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입단을 했으니 이 선수가 프로야구에서 뛴 지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그사이 팀 이름이 바뀌었고 같이 뛰는 동료들도 대부분 바뀌었다. 어떤 이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은퇴를 했고 또 어떤 이는 더 좋은 대우를 받고 팀을 떠나갔다.

 

그들처럼 특출나지도 못했기에 눌러앉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어쨌든 이 선수는 줄곧 그 자리를 지켜왔다. 무려 16년의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를 지켜온 선수, 바로 두산의 내야수 안경현이다.

 

자리잡는 데만 9년이 걸린 안경현

 

 16년 동안 두산의 내야를 지켜온 안경현

16년 동안 두산의 내야를 지켜온 안경현 ⓒ 두산 베어스

안경현은 1992년 원주고-연세대를 거쳐 2차 지명 3라운드라는 비교적 높은 순번에 OB에 지명돼 프로에 들어왔다.

 

당시 OB가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을 정도로 팀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3루에는 임형석(92년-타율 .290, 홈런 26개)이라는 확실한 주포가 있었고 1루에도 김형석(92년-타율 .281, 홈런 16개)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3루수 자원이었던 안경현이 빠른 시간 안에 주전으로 올라서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안경현은 입단 5년만인 1996년이 돼서야 125게임에 출장, 안타 107개(19위)를 때려내 타율 .251을 기록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경현은 1998년 갓 입단한 후배 김동주와 3루 자리를 경쟁하게 됐다. 데뷔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으니 입단하자마자 첫 해에 24개의 홈런과 89타점을 기록하며 중심타자로 자리잡은 김동주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기껏 자리를 잡았나 싶었더니 다시 밀려난 것이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두산으로 이름이 바뀐 이듬해였던 2000년 안경현은 2루수로 전직을 했다. 김동주가 버티고 있는 3루보다는 이종민, 홍원기와 경쟁을 해야 하는 2루가 그나마 버텨내기는 수월해 보였다.

 

2루로 전직을 한 안경현은 '더 이상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는지 그해 중순까지 무려 .350이 넘는 고타율을 기록하며 두산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었다. 안경현은 그해 114경기에 출장 0.277의 최종 타율을 기록했다.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기적 같은 홈런

 

2000년은 두산의 타이론 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가 무려 99개의 홈런을 합작해내던 해였다. 이들의 활약으로 드림리그 2위(전체 승률도 2위였다)를 기록한 두산은 매직리그 1위 LG와 한국시리즈 진출을 놓고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같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 라이벌 팀의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이 펼쳐진 것이다.

 

3승 2패로 두산이 앞선 채 맞이한 6차전. 9회 2아웃까지 두산은 3-4로 뒤지고 있었다. LG가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플레이오프 승부는 7차전에서 가려지는 상황.  LG는 경기를 확실하게 매조지하기 위해 잘 던지던 김용수를 내려 보내고 6번째 투수 장문석을 마운드에 올렸다. 타석에는 안경현이 들어섰다.

 

주자도 없는 투아웃. 경기는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 보였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안경현이 풀카운트에서 장문석이 던진 직구를 받아쳐 그대로 좌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극적인 동점 홈런을 때려내며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결국 두산은 연장 11회 심정수의 결승 홈런으로 LG를 5-4로 누르고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특별할 것도 없어 보였던 안경현이 두산을 구한 영웅이 된 것이다. 이날 양 팀은 무려 14명의 투수가 등판을 하는 혈투를 벌였으며 승리투수의 영광은 10회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에이스' 박명환에게 돌아갔다.

 

비록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에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안경현은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되었다. 안경현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100안타를 넘기는 등 6년 동안 모두 786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연평균 131개의 안타를 때려낸 것이다.

 

2001년 이전 9년 동안 때려낸 안타가 558개(연평균 62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2003년에는 .333라는 고타율로 타율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안경현 생애 첫 3할 타율이었다.

 

놓칠 수 없는 절박한 이름이 되다

 

 두산의 '마지막 보루'가 되다.

두산의 '마지막 보루'가 되다. ⓒ 두산 베어스

당시 안경현은 우리 나이로 34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말하는 회춘이 아니었다. 안경현은 20대의 한창 나이 때도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경현은 세월을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흔치 않은 선수다. 조금 일찍 기량이 만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그는 두산을 떠나지 않는 선수가 된 것이리라.

 

안경현은 2003년 두산과 4년 15억 원의 FA계약을 체결하고 두산에 남았다. 최고의 2루수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는 이적 시장으로 나서서 자신의 가치를 시험하는 대신 잔류를 선택했다.

 

적지 않은 나이가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이지만 유난히 선수들의 이적에 박탈감을 느끼는 두산 팬들에게는 마지막 보루가 된 것이다.

 

2000년 안경현과 함께 플레이오프 기적을 만들었던 선수들 가운데 심정수와 진필중은 트레이드 됐으며 우즈와 정수근, 박명환은 다른 팀으로 떠나갔다. 그들은 누구나 탐낼 만한 출중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두산에서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거의 마지막 남아 있던 스타 김동주도 FA로 시장에 나온 상태다. 김동주가 떠나갈 것인지 여부는 미지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안경현은 내년에도 또 그 자리를 변치 않고 지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 보루'는 절박함이다. 이것마저 무너지면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는 간절함이다. 또한 마지막 보루는 믿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이것이 남아있으니 아직은 해볼 만하다는 그런  희망이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안경현은 1차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지만 그의 백넘버는 선수들의 모자 위에 그리고 팬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안경현은 한국시리즈 그라운드를 지켰다.

 

이제 두산 팬들에게 떠나보낼 수 없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그런 절박한 이름이 된 안경현. 그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 내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그라운드를 지켜줄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역할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안경현은 그렇게 그라운드에 나설 것이다.

2007.11.09 14:3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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