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제'라 하면 부산 영화제나 전주 영화제와 같은 상대적으로 큰 영화제들에 견주어 대부분 볼 수 있는 영화 편수도 적고 관객수도 많지 않은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결국 재정적으로 넉넉치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작은 영화제'들의 후원 단체 이름을 보자면, (그 영화제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영화 관련 정부 단체나 민권 단체 등, 딱히 재정적 후원을 후하게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힘든 이름들이 올라 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려는 “레스 페스트(Resfest)”의 후원 단체들 이름을 보자면 “Bacardi” 같은 외국 주류상이거나 “Apple” 사와 같은 컴퓨터 회사, 혹은 “Panasonic” 같은 거대 기업으로, 이런 이름만 보자면 흠, 이 영화제 꽤 돈 있는 영화제군 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막상 영화제 홍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역시 다른 '작은 영화제' 사람들처럼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원사들은 대개 자신들의 기기 홍보와 관련하여 기기를 대여해 주기 때문에 (물론 그것도 큰 도움이 되지만) 현금이 필요한 일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에만 해도 받을 수 있었던 정보 통신부 지원이 끊겨 결국 영화제 날짜를 뒤로 미루어야만 하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기사는 “레스 페스트”에 대한 것이지 '작은 영화제'들의 재정적 압박감을 주 테마로 하는 글은 아니니 이 정도에서 줄여야겠지만 이 기회를 빌어 한 말씀 드리자면, 정부 단체나 기업 등에서 '작은 영화제'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인정하고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2002 레스페스트"의 포스터
ⓒ Resfest
처음 “레스 페스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또다른 “퀴어 영화제”인가 생각했었다. “레스비언 페스트”의 준말이 아닌가 라고 오해했다는 말이다.

9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미술관에서 열리기 시작했던“레스 페스트”의 영어 원 말은 “The Low Resolution Film Festival” 로, 여기서 Low Resolution 이란 말은 저해상도란 뜻이다. 곧, 저해상도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제라는 말이다.

디지털 기술이 95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발전한 지금 “디지털 영화니까 저해상도”라는 말은 어불성설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디지털 영화라 함은 저예산 아마츄어 영화라고 생각되어 그 특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디지털 “고해상도” 시대가 되었으니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는 반농담조의 질문에 “이 영화제는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인터내셔널’ 한 영화제라서 함부로 이름을 바꿀 수 없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영화제는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시카고, 뉴욕, LA 등 미국 도시를 시작으로 런던, 브리스톨, 서울, 전주, 도쿄, 오사카, 상파울루, 케이프타운, 리오 데자네이루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투어 영화제(International Touring Film Festival)가 되었다는 것이다.

“레스 페스트”가 강조하는 점은, 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모두 디지털로 제작되고 영사 방식 또한 디지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영화라 하면 뭐가 어떻게 다를까, 하고 상상하기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내 입장에서 살짝 귀엣말을 하자면, 뮤직 비디오를 연상해 보시라고 하고 싶다.

폐막작 한 편을 빼놓고는 모두 단편 영화들이 상영되는데, 이 단편 영화들의 영상 감각은, “실험 영화 명품전”에서 볼 수 있었던 실험 영화보다는 덜 실험적이고 “M-TV”에서 볼 수 있는 뮤직 비디오들보다는 덜 상업적이다. 그러하니, 자기 감각이 그 중간 어디쯤의 영상들을 좋아한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은 서슴지 말고 가보시라, 삼십대라면 훌쩍 젊어지는 느낌을, 이십대라면 살아있음을, 십대라면 내가 만들고 싶던 게 바로 저거였어,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2000년 1회 “레스 페스트”의 주제는 '영화 제작의 미래 (The Future of Filmmaking)'였다. 이때에는 디지털 기술이 영화 제작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주요 테마였다면, 3회 째를 맞는 올해 “레스 페스트”는 디지털 기술이 영화뿐 아니라 영상물 제작 전반에 미친 혁명적 영향은 이제 기정사실화하고, 이제는 기술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기술을 어떻게 자기화 해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슬로건 역시 “아이디어에 불을 붙여라 (Ignite your ideas)”이다.

▲ "2002 레스페스트"의 로고
ⓒ Resfest
아이디어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와 불 말고 손, 곧 불을 붙일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할 터이다. 그래서 “레스 페스트”에서는 각종 기술 세미나들도 개최한다. 디지털 편집 기술 세미나, 특수 효과 세미나뿐 아니라 디지털 장편 영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을 롭 닐슨 (Rob Nilsson) 감독이 몸소 진행하는 워크샵 식의, 여섯 시간에 걸친 세미나도 예정되어 있다. 스토리, 촬영, 사운드, 프로듀싱, 편집과 연기 등 전반적 제작 과정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동 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준다고 하니 상당히 “영양가 있는” 세미나가 될 듯하다.

11월 29일(금)부터 12월 5일(목)까지 일주일간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의 세미나 참여나 영화 관람을 위해서는 온라인상에서도 티켓을 구입할 수 있으니 www.resfest.co.kr 로 가서 필요한 정보를 얻으시기 바란다. 이 사이트에 가면 이번 “레스 페스트”에서 상영되는 작품들 몇 편을 온라인 상으로 미리 볼 수도 있다.
2002-11-29 12:4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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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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