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란 무엇인가?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서스펜스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라기만 할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 시간이 다 돼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무의미한 대화라도 관객의 주의를 더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그런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좀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 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코너) 쉽게 말하면 '서스펜스'라는 것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과도 통합니다. 곧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사람들이 그것을 전혀 짐작도 못한 채, 일상적인 행동에 충실 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두 손 놓고 지켜봐야만 하는 '아는 사람'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곧 '서스펜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히치콕의 영화는 대부분 일상 속의 공포를 다룬 영화들이며, 그 테크닉의 중심에는 관객이 알 듯 모를 듯한 상황전개 속에서 그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영화 속 인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클리프 행어>로 액션의 거장으로 레니 할린은 <딥 블루 씨>에 이은 스릴러 영화 <마인드헌터>를 완성합니다. 원래 이 영화는 2003년에 개봉이 예정되었지만, 흥행시기에 대한 예측과 영화사 미라맥스 사의 구조조정 태풍 속에서 차일피일 개봉이 연기됐다가 올해 여름에야 개봉될 수 있었죠. 결과는 참혹한 흥행참패였습니다. 그런 덕분에 우리나라에서의 개봉도 소리 소문 없이 초라하고 소심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전 추리소설과 일본풍 추리만화를 연상시키는 설정과 장면들
 <마인드헌터>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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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헌터>에서 발 킬머와 크리스찬 슬레이터를 적극적으로 내세운 탓에,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주연인 것으로 짐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배우는 얼마 못 버티고, 처참한 시체가 되면서 실제의 활약은 꽤 밋밋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두 배우가 '우정출연' 정도로 등장한 것 같아 보이는데, 보통의 스릴러나 공포 장르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배우들입니다. 하지만 랩이나 흑인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흥미를 느낄 인물이 1명 등장합니다. 바로 그래미상 수상 경력도 두 번이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 'LL 쿨 J'입니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FBI의 예비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들입니다. 정식으로 활동하기 전에 '살인범 찾기 훈련'을 위해 '해리스(발 킬머)'의 인솔 아래 낯선 섬에 도착한 것이죠. 범인의 살인 행각이 시작되기 전에, 이들이 여유 속에서 자신의 장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추리만화인, 아마기 세이마루&사토 후미야 콤비의 <탐정학원 Q>를 연상시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모르게 '해리스'로 등장한 발 킬머가 <탐정학원 Q>에서 주인공들을 이끌어가는 선생님인 '단 모리히코'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두 인물의 공통점은 제자를 데리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듯 추리만화와도 이야기가 연결된다는 것에서 짐작되듯이 <마인드헌터>의 이야기 구조는 대단히 고전적입니다. 낯선 섬에서 일어나는 정체불명의 인물에 의한 살인 행각, 그것도 한명씩 살해되면서 이들의 심리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설정이죠. 이런 전형적인 구조로 인해 식상할 수도 있는 영화의 힘을 끌어올리는 요소는 발 킬머나 크리스찬 슬레이터 등의 스타들이 예상 외로 일찍 죽는다는 것과 더불어 레니 할린 특유의 역동적인 화면 테크닉과 빠른 템포의 음악들입니다. 잘 보시고, 잘 들으신다면 꽤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한 LL 쿨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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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인드헌터>는 내용도 다른 스릴러 영화와 비교하더라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구조의 식상함이라는 한계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살인범이 벌이는 살해수법의 포인트가 바로 등장인물들의 습관이나 약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관객은 '후 던 잇(Who Done It)'을 위해 캐릭터들의 습관이나 단점을 웬만큼은 파악해가면서 영화를 봐야 <마인드헌터>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인범은 간특하게도 '시간'마저 매시 정각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는 유난히 시계를 자주 보여주는데, 시계가 화면 속에 나타나는 시각은 대개 매시 50분이나 55분쯤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계의 등장과 함께 영화 속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긴장감이 한층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히치콕이 정의하는 '서스펜스'의 개념과는 달리 우리 관객들도 누가, 어떻게 죽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레니 할린은 이런 장면을 통해서 그동안 숨겨왔던 서스펜스 기질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몇 차례의 재미있는 깜짝쇼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는 '모처럼 대단히 흥미 있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구나' 싶었습니다. 대충 정한 것이라는 '의심'마저 들었던 빈약한 논리의 결말 애석하게도 <마인드헌터>의 힘은 바로 결말 부분, 관객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범인의 가면을 벗기는 순간에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러닝타임 내내 등장인물 모두에게 혐의점을 두는 것 같더니, 다 죽여 놓고는 '어쩔 수 없이 범인으로 찍었다'는 식으로 한 사람을 범인으로 찍어놓기는 합니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인 근거가 상당히 빈약한 탓에, 저는 심지어 각본가가 '누구를 찍을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 딩동댕동'(?) 방식으로 범인을 정한 것인가 하는 의심까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웨스 크레이븐의 부활작품인 <스크림>에서도 그랬던 적도 있고, 아주 세밀한 추리소설이나 그런 형식의 만화가 아닌 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맛을 끌어올리는, 피로 씌여진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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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면도 매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인간에게 영원히 빠질 수 없는 요소인 '의심'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그래도 당하고 마는 의심이라는 물건의 함정을 잘 드러낸 장면이라고 생각도 가능합니다. 그런 덕분에 저는 <마인드헌터>를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전형적인 장면인 '일이 끝나고 나면 도착하는 헬기'가 하늘높이 날아오고 있음에도 별 불만 없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마인드헌터>는 이렇듯 스릴 넘치는 테크닉과 더불어 근거가 다소 빈약한 결말 부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쉬운 서스펜스 영화였다는 점에서 모처럼 재미있게 감상한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저런 이유로 개봉이 늦춰지고,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할리우드 영화평론가들의 무차별공습으로 인해 처참하게 실패로 끝났죠. 그런 이유로 저는 <마인드헌터>를 레니 할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저주받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고 '대박도 다 때가 있다'라고 하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레니 할린 감독이 지독한 악몽이라도 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저 모처럼 서스펜스의 참맛을 보여준 이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맞은 폭풍의 타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소규모로 개봉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브레이크뉴스, 노하우21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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