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프로야구의 챔피언은 OB 베어스였다. 당시 OB는 그해 25홈런, 101타점을 기록해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차지하며 프로야구 MVP에 선정된 홈런왕 김상호를 비롯해 이명수,김형석, 김종석 등이 중심 타선을 이끌었으며 하위 타선에 포진된 19살 신예거포 심정수가 21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상하위 균형 잡힌 타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5년 챔피언 OB를 이끈 투수들 훌륭한 타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OB의 1995년을 이끈 진정한 힘은 투수진에 있었다. 에이스였던 김상진은 27경기에 등판을 해 209 이닝(2위), 17승(2위) 7패, 평균자책점 2.11(3위), 탈삼진 159개(3위)를 잡아내는 수준급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95년의 김상진이 놀라웠던 것은 무려 13번의 완투(1위)를 했으며 그 가운데 8번을 완봉승(1위)으로 장식했다는 것이다.(1995년 20승을 거두며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LG의 이상훈은 3번의 완봉승을 기록, 김상진에 이어 완봉승 부문 2위에 올랐다.) 김상진과 함께 선발진을 이끌었던 투수는 권명철이었다. 권명철은 당시 28게임 193 2/3이닝을 투구하며 15승 8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 또 다른 에이스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다. 이밖에도 OB 원년우승의 주인공 '불사조' 박철순이 9승(2패)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으며 그해 중앙대를 졸업하고 입단을 한 신인 진필중 역시 중간과 선발을 오가는 전천후 활약으로 투수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당시 OB의 주전 마무리 투수는 44게임에 등판, 6승 3패 15세이브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한 김경원이었다. 그리고 김경원과 함께 OB의 마운드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또 다른 투수가 한 명 있었다. 바로 3년차 신예 투수 이용호다. 이 투수를 빼놓고는 OB의 95년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불펜 에이스' 이용호...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하고 OB에 입단을 한 이용호는 94년, 2승 2패, 평균자책점 2.15를 기록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으며 입단 후 3년이 지난 95년, 일취월장 한 기량을 선보이며 OB의 불펜을 책임지게 된다. 이용호는 95년 40게임에 등판 해 3승 5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44게임에 등판을 한 마무리 투수 김경원이 73 2/3이닝을 던진 반면 이용호는 40게임에서 무려 101 2/3이닝을 던졌으니 실질적인 불펜 에이스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 시절 '불펜 에이스'라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보직이었는지 이용호는 보여주었다. 95년은 48게임에서 69이닝을 던지며 30세이브를 따낸 김용수(LG)와 48게임에서 109 1/3이닝을 던지며 33세이브를 따낸 선동열(해태)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분명 투수의 분업화는 이루어졌지만 투수들의 어깨관리는 여전히 요원하던 시기였다는 말이다. 당시 OB의 감독이었던 김인식(현 한화 이글스)감독은 박빙의 상황이나 중요한 경기에서 이용호를 7번이나 3이닝 이상 마운드에 세워 놓았다. 그러나 이용호는 선동열처럼 노련하게 견뎌내지 못했다. 선동열은 시속 150Km가 넘는 직구만으로도 얼마든지 타자들을 상대할 수도 있었고 유연한 어깨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용호는 그런 빠른 직구도 유연한 어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중고신인 이용호는 자신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몸 상태가 안 좋다고 등판을 거부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이용호는 1995년 OB의 마운드를 지켜냈다. 그렇게 무식하게 던진 끝에 이용호는 OB를 우승시켰다. 이용호는 신예 마무리 투수로 각광을 받았지만 아무도 이 젊은 투수의 어깨를 우려하지 않았다. 이용호의 1995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이용호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사람들에게 알렸고 팀도 우승을 했으니 야구 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고의 시즌을 보낸 이용호는 다시는 마운드에서 정상적으로 공을 뿌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용호라는 이름을 기억해 준 것도 1995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인 1996년 이용호는 40 1/3이닝 동안 무려 36개의 4사구를 허용하며 평균자책점 4.24를 기록했다. 이용호는 바로 전년에 OB의 우승을 이끈 투수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망가져 있었다. 더 이상 '불펜 에이스' 이용호가 아니었다. 이후 이용호는 2000년까지 4년 동안 겨우 20이닝을 갓 넘기는데 그치며 팀에서 방출당했다. 이용호는 2002년 LG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단 1이닝을 던진 것을 마지막으로 한 많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용호가 1995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OB의 우승이 아니었다. 이용호는 앞날이 창창한 20대의 젊은 유망주가 어떻게 마운드에서 사라지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에 아쉽게 사라진 투수가 어디 한 둘인가. 이용호는 그저 그런 수많은 투수 가운데 한 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런 수많은 투수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용호의 1995년을 기억해내야 한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이용호가 마운드에 오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망각'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요즘 프로야구판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1995년의 이용호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홀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