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방울 원피스의 금자는 출소후 이렇게 말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이 말은 박찬욱 감독이 참견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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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가 <복수는 나의 것>과 별달리 비슷한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복수'를 주제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데 묶였던 것과 달리, <친절한 금자씨>는 의도적으로 이들 세 편의 영화를 한데 묶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의 주요 출연진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이 맡은 배역이 기존 배역과 상반된 점이 많아 영화 보기의 즐거움까지 선사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애초에 3부작을 구상했던 게 아니었지만 <올드보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홧김에 3부작을 만들 것이라고 대답해버린 것이 <친절한 금자씨>를 이전 2편의 영화들과 더욱 소통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가 없었다면 <친절한 금자씨>는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요? 좀더 쿨하고 금자씨는 좀더 냉소적이지 않았을지 상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28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는 참 친절한 영화입니다.

"친절해 보일까봐"

이금자(이영애 분)는 "왜 그렇게 눈만 시뻘겋게 칠하고 다니냐"는 옛 감옥 동료의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국어의 함축적 묘미를 잘 살린 이 말은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친절해 보일까봐 그러지 않기 위해 빨갛게 칠했다"와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친절해 보일까봐 빨갛게 칠했다."

어떤게 금자의 진짜 속마음인지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집니다. 금자는 사실 차갑고 냉혹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우유부단하고 감정에 흔들리고 고지식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아주 친절한 방식으로 자식을 잃고 고통받는 유가족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사실 금자는 감옥 내에서 친절을 베풀 때도 무조건 너그러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마음속의 천사를 부를 때에만 친절해질 수 있고, 또 그 천사는 나쁜 사람을 죽여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친절이라고 말해줍니다. 따라서 감옥에서 출소했을 때 동료들이 그녀에게 하는 말 "왜 그렇게 변했어"도 사실 금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고입니다.

그녀는 이중적인 것이 아니라 13년간 복수의 칼을 갈아온 그녀의 고지식함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한 척 위장하고 있지만 밤길을 걸을 때는 늘 무섭습니다. 어느 날 아파트 계단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칠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백사장(최민식)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보십시오. 그녀가 감옥에서 뚱녀를 살해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공의 적'을 모두에게 칭송받으면서 떳떳하게 죽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공개적으로 신앙간증을 외치면서 그녀의 친절함을 설파한 장면과 겹칩니다. 그녀는 인정받고 싶은 것이고, 그 마음의 기저에는 외로움과 연약함, 소외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금자씨의 구원과 속죄

복수의 과정에서 그녀는 괴로워합니다. 누명을 쓰게 된 한 남자아이와 자신이 인생의 13년을 포기하며 지켜낸 자신의 친딸 때문이죠. 여기서 "속죄 속죄!"를 외치는 금자는 모성애가 풍부한 천상 여자입니다.

백사장이 통역했다고밖에 믿을 수 없는 우스꽝스런 모녀간의 대화 장면을 볼까요? 울다가 웃으면 뭐가 난다고 하는데 백사장은 꽁꽁 묶인 와중에도 정말 얄밉게 감정을 흉내 냅니다. 호주로 이민 갔기 때문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딸에게 금자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구하는 것은 죄를 벌하고 죄인을 용서하는 기독교적 의미의 속죄와 구원이라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살인을 해야하는 자신의 복수심에 대한 속죄와 구원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서구적인 스타일과 서구적인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주제를 마음껏 비틀고 있습니다. 금자의 얼굴에 환한 빛이 돌며 마치 예수 혹은 부처의 형상처럼 보이는 장면을 보십시오. 이 장면에서 금자는 "기도는 이태리 타올과 같아 빡빡 문질러야 돼"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성녀였을까요?"라는 제3자적 내레이션에 부가적으로 붙은 이 장면은 사실 서구적인 관점의 종교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백팔번뇌의 불교에 가깝다고 할까요? 일종의 장난 혹은 블랙코미디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의 발현처럼 보입니다.

▲ 이영애와 박찬욱 - 금자씨의 그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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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예뻐야 돼"

그녀는 백사장에 대한 복수를 앞두고 권총을 주문합니다. 하지만 아무 권총이나 쓰면 안됩니다. 그녀의 손을 거쳐 가는 건 뭐든지 예뻐야 하니까요. 그녀가 만드는 케이크도, 그녀의 눈가에 자글자글 맺히는 눈웃음도, 그녀가 보여주는 친절함도 예뻐야 합니다.

마치 '김현희의 KAL기 폭파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금자의 유괴살해사건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도 화제는 단연 이금자의 예쁜 외모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사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예쁜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들어왔을 그녀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복수도 아름답게!"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이 부분에서 이금자를 멋지게 연기하고 있는 이영애라는 배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처음 <친절한 금자씨>의 시놉시스가 알려졌을 때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했었죠. 심은하, 고현정, 고두심 등 물망에 오른 배우도 많았습니다. 결국 이영애가 캐스팅되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이영애에게 정말 악녀의 이미지가 있을까? 이런 우려감은 박찬욱 감독의 이름값에 의해 기대감으로 부풀려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나서 '금자씨'에 이영애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영애와 박찬욱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지요. 이영애는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뛰어 넘었고, 박찬욱은 이를 위해 '금자'라는 캐릭터를 아예 이영애에 맞춰서 설계했습니다.

예쁜 외모 때문에 더 주목받고 항상 밝고 친절하게만 보이는 금자는 평소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이영애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장기를 이식해준 동료에게 "지랄하네"라고 욕을 하고, 백사장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그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난도질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기존의 이미지를 부숴버리는 정말 놀라운 경험입니다. 흥분한 그녀가 관객을 슬쩍 쳐다보는 장면에서 이영애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복수씨들에게 동정을

<친절한 금자씨>의 결말은 도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개인적인 복수심과 집단의 복수심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고 이를 다룬 영화도 많이 있었지요. 그런 것들은 <파고>처럼 대개 우발적인 사건으로 일이 커지는 상황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는 아주 의도적입니다. 집단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을 코믹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드라마를 이끌어왔던 금자가 슬쩍 방관자의 시점으로 빠집니다. 그리고 금자에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게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영화 속 '복수씨'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보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처럼 보이는 상황. 이 아이러니 속에서 금자는 13년의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속죄를 구합니다.

"너 착한 거 내가 다 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킬레스건을 잘라야했던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송강호 분), "복수심이 내 성격이 된 것 같아" 라고 말하며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올드보이>의 대수(최민식 분), "당신이 없으면 나 무슨 재미로 살죠?" 라며 자살하는 우진(유지태 분). 이들 모두 금자씨가 만든 두부 케이크를 먹으며 동정을 받아야 할 캐릭터들입니다.

▲ 금자의 빨간 마스카라는 원래 파란색으로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빨간색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감독을 설득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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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복수를 놓아줄 때

애초에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킬빌>과 비교되었지만 <친절한 금자씨>는 전혀 다른 컨셉트로 완성되었습니다. 또 금자가 친절하게 대해준 동료들이 출소 후 금자를 도와 백 선생에게 복수한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시놉시스도 완성된 영화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만큼 이야기는 층층이 포위되어 있고 복수의 결말은 겹겹이 에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졌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 묵직하게 '복수의 근원'을 파고들었다면 <올드보이>는 역동적으로 '복수의 감정'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는 이들을 종합하며 복수란 과연 무엇인지와 복수 이후의 상황을 다룹니다.

영화 초반부터 <친절한 금자씨>는 <올드보이>와 비슷한 영화가 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금자가 출소 후 백 선생을 찾는 과정의 치밀한 묘사나 그럴듯한 서스펜스 기제도 없습니다. 그냥 범인은 백 선생이었고, 백 선생은 나쁜 놈이었으며, 백 선생은 쉽게 금자에게 잡힙니다. 여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 마치 <올드보이>에서 대수와 우진의 마지막 대결,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과 류의 마지막 대결 이후의 상황을 감독은 더 중요하게 보여주려 했나봅니다.

아무래도 <올드보이>의 대성공 이후 많은 관심이 쏠린 탓에 이 영화를 <올드보이>와 비교하는 시선이 많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의 명성을 이어가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올드보이>보다 덜 유머러스하지만 완성도는 더 뛰어납니다. 이영애의 연기는 <올드보이>의 최민식에 뒤지지 않으며, 세련된 편집과 장면전환 기법들의 능숙함을 보노라면 박찬욱 스타일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곳곳에 깃든 블랙코미디적 유머는 박찬욱 감독의 여유를 보여줍니다. 감옥에 갇힌 금자에게 성녀의 빛이 나오는 장면이나 백 선생이 통역하는 장면의 우스꽝스러움, 제니의 마음을 대변하는 구름 모양의 글자들, 강남 학원에 대한 기묘한 대사까지.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지 않으면 시도하기 힘든 장면들이죠.

다만, 아쉬운 점은 이야기가 풍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는 자잘한 재미를 주는 소재가 부족합니다. 촌철살인적인 대사는 유쾌하지만 유려한 화면에 비해 다양하게 펼쳐지지 않는 이야기는 전반적인 드라마를 겉돌게 합니다. 아무래도 박찬욱은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이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닌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씨네라인(www.cineline.com)에도 송고

2005-07-29 16:3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씨네라인(www.cineline.com)에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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