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의 팀 야탑고의 에이스

2004년 7월 1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제5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 분당 야탑고가 지난 대회 우승팀 신일고를 11-7로 물치치는 파란을 연출하며 결승에 올랐다.

▲ 황금사자기에서 야탑고를 결승으로 이끈 윤석민
ⓒ 황금사자기 공식 홈페이지
97년 창단 이후 번번히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며 황금사자기 본선에 겨우 두번 오른 것이 전부인 '무명' 야탑고가 결승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4강까지 무려 세 경기를 연속 콜드게임으로 따낼 정도로 야탑고의 기세는 무서웠다.

그러나 야탑고는 결승에서 만난 덕수정보고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에이스 윤석민이 더 이상 온전하게 공을 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8강전과 4강전에 이틀 연속으로 등판하며 힘을 소진해 버린 윤석민은 0-2로 지고있던 결승전 3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투혼을 보였지만 이미 어깨는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윤석민은 4회와 5회 연속으로 홈런을 허용하는 등 3점을 내주고 6회 힘없이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윤석민의 꿈과 함께 68회 황금사자기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황금사자기가 한창 무르익던 2004년 6월 30일, KIA 타이거즈는 2005년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식에서 1라운드(전체 6순위)에 최고구속 147km의 강력한 패스트볼을 던지며 야탑고 돌풍의 중심에 서있었던 투수 윤석민을 지명했다.

고교시절 혼자 마운드를 이끌다시피 했던 윤석민이었지만 프로에서는 계약금 1억3천만원을 받고 입단을 한 수많은 유망주 가운데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입단 전부터 떠들석하게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아닌 이상,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투수가 기회를 잡기란 쉽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면에서 윤석민은 행운아였다.

2005년 KIA의 마운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 마무리로 내정된 신용운이 계속되는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5월 초순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5패째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지자 신인답지 않는 안정된 투구를 하던 윤석민에게 중간계투로 뛸 기회가 찾아왔다.

5월 10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처음으로 마무리로 등판을 해 깔끔하게 세이브를 따낸 윤석민은 12일 현대전에서 6-5로 앞선 9회 1사 1, 2루 상황에서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장타 하나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마운드에 오른, 얼굴에 젓살도 채 가시지 않은 19살 어린 투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 가운데로 공을 뿌리는 배짱을 부리며 시즌 두 번째 세이브를 터프 세이브로 따냈다.

승리를 지켜냈지만 무모한 승부였다. 내야수 김민철의 호수비가 없었다면 채종국의 타구는 결승 안타가 될 수도 있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같았던 윤석민은 데뷔 첫해에 3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4.22라는 성적을 남겼다. 신인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윤석민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20살 윤석민 '명품'을 던지다

프로에서의 1년을 경험한 윤석민은 무섭게 진화해가고 있었다. 살아남는 법을 깨달은 어린 호랑이에게 2년차 징크스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2006년 초반 KIA의 마무리는 LG에서 이적해온 장문석이었다. 그러나 그해 KIA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는 윤석민이었다. 2006년 윤석민은 150km가 넘는 강속구와 더블어 또 하나의 주무기를 장착했다. 윤석민이 장착한 구질은 슬라이더였지만 예사로운 슬라이더가 아니었다.

윤석민의 슬라이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변화의 폭이 아니라 바로 구속이었다. 윤석민이 던진 슬라이더는 한때 강속구 투수들이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의 기준이었던 140km를 넘나들었다. 처음 윤석민의 슬라이더를 접한 사람들의 입에서 "KIA의 투수가 지금 던진 구종이 뭐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마구와 같은 슬라이더였다.

150km가 넘는 빠른볼에 140km의 슬라이더. 바로 선동열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로 만들어준 그 조합이었다. 20살 윤석민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아련하게 남아있던 '대투수'선동열을 불러내고 있었다. 윤석민은 선동열이 그랬듯이 타이거즈의 뒷문을 철통같이 걸어잠갔다.

2006년 윤석민은 마운드에서 쉬지않고 공을 뿌려대며 결코 강한 전력이 아니었던 KIA를 기어코 포스트시즌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63경기에 등판을 해 구원 투수의 한계와도 같은 94 2/3이닝을 던진 윤석민의 어깨는 2년전 황금사자기 결승을 앞둔 야탑고의 에이스 윤석민처럼 지쳐가고 있었다.

윤석민은 그해 가을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한화의 이범호에게 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또 다시 윤석민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불살라 버린 윤석민은 마지막 언덕을 넘을 힘이 없었다. 윤석민의 2006년은 그렇게 진한 아쉬움과 함께 저물어 갔다.

'에이스' 윤석민의 특별한 고집

▲ 2007년 KIA의 에이스로 거듭난 윤석민
ⓒ KIA 타이거즈
프로 3년째인 2007년, 윤석민은 더 이상 마무리 투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선발 로테이션만 지키는 투수가 아닌 당당히 KIA의 에이스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윤석민은 25일 현재 무려 12패(5승)를 당하며 올 시즌 가장 많은 패전을 당한 투수다. 전체 2위에 해당하는 평균자책점 2.82를 기록하며 11번의 퀄리트스타트를 달성한 윤석민을 사람들은 '불운의 에이스'라고 부른다.

12승을 하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윤석민이 12패를 당하자 사람들은 사상 첫 평균자책점 2점대-20패 투수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민은 자신이'불운의 에이스'로 불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시즌 초반 3경기에서 18.1이닝 동안 단 4자책점만을 허용하고도 3패를 기록한 윤석민은 4번째 선발 등판 경기였던 4월 22일 두산전에서 9이닝 무실점의 완봉승을 거두고서야 시즌 첫승을 따낼 수 있었다. 윤석민이 올 시즌 승리를 따낸 다섯 번의 경기에서 허용한 실점은 단 한 점이다.

24일 롯데와의 경기를 제외하면 이전까지 윤석민은 1점이라도 실점을 하면 승리를 포기해야 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윤석민은 5승을 따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윤석민이 가지고 있는 에이스의 본능이다.

2점도 뽑아주지 못하는 타자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윤석민은 자신이 실점을 하지만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진 팀을 구해낼 수 있다는 말도 안되게 희박한 확률에 승부수를 던졌다. 윤석민은 그렇게 다섯 번이나 승리를 따냈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불운이라는 거대한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치열한 몸부림을 하고있는 윤석민에게 '불운의 에이스'는 결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다.

항상 마지막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에이스였지만 윤석민은 혼자만 정상을 향해 올라가지 않았다. 정상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동료들에게 도전하는 것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 그들의 끈을 자신의 어깨에 묶어버리는 승부사가 바로 윤석민이다. 정작 자신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쓰러지지만 기어코 정상의 문턱까지라도 그들을 올려놓고야 마는 것이 윤석민의 고집이다.

앞으로도 윤석민은 'KIA의 부활'이라는 무거운 끈을 자신의 어깨에 동여메고 힘차게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운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에이스'윤석민의 투구는 그래서 좀 더 특별하다.
2007-07-25 08:34 ⓒ 2007 OhmyNews
윤석민 KIA 타이거즈 야탑고 황금사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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