적인 대응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21일 접촉한 선수협의 한 관계자 또한 "지금 당장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공대위에 협조하고 추후 선수협 차원의 대응을 할 것이다"고 살짝 귀띔했다.

이에 대해 이병수 체육시민연대 사무차장은 "야구계의 일부 인사들이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뒷얘기를 꺼내놓았다. 이 차장은 "체육계는 특유의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있어 야구계의 인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체육인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7일 진행하려던 동대문운동장 보존을 위한 1인 시위도 위와 같은 문제로 취소됐다"고 얘기했다.

이날 열릴 예정이던 1인 시위는 한국 여자농구를 주름잡았던 박찬숙(48)씨가 나서기로 되어 있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돌연 취소되어 궁금증을 낳았다. 1인 시위에 대해서는 이미 각 언론사를 상대로 취재를 요청하는 보도자료까지 나간 상태였다.

"차 있는 사람만 가서 보면 되겠네요"

이 위에 야구장을? 서울시는 문화재인 구의 정수장의 일부를 파괴하고 흙을 덮어 간이 야구장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 이에 건축 관계자들은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

▲ 이 위에 야구장을? 서울시는 문화재인 구의 정수장의 일부를 파괴하고 흙을 덮어 간이 야구장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 이에 건축 관계자들은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 ⓒ 문화유산연대 제공


당장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다고 가정할 경우 대안은 구의 정수장에 건설될 간이 야구장이 거론된다. 문제는 구의 정수장이 문화재로 등록된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이 구의 정수장의 일부를 흙으로 덮고 야구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우려를 나타냈다.

"구의 정수장은 물 때문에 일반 사람들 접근을 못하게 한다. 신분증을 맡기고 사전에 신고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지금 단계에서도 사람들 못 들어가게 하면서 야구장을 만든다는 게 말이 되나. 공사 대상인 1·2공장과 불과 10m 떨어진 3·4공장은 물 만드는 시설이라 굉장히 중요하다."

나무 없는 공원도 있나요?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 31일 열린 문화연대 월례포럼에서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모델 <환유의 풍경>에 대해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 나무 없는 공원도 있나요?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 31일 열린 문화연대 월례포럼에서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모델 <환유의 풍경>에 대해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 이호영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집행위원장도 "구의 정수장 보존은 동대문운동장 보존과 직결된다"며 문제의식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현장을 찾았는데 정수장 침전조 위에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올라가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미 노후화가 심각한 시멘트 구조물에 이 같은 중장비가 올라가 매몰 작업을 하면 문화재로 등록된 구의 정수장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이 위에 건설되는 야구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예정되어 있는 수순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 계획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시가 <환유의 풍경>이라는 당선작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만을 앞세웠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환상적으로 보이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이것이 잔디를 심어놓은 공원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건축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없는 공원이 어디 있나. 우리도 1억원 정도만 있으면 이렇게 설계할 수 있다. 현실성이 거의 없는, 또 막대한 비용(약 3500억원)이 들어가는 건축 계획을 세우기는 쉽다."

한편 이병수 차장은 당장 내년에 각종 전국대회를 유치해야 하는 구의 정수장의 접근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구의 정수장에 야구장이 완공된다고 한들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다. 최악의 교통편이라서 차 있는 사람만 오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또 주차시설도 마땅치 않다.

더구나 당초 계획한 2만석 규모도 아닐 뿐더러 400석 규모의 소규모 야구장이 될 예정이다. 이래 가지고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아마야구가 얼마나 더 위축되겠나."


구의 정수장 가보셨어요? 이병수 체육시민연대 사무차장은 지난 31일 열린 문화연대 월례포럼에서 구의 정수장의 접근성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나타냈다.

▲ 구의 정수장 가보셨어요? 이병수 체육시민연대 사무차장은 지난 31일 열린 문화연대 월례포럼에서 구의 정수장의 접근성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나타냈다. ⓒ 이호영


이렇게 대체구장이 지지부진하자 이제는 지방구장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서울, 그것도 노른자위라는 동대문에서도 흥행에 고전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지방에서 주요대회를 개최한다면 전반적인 아마야구에 대한 침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마야구의 현실이 안타깝다. 아울러 80년의 역사를 간직한 동대문운동장이 체육인들의 한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한 채 서울시의 신개발주의에 밀려 허무하게 철거되지는 않을지 크게 우려된다.

덧붙이는 글 아래의 주소로 야구관련 제보 받습니다.
http://aprealist.tistory.com
toberealis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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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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