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TV 월화드라마 <굿닥터> 포스터
KBS2TV 월화드라마 <굿닥터> 포스터KBS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그 흔한 출생의 비밀도 없었고, 복잡하게 얽힌 삼각-사각 관계도 없었으며, 누구 하나 불치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KBS 2TV <굿닥터>는 최고 시청률 21.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굿닥터>가 남긴 족적도 상당하다. 전회 동시간대 시청률 1위, 9월 프로그램 몰입도 1위(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조사)를 기록한 것은 기본. 소아외과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면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서울성모병원이 신생아 중환자실을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좋은 드라마'는 별다른 자극 없이도 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도 커다란 수확이다.

그 <굿닥터>의 세계를 창조해 낸 박재범 작가는 몇 편의 단막극을 거쳐 OCN <신의 퀴즈> 시리즈의 극본을 썼고, 첫 지상파 장편 드라마 작품인 <굿닥터>로 '대박'을 쳤다. 그러나 정작 박재범 작가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는 "드라마가 끝나니 그냥 섭섭하다. 시원섭섭한 게 아니라, 아련하고 애잔하다"며 "박시온은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보다 더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나 싶은 인물이다. 종방연 날도 굉장히 멍했는데, 지금도 박시온과 이별하려니 약간 '분리불안장애' 같은 게 생겼다"고 털어놨다.

"시온의 불편한 7시간, 실제 장애인은 7년도 70년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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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닥터>가 이토록 사랑받을 줄 예상했나?
"전~혀. 이렇게 느리고, 잔잔하고, 극적 갈등이 없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물론 시청률도 중요하니까 어느 정도 성과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잘 나왔다."

-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소아외과 의사'라는 캐릭터가 참 신선했다. 어떻게 떠올렸나?
"전작인 <신의 퀴즈> 시리즈 때부터 소위 '마이너리티'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소외계층, 사회적 약자를 다뤘던 그때와 <굿닥터>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서번트 증후군' 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사실 사회적 약자에겐  양날의 검과 같다.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능력이라는 게 잘못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양면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 사실 <굿닥터>는 의학 드라마 치고는 잔잔하고 느리다는 평을 받았다.
"그걸 처음부터 의도했다. 누구나 편하게 따라올 수 있고, 볼 수 있었으면 했다. 큰 틀로 보자면, <굿닥터>는 나에겐 꿈같은 드라마다. 내가 잘 하는 드라마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드라마였다. 그간 장르물 같은 기술적인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처음 지상파에 데뷔하며 뭘 할까 고민하던 중 무엇보다 '의미가 있어야겠다' 싶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드라마를 하기보다는 잔잔하고, 스트레스 없고, 좋은 드라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사실 1~2부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안 들었는데, 드라마의 도입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박시온의 천재성을 보여줘야 했다. 소아외과가 무엇인지 알려야 하고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해야 하니까 화려하게 간 거다. 그래서 긴박감도 있고 수술신도 많은데, 나는 그게 주가 될까 두려웠다. 다 찍고 나니 '이게 아닌데, 시청자들이 앞으로 이런 얘기만 바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러다가 3부부터 다시 원래 생각대로 돌아왔고.

그런 의미에서 5부와 6부가 중요했다. '늘어졌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더 늘어지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웃음) 3부에서부터 8부까지 시온이가 당하고 그러는데 그걸 못 보겠다고 채널을 돌리는 분들도 있었다더라. 시온에 감정이입된 분들은 못 참겠다는 거다. 시청률도 떨어졌다고 하고. (웃음) 그런데 그걸 보고 이 드라마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시온이가 엄청난 고난을 겪었지만, 그건 끽해야 7시간이다. 시청자가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딱 7시간만 버텨 주셨으면 했다.

실제로 장애가 있는 분들은 그보다 더한 고난을 7년, 70년 동안 겪지 않나.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 이사 오지 말라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사를 와도 '낮에는 외출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온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실제로 시온이 같은 의사가 병원 안에 있었으면 더했을 거다.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공들여 썼다. 하지만 그분들의 고초를 더 보여주지 못한 게 죄송스럽다."

"의학 드라마의 꽃은 수술신? 그런 걸 누가 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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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신의 퀴즈>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자료의 넝마주이'라고 표현했다. 이번에도 자료를 준비하는 데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 6개월 정도 자료 조사를 했다. 자폐아에 대한 부분은 <신의 퀴즈> 때부터 모아둔 게 있어서 수월하긴 했지만. 조금 더 심도 있게 조사하기 위해 관련 기관을 찾아가 많은 분들을 만났고, 주원 또한 그곳에서 자폐아를 만나 많이 연구했다. 갖고 있는 자료가 엄청나게 많았다. 희귀병에 대한 자료나 소아외과에서 이뤄지는 특이한 수술들, 샴쌍둥이 수술처럼 봤을 때 기가 막힌 수술들에 대한 자료도 많았다.

하지만 기획안을 쓰다 보니 '내가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새로운 수술법을 소개하는 드라마도 아닌데, 무조건 새롭고 희귀한 걸 보여주겠다는 게…. 처음 마음먹었던 것과 맞지 않는 것 같아 다 지웠다. 따뜻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는데, 너무 의료적인 부분으로 경도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자는 <굿닥터>를 보면서 '수술의 긴박함이 부족하다'고도 평하는데, 당연하다. 내가 그렇게 안 썼으니까! (웃음)"

- 사실 많은 의학 드라마가 그렇지 않나. 긴박함을 주는 BGM을 깔고, 피가 사방에 튀는 수술에 '어레스트'(심정지) 상황이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웃음)
"그런 게 드라마 전면에 나서는 걸 경계했다. '의학 드라마의 꽃은 수술신이다'라고 하는데, 그걸 누가 정했나? 꼭 하고 싶은 이야기다. 심장이 안 좋아 한 달간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치자. 8시간 수술을 받으면 그 환자가 병원에 있는 한 달 중 수술은 그 8시간이 다다. 나머지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즉 대부분의 의료행위는 의사와 환자 간, 의사와 의사 간, 환자와 환자 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거다. 의학 드라마가 수술 드라마는 아니지 않나.

많은 분들이 그걸 간과하고 계신 것 같다. 그래서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수술을 다 뺐던 거다. 나에게 중요했던 건 피가 튀는 수술신이 아니라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아플까'를 보여주는 거였고, '왜 저 사람이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성을 좇는 거였다.

긴박감만을 좇는다면 액션이나 스릴러를 봐야지, 긴박감을 위한 긴박감을 주는 건…. (웃음) 드라마에 등장하는 건 가상의 환자고 상황이지만, 실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봤을 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그렇다고 재미를 안 줄 순 없으니, 캐릭터에 공을 들였다. 다행히 배우들이 잘 해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 가능할까' 의문도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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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얘길 좀 더 자세히 해 보자. 지금의 <굿닥터> 결말, 만족스러운가?
"물론. 자세히 본 분들은 알겠지만 박시온의 어깨에 차윤서(문채원 분)가 기대어 있는 마지막 장면이 포스터와 똑같다. 구조적으로 얘기하자면 <굿닥터>는 데칼코마니다. 수사물에서 많이 쓰이는 형식이긴 한데, 전반 10부와 후반 10부가 대칭되어 있다. '시온과 주변 사람들의 성장'을 드라마의 목표로 하고, 전반 10부에는 그와 관련된 단서들을 깔아 뒀다. 그리고 후반 10부에서 그 퍼즐을 맞춘 거다.

고충만(조희봉 분)이나 환아 부모들의 변화, '내가 하지 않았는데 왜 책임을 져야 해?'와 같은 세상의 명제들, 의사의 분류에 대한 김도한(주상욱 분)의 대사…. 그런 게 전반과 후반에 다 등장한다. 그게 더 어려웠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게 아니라 이미 앞에 깔아뒀던 단서들을 회수해야 했고, 그게 흐지부지하면 안 하니만 못한 게 되니까. (웃음) 16부 이후에는 '어떻게 끝낼까'가 아니라 '앞에 펼쳐놓은 이야기를 어떻게 닫느냐'를 고민하느라 힘들었다."

- 그래서 그런지 박재범 작가를 '박꼼꼼' '박회수'라고 부르는 팬도 있더라. (웃음) 하지만 정작 윤서와 시온의 사랑을 이뤄주느냐를 두고는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하나는 이미 방송된 거고, 하나는 흔한 말로 '열린 결말'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아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이 멈칫하는 시점에서,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끝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장애인 남편을 만나 잘 사는 비장애인 여성이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나니 '너무 결말을 드라마적으로만 고민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드라마적으로 열린 결말이 낫냐, 닫힌 결말이 낫냐'를 고민한 게 아니다. 왜, <힐링캠프>에 나온 닉 부이치치도 비장애인 여성과 결혼해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지 않나.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경우가 정말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 가능할까'를 생각하는 것 또한 하나의 편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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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라인, 이것도 궁금하다. 원래 시놉시스에서는 김도한이 차윤서와 유채경(김민서 분) 사이에서 심각하게 갈등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가볍게 정리됐다.
"채경에게 돌아가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 정리는 한 타임 빠르게 했다. 계획했던 것보다 두 회 정도 빨리 정리됐으니까. 사실 그 비중 자체가 사각관계라 불릴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 서로 정말 친한 남녀 선후배 사이의 애매모호함 정도? '오피스 와이프'라는 것도 있지 않나. 그런데서 오는 갈등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한에게는 여기에서 감정을 소모하는 것보다 앞으로 해나갈 일이 너무 많았다. 전체 소아외과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했고, 극의 객관적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 부분이 컸기 때문에 빨리 정리했다. 김도한은 동화 같기도 하고,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진 것 같은 <굿닥터>의 분위기를 객관적으로 잡아 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소리만 지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웃음) 극의 조타수로, 인물을 바라보거나 특정 상황을 대할 때 가장 현명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 <굿닥터>를 이끈 '굿작가', 박재범 인터뷰 =====

1. "'굿닥터' 너무 잔잔해? 더 늘어지지 못한 게 아쉽다"
2. "현실에서 박시온을 만나면, 피하지 말아 주세요"
3. '굿닥터' 박시온이 삼각김밥만 먹은 이유, 편해서일까?
4. "'굿닥터' 굿배우들, 천재 뛰어넘어 '동물' 같았다"

굿닥터 박재범 주원 문채원 주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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