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경 기자] 지난 3월 배유나(17·수원 한일전산여고 2학년)를 만났을 때 그는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17세 소녀는 꿈을 이뤘다. 배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소망한 태극마크를 단 것이다.



ⓒ 여성신문
여고생이 국가대표에 뽑힌 것은 김화복(73년), 지경희(85년), 김연경, 이소라(이상 2005년)에 이어 역대 5번째로 매우 이례적인 경우. 배유나는 처음 성인대표팀에 뽑혀서 참가한 2006세계그랑프리 여자배구대회(8월 16일~9월 10일)에서 한국팀의 주공격수(레프트)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선수권대회(11월)와 아시안게임(12월)을 향해 더 높이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가을 하늘을 닮은 배유나를 수원 한일전산여고 교정에서 만났다.

"국내 대회에 만족하지 않고, 국제 대회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배구강국 12개 팀이 참가한 2006 세계그랑프리대회에서 한국 여자배구는 2승 7패를 기록, 9위에 머물렀다. 폴란드(3-2)와 태국(3-0)에 거둔 2승이 전부. 나란히 5, 6위를 차지한 중국, 일본의 성적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진다. 절망 끝에 선 한국 여자배구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보는 건 '젊은 피' 배유나를 발굴했기 때문이다.

배유나는 '걱정 반, 기대 반' 심정으로 지난 7월 20일 국가대표팀 훈련에 합류했다. 하필이면 세계그랑프리에서 한국팀의 첫 상대는 이번 대회를 3연패한 브라질. 세계 최강팀과 첫 대결을 한 소감은?

"정말 세계의 벽이 높구나, 느꼈죠. 무엇보다 높이와 파워에서 열세라는 걸 절감했어요."

하지만 고교 2년생인 대표팀 '막내'는 겁이 없었다. "저는 어리잖아요. 자신 있게, 과감하게 하려고 했어요." 그런 과감성은 갈수록 빛을 발했다. 한국팀이 5연패 후 폴란드전에서 귀중한 '1승'을 거둘 때 그 중심에는 배유나가 있었다. 그는 팀 최다인 16득점을 폭발시켰다. 첫 승에 목말랐던 한국팀 선수들은 승리가 확정되자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울먹거렸다.

"우리도 하면 되는구나, 우리도 이길 수 있구나 싶었죠."

그러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아쉬운 경기도 있다. 이번 대회 준우승팀인 '장신군단' 러시아(9월 1일)와의 일전.

"수비가 잘 되고, 러시아가 범실이 많아서 해볼만 했어요."

한국은 풀세트 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대어를 낚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몸을 내던지는 '투혼수비'는 관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득점왕(79득점)을 차지한 '거포' 가모바(2m2)와 붙어본 느낌은?

"'내가 신장이 저 정도 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했죠. 헤헤." 역시 당찬 새내기답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두 번 싸운 '숙적' 일본에 모두 0-3으로 완패했다. 최근 일본전 7연패, 역대전적 42승 64패로 크게 뒤져 있다. 하지만 배유나는 주눅 든 기색 없이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수년 전 세대교체를 단행한 일본은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거고요. 반면 저희는 지금 세대교체 중이거든요. 이번 대회는 대표팀 훈련량이 부족해서 초반엔 애를 먹었지만 갈수록 조직력이 좋아졌어요. 앞으로 일본은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배유나의 트레이드마크는 긴 팔로 스피드 있게 때리는 스파이크. 이젠 제법 노련미까지 붙었다.

"공격할 때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상대 블로킹 벽을 이용하는 걸 배웠어요."

배유나가 처음 대표팀에 발탁됐을 당시 주변에선 김연경(흥국생명), 김민지(GS칼텍스) 등 프로선배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땜질용 선발'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태극 마크를 다는 게 소원이라던 17세 소녀는 이제 더 큰 꿈을 품고 있다.

"일단 같은 포지션(라이트 공격수)인 황연주 언니랑 주전 경쟁해서 이기고 싶고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딸래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금 사냥'에 나서는 한국팀에 희망이 샘솟는다. 순간 서늘한 벤치에도 햇살이 비쳤다.

"전국체전 3연패 못할 것 없죠"
여고배구 명문 수원 한일전산여고



제87회 전국체전이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1주일간 경상북도 15개 시·군에서 열린다. 배유나가 활약하고 있는 '여고 배구 최강' 수원 한일전산여고(교장 황명석)는 올해 전국체전 3연패를 노리고 있다.

수원 한일전산여고는 95년 창단한 이후 숱한 대회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한 해 3관왕만도 4차례. 97년 3관왕을 시작으로 2001, 2004, 2005년에 잇따라 시즌 3관왕에 올랐다. 2006년에는 종별배구선수권대회(5월), 중고연맹회장배(7월) 결승에서 모두 전주 근영여고를 꺾고 우승했다.

좋은 성적만큼 국가대표도 다수 배출했다. 한유미(현대)·한송이(도로공사) 자매를 비롯, 김연경, 황연주(이상 흥국생명), 김수지(현대) 등 스타 선수들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는 배유나를 비롯해 총 4명(김연경, 황연주, 한송이)이 대표로 발탁됐다.

매년 꾸준히 성적을 내는 비결은 대부분의 선수가 중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어왔기 때문. 12명의 선수 중 김설이(원주 북원여중)를 제외하곤 모두 안산 원곡중, 수일여중 출신이다.

물론 여자팀 지도경험이 풍부한 코칭스태프(감독 박기주, 코치 차해원)의 지도력도 한몫 한다. 수비와 리시브를 강조하는 지도철학 덕분에 선수들의 기본기가 탄탄한 것이 강점이다. 수원 한일전산여고는 여고팀 중에선 유일하게 매년 프로스펙스로부터 용품 지원(3000만~4000만 원)을 받고 있다.



2006-09-21 19:5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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