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장호연 감독
ⓒ 김진석
"1회가 제일 힘들었거든요. 1, 2번 타자를 다 볼 넷으로 내보냈어요. 무사 1·2루라 번트를 예상했는데, 강공을 하는 거예요. 저 앞으로 볼이 바로 날라 왔어요. 깜짝 놀랐죠. 당황해서 2루에 공을 뿌렸는데 원바운드로 갔어요. 유지훤 선배가 기가 막히게 잡아서 병살 처리했죠."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장호연 감독(43)에게 1988년도 개막전은 아직도 생생하다. 개막전에만 9번 등판, 6승 2패의 성적을 올린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 프로야구가 개막할 때마다 '장호연'을 찾는 기자들은 아직도 많다. 하지만 장호연 감독은 아쉽다.

"그때는 좋은지 어떤지도 잘 몰랐어요. 헹가래 쳐줄 때 좀 실감 나더군요.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그럴까. 하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마 메이저리그에서도 개막전 노히트노런은 없었을 거예요. 그때 서울에서 했더라면 그래도 좀 더 부각됐을텐데…"

- 특별히 개막전에 강한 비결이라도 있었나요?
"병원에 신체 검사하러 가면 의사가 농담으로 '간이 커서 그런 것 아니냐' 했다니까(웃음). 대부분 긴장해서 자기 실력을 발휘 못해요. 어떤 경기에 나가도 자기가 한 만큼 한다고 (감독님이) 생각하니까. 동계훈련도 안 하면서 준비는 빨리 되 있고…"

마침 얘기가 나왔다. 선수 시절, 장호연 감독이 스토브리그 단체 훈련에 참가한 것은 단 4번뿐. 13시즌동안 9번이나 '겨울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다. '연봉조정신청자 명단'에 단골로 이름을 올려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장호연을 계속 개막전 선발로 기용했던 감독의 신뢰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장호연 감독의 통산 방어율이 떠올랐다. 3.26.

"통산 1점대 방어율 한번도 가기 힘들어요. 저는 2번이나 했어요, 방어율 상도 받았고. 아마 이거 아는 사람 별로 없을 거예요."

- 결국 개인 훈련을 많이 하셨다는 얘기가 되네요.
"그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팀 훈련 5시간 하는 것, 저 혼자 2-3시간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저한테 필요한 것만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도 저한테 훨씬 이득이거든요. 제가 남들 보는 곳에서는 잘 안 뛰어요(웃음). 남들 없는데 가서 뭘 보여 줄려고…웨이트 하고. 제가 거꾸로 입니다. 거꾸로.

남들하고 똑같이 해서는 못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맞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니까. 선동렬 선수처럼 공 무지 빠르다면 굳이…공 갖고 장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같은 슬라이더 던지면 맞아요. 자꾸 변형 시켜서 공을 던지다 보니까. 그쪽으로 발달하더라구요."

ⓒ 김진석
장호연 감독의 별명 '짱꼴라'가 떠올랐다. 대학교때 붙었다는 별명, 장호연 감독은 그 뜻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저 '약은 사람'정도로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프로에서 이미지 다 버렸다니까. 무슨 연봉계약 안 하고 나쁜 짓만 하는 사람 같이…'내가 잘못한 게 뭐냐?' 구단에 물으면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구단 힘들게 하고…', '네가 야구 안 하면 뭐할 거냐?' 뭐 이런 얘기였거든요. 자존심 때문에 버텼던 거죠. 프로는 선수 기술을 사는 거잖아요. 그럼 구단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당연한 거잖아요. 제가 어떻게 보면 순한 사람인데…지금까지 쌍욕 한 번 못해봤거든요. 평생 1원짜리 한 번 빌린 적도 없습니다."

- '1-0으로 지는 것 보다 10-9로 이기는 투수가 낫다'는 독특한 이론도 언론에 보도됐는데.
"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어요. 투수가 컨디션이 나빠 대량 실점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막아야 된다는 의미로 얘기한건데…나중에 결과적으로는요, 우리가 막 따라가고 그랬는데 1점차로 질 경우가 있거든요. 대량 실점할 때 한 점 막아 놓고 안타 한 개 덜 맞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따라 갔을 때 2차로 대량 실점하는 것은 프로선수로서 최악입니다. 승리를 지킬 수 있는 투수가 되야 하고, 승리를 지킬 수 있는 팀이 프로팀이죠. 그게 프로죠."

장호연 감독은 처음부터 '개막전의 사나이'다왔다. 그는 1983년 프로데뷔전부터 개막전 선발로 나서 MBC청룡을 상대로 7-0 완봉승을 거뒀다. 동시에 '개막전 신인 투수 완봉승'이라는 진기록도 갖게 된다. 하지만 장호연 감독의 기억 속에 1983년 개막전이 선명한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백인천 감독이 일본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야구 선수를 꿈꿨죠. 그런데 그 때 4번 타자로 나왔잖아요. 그 분을 직접 상대했다는 것, 믿을 수가 없었어요. 몇 년전에 백인천 감독님이 '장호연이 던지던 슬라이더 드물다. 좋은 투수였다'고 평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뿌듯했죠. 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가장 존경하는 야구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역시 백인천 감독님입니다. 대단하죠. 최고라고 봅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20년이나 뛴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감독 드뭅니다. 그런데 카리스마가 지나치다니, 구단 말을 잘 안 듣는다니…그게 아니죠. 그 사람 능력을 사야죠. 자꾸 환경이 사람을 나쁘게 만들어요. 장점을 자꾸 부각시켜주고 특기를 살려줘야지, 자꾸 특기를 뺏으려 하니까 나빠지죠."

장호연 감독은 구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선수들이 구단 분위기를 만든다. 감독에게 힘 다 실어 주고 원하는 코치 데려오겠다. 감독이 다 해라. 구단은 도와줄 뿐이다'. 이와 같은 구단의 주장은 장호연 감독이 봤을 때 모두 잘못된 얘기들이다. 어떻게 보면 선수 시절 '짱꼴라 장호연'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다. 장호연 감독의 달변은 거침이 없다.

"왜 메이저리그에서는 구단이 다 하겠어요? 구단이 최선을 다 했을 때, 그 다음에 감독이나 코치를 자를 자격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 내가 제일 나은 사람이라고 뽑았잖아요? 그럼 더 나은 사람은 없어요. 대통령 선거 1-2년에 한번씩 하면 나라 망하지 않겠습니까?

감독이나 코치는 들락날락하지만, 구단은 영원하거든요. 그런데 자꾸 핑계를 대고 책임만 전가합니다. 오랫동안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구단이 칼자루를 쥐어야 합니다. 선수단 분위기 맞춰 주면 한번은 우승해요. 하지만 여러 번은 안됩니다. 그렇다고 우승 많이 하면 명문 구단입니까? 아닙니다."

ⓒ 김진석

명문 구단으로 가기 위한 노력이 현재진행형이냐, 아니냐. 이것이 명문구단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셈이다. 적어도 장호연 감독의 눈에 아직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프로 구단이 없다. 스스로 '프로'라고 자부하는 장호연 감독이 프로구단에 갈 수 없었던 이유다.

"선수 시절부터 야구만 하고 (프로)뜨겠다고 생각했어요. 코치를 존경하고 따르는 선수가 별로 없거든요. '코치해서 뭐 하겠느냐', 우습게도 봐요. 그렇다고 연봉을 많이 줍니까? 그것도 아니죠. 그러니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코치 말을 누가 듣겠어요? 게다가 팀 성적만 갖고 사람 바꾸죠.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합니다. 환경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 건데. 그래 놓고 좋은 사람만 찾거든요. 안 나타나지. 바른 말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 아니지…"

- 그래도 혹시 선수 시절 중 후회하는 대목은 없습니까?
"한편으로 내가 프로 감독을 노리는 작전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구단하고 좀 더 잘 지내고 구단이 원하는대로 해줬다면 말이죠. 그런 생각은 가끔 해요. 하지만 잘했다 싶어요. 절대 프로를 무시하는 게 아니구요, 지금은 프로코치 하라고 그래도 안 가요. 프로는 좋은 선수 데려와서 관리하는 곳이지만, 여기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선수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좋은 선수를 길러 내서 프로에 보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내 야구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자리를 원합니다."

"병규가 야구를 떠난 것은 구단 책임"
"박찬호. 화살은 휘어지지 않고, 활만 두꺼워지고 있다"

장호연 감독은 가끔 강병규씨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선수 시절 룸메이트로 절친했던 사이였기도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투구 스타일을 가졌던 강병규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장호연 감독은 "어렸을 때 열 몇 집이 화장실 두 개 쓰고 살았다는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정말 솔직했던 친구"라며 "몸도 괜찮고 지금도 한창 야구할 나이인데 아깝다. 병규가 야구계를 떠난 것은 어쨌든 구단 책임"이라며 아쉬워했다.

장호연 감독은 후배 투수들에게 '몸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봉중근 선수에 대해 장 감독은 "참 좋은 자질을 갖고 있는 애다. 어깨 뒤쪽이 굳어 있던데, 그것만 풀어주면 공이 더 좋아진다"며 "미국에서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은 것 같더라. 몸 관리를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장 감독이 처음 조련했던 박명환 투수(두산 베어스)에 대해서는 "순발력이 워낙 뛰어나다. 볼도 빠르고 변화구도 좋다"면서 "하지만 힘 빼는 피칭이 아직 미숙한 것 같다. 아직 완급 조절 능력이 부족하지만 베테랑으로 가는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고, 조용준 투수에게는 "변화구 의존도가 너무 높다보니 공 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변화구 투수는 유연성이 생명인만큼 몸 관리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호연 감독은 "한 가지 변화구 기술이라도 100% 끌어 올려야 하는데, 자꾸 종류만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김병현)", "몸이 굳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속력이 안 생긴다. 회초리 같이 휘어지는 화살을 쏘지 못하는데 활(몸)만 두꺼워지고 있다(박찬호)"며 박찬호 김병현 투수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 이정환


선수 시절 스스로 개발한 변화구를 실전에서 써먹다가 코치에게 혼났던 적이 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누구보다 실험 정신이 투철했던 장호연 감독. 여기에 삼성라이온즈 재활 코치 시절 관심을 갖게 된 '운동 선수의 신체'에 대한 연구까지 더해지면서 장호연 감독에게 조련된 투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작년 신인왕에 오른 조용준 투수도 여기에 포함된다.

- 투수를 잘 키워내서 '신의 손'이라고 불리기도 하던데요. 감독님만의 비법을 소개해주시죠.
"예전에 스키 타러 다니고 하면서도 많이 배우고(웃음)…제가 개발하고 연구한 부분도 있고…백인천 감독의 칭찬으로 조용준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도자로서 자신감을 갖게 된 거죠. 조용준이 처음 투수 할 때만 해도 120km부터 시작했거든요. 스피드 키우려고 참 부단히 노력했던 게 보람이…지금 걔 마운드 올라가 있는 것만 봐도 좋아요."

비법 공개는 슬쩍 넘어가는 장호연 감독. 짱꼴라답다. 하지만 그는 '고교 선수'에 대한 지도 철학만은 확실하게 밝혔다. 운동 선수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 대부분 '프로'를 꿈꾼다. 그들에게 장호연 감독은 '실력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시합 나가는 게 다라고 생각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시합 출장한다고 프로팀에서 데려가지 않아요. 실력이 있으면 데려가죠. 어차피 프로에 갈 사람은 가고 대학에 갈 사람은 갑니다. 실력 대 실력으로 하면 문제가 안되죠. 자꾸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 거리를 일으키는 소지가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장호연 감독의 핸드폰 저장번호 1번은 집, 2번은 아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장호연 감독. 그는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연습장에는 야간 조명 시설이 없다.

"부모님의 사랑이 더 중요하거든요. 부모하고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되겠어요? 잠자고 일어났다 하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코치하고 감독이 뭐 그렇게 뛰어나서 다 가르치겠어요. '저녁 식사는 꼭 집에 가서 해라'하는 생각으로 여기 불 다 떼어 버렸어요. 뭐 연습 많이 하는 걸로 따지자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하잖아요."

▲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연습장에는 야간 조명이 없다
ⓒ 김진석

장호연 감독은 매주 제자들이 운동하는데 자신이 방해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제자들에게도 운동장의 스트레스를 집에 가져가지 말라고 주문한다. 다만 운동장에 있을 때만큼은 '프로'라고 생각하고 뛰어주기를 바란다.

- 고등학교 선수들도 프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건가요?
"개개인이 약점을 보완해가면서 프로에 도전할 때 팀워크가 생긴다고 보거든요. 그만한 책임감과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죠. 단 감독이 팀 우승을 위해 선수들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 그럼 감독님은 언제 제자들에게 화를 내나요?
"에러하거나 뭐 이런 것보다는, 성의가 없을 때. 목표 의식 없이 이리 저리 끌려 다닐 때 많이 뭐라고 그래요. 목적 없이 할 바에는 그냥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에서 웨이트 하잖아요. 목표 수치가 안 나오면 벌금 물고 하는데…내가 요 무게를 들 수 있다고 하면, 그 무게 이상 못 들거든요. 이보다 더 무거운 걸 들라고 하는 사람이 들고. 하려고 하는 사람이 뭐든지 합니다. 한번 들어본 것은 몸이 기억하니까. 체력에도 기억력이 있어요. 좋은 의지를 몸에 기억시켜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만약 세계 어느 팀이던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떤 팀을 맡고 싶습니까?
"쉬운 구단보다는 어려운 구단, 인기도 없고 관중도 없는 그런 구단이요.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게 일궈 놓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있는 것 다 사다 주고…이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원래 제가 좀 특이하니까…(웃음)"

'오늘 좋은 얘기 많이 듣습니다'. 소문처럼 장호연 감독은 정말 말을 잘했다. 하지만 달변 속에는 프로 의식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인터뷰 전 머리 속에 그렸던 '짱꼴라'라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호연 감독은 특이하지 않았다. '짱꼴라'의 뜻은 '진짜 프로'였다.

"굳이 중학교 야구부에 넣을 생각 없다"

▲ 장영빈 군
7일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연습장에는 소년 한 명이 형들 틈에서 투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장호연 감독의 아들 영빈(초등6)군. 이날 영빈이는 고무공을 뿌리고 있었다. 장 감독은 "어린이한테 어른 공으로 연습하라고 주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며 "차근 차근 가르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이 영빈이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순발력을 타고 났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음식에 신경 써가며 좋은 선수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몇 년 후에 최소한 프로 선수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장호연 감독은 내년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을 굳이 야구부에 넣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학창 시절을 통해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호연 감독은 "평생 야구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하는 게 우선"이라며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이정환
2003-04-07 20:5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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