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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일이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구단의 지원만 놓고 보면, 현대는 삼성의 상대가 될 수 없지만, 경기 내용은 정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不知其數)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삼성과 현대의 맞대결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때 '재계 라이벌'로 불려 야구판에서도 대리전 양상을 띨 때만 해도 '라이벌'로 불리기에 충분했지만, 2000년대 들어 두 팀의 명암은 엇갈렸다.
현대가 여러 개의 그룹으로 분리되면서 어려움을 겪자 구단 운영도 어려워진 반면, 삼성은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2000년대 들어 탄탄대로를 걸어왔지만, 시즌 성적이나 포스트시즌에 있어서는 현대와 삼성 모두 한국 시리즈 세 번의 우승을 일궈내면서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두 팀 이외에 한국 시리즈 우승은 2001년의 두산이 유일하다.
그러나 두 팀의 맞대결은 오히려 현대가 삼성을 압도하면서 팬들에게 묘한 재미를 주고 있다. 과연 두 팀의 관계는 라이벌일까? 악연일까?
| | ▲ 현대 시절의 현 김재박 LG 감독 | | ⓒ 서민석 | |
올스타급의 '호화 멤버' vs 짜임새있는 '조직력'
삼성의 경우는 'FA계의 큰 손'으로 불릴 만큼 공격적인 투자가 돋보이는 팀이다. 2000년대 이전 항상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삼성은 우승의 한을 풀기위해 FA 제도가 도입되면서 공격적인 투자로 타 팀의 주축 선수들을 거침없이 영입해 이름값만 놓고 보면, 올스타에 가까운 진용을 갖춘 셈이다. 조계현-이강철-김기태-심정수-박진만 등이 삼성이 영입한 대표적인 선수들이었다.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는 2002년-2005년-2006년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결실을 맺었다. 물론, FA 시장에 선수들의 몸값에 거품을 늘리고, 과도한 투자를 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결과가 중요한 프로 스포츠에서 '우승'은 이러한 비난을 잠재우는 면죄부였다.
반면, 만년 약체였던 태평양을 인수해 1996년부터 프로야구 무대에 뛰어든 현대도 모기업이 잘나갈 때는 과감한 투자로 박경완-조규제 등 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쌍방울의 선수들을 영입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모기업의 재정난이 심해지면서 도리어 FA 선수들을 타 팀에 넘겨주고 받은 보상금과 현대그룹 시절 같은 계열이었던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근근이 구단을 운영하는 딱한 처치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현대는 특정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한 플레이가 아닌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앞세운 작전 야구로 강자의 위치를 지켜냈다. 1998년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일궈낸 이후 2000년,2003~2004년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루면서 부잣집 삼성 못지않은 성적을 내곤했다.
이렇듯 현대가 잘 나간 이유는 역시 객관적인 전력 이외에 당시 현대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과 선수들의 팀플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호화 코칭스태프의 선수 조련 능력과 선수 보는 안목이 타고난 스카우터 등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었다. 지난 시즌 역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정규시즌 2위(70승55패1무)라는 '이변'을 연출하는 등 현대의 돌풍은 계속됐다.
결국, 삼성과 현대는 이렇듯 완전 다른 팀 컬러와 재정력을 가졌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시리즈 우승을 나눠하면서 최강팀으로 군림한 것이었다.
| | ▲ 현대에서 삼성의 주축 선수가 된 박진만 | | ⓒ 서민석 | |
맞대결에서 유독 강한 현대
'재계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어색해졌지만, 다른 배경을 빼고 맞대결의 경기내용만 놓고 보면, 두 팀은 여전히 라이벌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삼성 입장에서는 현대와의 만남이 악연일 것이다.
창단 이후 계속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이 LG로 이적했고, 시즌 전 삼성이 '우승 후보'였고, 현대가 '꼴찌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전적에서는 현대가 10승 5패(8월 10일 현재)로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난 4월27일부터 29일까지의 대구 3연전을 현대가 삼성과의 모두 쓸어 담으면서 현대가 중위권으로 도약한 반면, 삼성은 3연패의 여파로 7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명암은 엇갈렸다.
이렇듯 현대가 삼성에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감'일 것이다. 멘탈 스포츠인 야구에서 경기 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는 것과 미리 지고 들어가는 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접전 끝에 4승3무2패로 현대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 결국 이때의 승패가 지금까지 현대의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타격에서는 삼성이 앞서지만, 마운드와 선수들의 작전 수행능력에서는 김재박 감독 시절 철저히 득점을 짜내는 방법에 단련된 것도 스타플레이어는 많지만, 짜임새는 다소 허술한 삼성에 강한 이유가 될 것이다.
| | ▲ 현대의 장원삼과 김시진 감독 | | ⓒ 서민석 | |
삼성 남은 경기에서 현대 넘어설까?
이렇듯 현대가 일방적으로 앞선 맞대결이었지만, 삼성 입장에서도 올 시즌 남은 현대와의 경기에서 분위기 반전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 상황이다. 당장 후반기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번번이 현대에게 발목이 잡힌다면, 중위권 이상의 도약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0일부터 대구에서 열리는 현대와의 3연전은 삼성에게 아주 중요했다. 이러한 중요성을 잘 알았던지 삼성은 10일 경기에서 현대 에이스 김수경을 상대로 0-2으로 뒤지던 6회 말 김창희의 홈런포와 밀어내기 볼넷-상대의 폭투 등으로 대거 4득점에 성공. 5-4로 역전승을 거둬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더불어 삼성은 시즌 성적에서도 3위(49승 44패 3무)로 올라섰고, 써머리그(13승 6패) 우승에 '매직넘버 1'을 남기면서 우승에 근접했다. 그야말로 '1석 3조'의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도 9회 말 2사후 삼성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정성훈이 솔로포를 작렬하면서 삼성을 끝까지 괴롭혔다.
과연 삼성이 남은 시즌에서 최근의 상승세를 앞세워 '현대 징크스'를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랫동안 삼성만 만나면 강한 모습을 보여 왔던 현대가 시즌 성적이나 객관적인 전력에 관계없이 삼성을 제압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두 팀간의 세 경기를 주목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홀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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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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