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여류소설가는 6월의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오르가즘을 느꼈다고 했던가. 6월 22일 한국-스페인전 4강 진출을 다투는 경기에서 나는 열광과 감격의 현장인 광화문에 있었다.

저 깊은 심연으로부터 느껴지는 짜릿함, 눈물, 감격이 뒤범벅이 된 그 현장에서 월드컵 세대와 같이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마냥 소리쳤다. 그날의 감동은 오르가즘에서 느낄 수 없는 세대간의 의 간격, 남녀간의 차별, 지역감정을 뛰어넘은 그런 감동이었다.

통일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서는 월드컵 세대인 큰 딸의 차림새에서 오늘의 경기가 6월의 월드컵에서 느꼈던 짜릿함보다는 편안함과 여유가 지배하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88대로 상암대교를 거쳐 상암 축구장으로 가는 길은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하늘공원의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85년도에 이곳 난지도를 찾았을 때는 서울시의 거대한 배출구로서 먼지와 악취만이 가득한 곳이 어느새 상암 축구 전용 경기장은 평화공원, 하늘공원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경기장 입구에선 수백명의 대학생들이 통일의 노래를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월드컵 세대가 아니었다. 부마사태,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학생활을 보낸 386세대인 나의 기억 속에는 투쟁, 반독재, 민주화, 취루탄으로 가득하였지만 월드컵 세대가 주연을 펼쳤던 6월에는 386세대와 또 다른 열정을 뿜어내었다. 그들은 선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투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느끼고 즐길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즐기는 그런 젊음이다. 통일 축구가 끝날 때까지 경기장 어느 곳에서도 월드컵 세대를 목격하지 못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녹색 그라운드에 남과 북의 선수들이 준비운동을 위하여 입장한다. 두 팀 모두 주전과 후보 선수로 구분하여 운동을 시작한다. 남측 주선 선수들은 푸른색 칩을 둥글게 배치하여 마치 꽃잎이 만개하듯이 왕복운동을 펼친다. 아~, 히딩크식 훈련인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경기 시작 30분 전, 서울여상 밴드 단원을 앞장세워 선수단이 입장한다. 나란히 줄서 있는 선수단에서 북축 선수들의 키가 작아보인다. 식량부족이 떠올라 가슴이 시려온다. 이번 통일 축구를 유치한 박 근혜 의원의 인사말 뒤로 북측 선수 단장인 리 광근 위원장의 단문형식의 선동적인 연설이 시작된다.

많은 관중들이 이념을 떠나 갈채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정 몽준 의원이 소개된다. 가장 많은 박수 소리에 그가 이번 월드컵의 최고의 수혜자임을 느끼게 한다.

장사익 소리꾼의 아리랑이 6만4천석을 꽉 채운 관중들과 남북 선수들이 함께 소리쳐 부른다.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만주 벌판을 휘달리며 부르던 그 노래가 아니던가. 반 세기를 우리는 대륙의 존재를 만끽하지 못한 채 섬나라 같이 북쪽이 꽉 막힌 채 답답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제는 기차로 승용차로 모스크바, 북경, 파리, 런던의 거리 거리로 젊음을 발산하는 월드컵 세대를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 다양성과 창조성이 가득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제 그 첫걸음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통일 축구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남측 관중석의 붉은 악마 응원단에서 "통~일조국"의 메아리가 물결을 탄다. 그러나 많은 관중석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북측의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소리친다.

6월의 함성에서 깨어나지 못한 많은 관중들은 고유명사의 대한민국이 아닌 가슴 떨리게 하는 그 함성 "대~한민국"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계임을 즐기고 있었다. 남과 북의 공격에 열광하며 다 같이 응원하면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남측이나 북측의 경기 스타일이 비슷하다. 체력을 바탕으로 미드필드의 공방전이 치열하다. 전반전에는 북측이 다소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북측의 왼쪽 공격수의 침투가 날카롭다. 게임 시작 전에 남측의 3:1 승리를 예상하였지만 북측 선수들의 몸놀림이 만만찮게 보인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이영표 선수의 현란한 개인기로부터 남측의 경기가 활발해진다. 전후반을 통해 남측 선수들의 경기력은 월드컵 4강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새 월드컵 이전의 무기력한 대표 선수들로 돌아와 있었다. 결국 0:0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고 남북측의 선수들에 의해 대형 한반도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함께 누빈다.

6만4천여 좌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눈에는 오늘의 통일 축구 경기가 거창한 통일의 부담보다는 그저 하루의 휴식을 즐기는 가족 나들이 나름의 그 이상이 아님을 보았다. 그들은 평양의 축구 경기장에서도 똑같이 고유명사가 아닌 "대~한민국"을 소리치고 게임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경기장을 나서며 깨끗한 관람석을 보면서 월드컵 때의 프라이드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지켜 보았다.

경기장 밖으로 일본의 조총련계 동포 여학생들과 함께 빠져 나오는 동안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던 그 대학생들이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소리친다. 여학생의 얼굴에선 해 맑은 웃음이 묻어난다. 언제쯤 평양의 경기장에서 휴식을 즐기는 소시민과 대학생, 그리고 여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6월 감동의 함성인 "대~한민국", "오~ 필승 코레아"를 외쳐 볼 수 있을까?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