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상반기까지 국내에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은 <무사 쥬베이>와 <인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켓몬스터―뮤츠의 역습> 등 모두 네 편이다. 이 가운데 흥행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은 <포켓몬스터>로, TV시리즈에서 비롯된 "아동물"이라는 세간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서울관객만 28만여 명을 동원했고,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4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지난 12월 개봉돼 서울관객 11만여 명(전국 14만여 명)을 기록한 채 막을 내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무려 일반에 처음 공개된 지 17년이 지난 '노땅'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계의 추정에 의하면 2001년 6월 현재 불법 복제본을 포함하여 약 80만 개의 비디오/CD/LD가 한국시장에서 팔려 나갔거나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다시 말해 이미 국내 정식 개봉 전에 "볼 사람은 거의 다 본" 영화라는 점에서 서울 11만여 명의 수치도 상당한 선전으로 받아들여졌던 상황이다.
ⓒ 인랑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제대로 된 화면을 감상하고 싶다'는 매니아적 수요를 제외하면, 신규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거의 없었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형성시킨 시장은 스크린과 비디오를 제외하고도 또 하나 있다. 바로 만화책 시장.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일본의 저명한 만화잡지 <월간 아니메쥬>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그 만화 내용 중의 일부를 시나리오화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케이스였다. 그 원본 만화책을 국내에서 '학산문화사'가 7권짜리 무삭제 번역본으로 묶어 발간했고, 신기하게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책은 "만화 = 대여용 or 업소용"이라는 저간의 공식을 깬 채 오히려 국내에서 판매용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무려 석달 동안이나 각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문화관련 서적 베스트 10에 이 7권짜리 장편만화는 당당히 자리를 차지했었고, 지금도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이제 올 여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이웃의 토토로>가 국내 극장에 공개될 채비를 마친 상태다. <이웃의 토토로>는 또 어떤가? 이미 그 불법 비디오본과 CD가 국내에 200만 개 이상 팔린 것으로 확실시되고, 버젓이 자막까지 달린 채 고화질의 화면을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봐온 상태다. 또한 국내 각 '애니메이션 동호회'를 통해 인터넷에서 유통되고 있는 파일까지 감안하면, <이웃의 토토로>를 본 사람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아울러 이미 '토토로'의 캐릭터는 인형으로, 각종 팬시 상품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려왔었다. '애니메이션의 왕국' 일본의 유행을 넘어 이제 본격적으로 한반도 상륙을 개시하고 있는 일본 만화산업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앞서 언급했던 상황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의 아이러니한 역사를 먼저 되짚어봐야 할 듯하다.
ⓒ 이웃의 토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극장 개봉작 1호는 가와지리 요시야키 감독의 <무사 쥬베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얘기이다. 이제부터 언급하는 사실들은 우리나라에서 해방 후부터 최근까지 버젓하게(?) 이어진 '일본 애니메이션의 왜곡된 역사' 가운데 주요한 단면이 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극장 개봉작 1호? 그것은 바로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역작 [아키라 Akira]이다. 1988년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국내에선 곧 이어 서울의 한복판 대한극장에 내걸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 아키라
비로소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게 된 것은 일본문화 3차 개방이 발표된 작년 여름에서야 가능해진 일이었고, 게다가 지금 현재까지도 일본 영화는 '부분적으로만' 개방되어 저패니메이션의 경우 공식적인 세계 주요 영화제의 수상작이라야 들여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1988년에, 그것도 국제 영화제 수상작이 아니며, 게다가 시뻘건 폭력이 난무한 사이버펑크물 <아키라>가 국내의 대표적인 극장 '대한극장'에서 상영되다니? 수입사측은 <아키라>의 폭력적인 장면을 적당히 걷어내고, 또한 왜색이 느껴지는 부분을 교묘히 지운 후, 거기에다가 성우 더빙까지 입히는 치밀성을 더해 일본 작품이 아닌 헐리우드작으로 둔갑시켜 이 영화를 극장에 내건 것이다. 물론 곧 이런 사실이 들통나 <아키라>는 일주일 만에 극장에서 강제 철거되는 '사태'를 겪고 말았는데, 이런 해프닝 속에 바로 우리의 아이러니한 저패니메이션 상륙 역사가 녹아나고 있다. 더 많은 무수한 예가 있지만, 여기선 일단 <원령공주>의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기로 하자. 일본에서만 240여 개 극장에서 개봉되어 5개월 만에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극장관객을 동원했던 메가 히트작 <원령공주>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상태다. 단일 작품으로 1997년 당시의 국내 비디오 시장 전체규모 2500억 원을 능가하는 300억 엔(약 3천억 원)의 흥행 실적을 남겼을 정도이니….이 <원령공주>의 판본이 우리나라 일반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7년 이 영화가 한창 일본에서 상영되던 바로 그때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1997년 <원령공주>가 대만에서 상영되고 있던 당시이다. 그때 우리나라 한 대학생이 대만에 놀러갔다가 광둥어(廣東語) 더빙판으로 상영중이던 <원령공주>를 보게 되었고, 이 극장 화면을 캠코더로 몰래 찍어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 원령공주
일본만화 캐릭터들이 중국어로 말하는 이 불량화질의 캠코더판은 곧바로 국내 ○○○대학 중국어과 학생 두 명에 의해 번역 작업이 되었고, 이 번역물이 같은 대학 영화동아리에 의해 자막으로 입혀져 주위에 돌게 되면서 <원령공주> 국내 유통 1호작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복사하거나 빌려보는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석달여 후 일본에서의 개봉이 끝나갈 즈음, 1300만 관객 동원과 엄청난 흥행 성공 소식이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나서, 중국어판이 아닌 정식 일본판이 이제 불법 복제되어 청계천 골목을 넘어 강남역 사거리 대로에서까지 버젓하게 만원씩에 팔리게 된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아직 화질 수준은 몇 번의 재생작업을 거친 탓인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두달여 후, 일본을 방문했던 우리나라의 한 여배우가 정식 출시된 <원령공주> 비디오 테잎을 구해 들어왔고, 이 정식판에 일본영화 번역 전문가의 꼼꼼한 자막 작업을 더해 드디어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원령공주>를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불법'인 것은 두말 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령공주>는 본격적으로 국내에 정식 개봉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이 <원령공주>를 둘러싼 우리의 우여곡절 역사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일본 문화개방 시대, 저패니메이션의 문화적 저력과 우리의 왜곡된 역사"는 총 6회에 걸쳐 연재되며, 매주 2번, 화요일과 금요일에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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