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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굿닥터>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던 건 주원이 연기한 박시온이라는 캐릭터였다. '자폐증을 앓는 천재 의사' 박시온은 지금까지의 의학 드라마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박재범 작가는 실제 자폐증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 습관을 관찰하고 이를 그대로 박시온에 녹여 냈다. 박시온이 순간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제 혈관이 보일러 호스처럼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처럼 직설적인 비유로 표현하거나, '너무너무 ~합니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는 설정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실제로 박시온과 같은 분들을 만났을 때 시청자가 그런 말투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길 바랐어요. 먼저 다가가지 못할 수는 있어도, 피하진 않았으면 했죠. 버스 같은 곳에서도 그런 분들이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앉아만 있어도 되는데, 휙 다른 자리로 가거나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마지막 회에서도 박시온이 '피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드라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피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나름대로 소명을 달성한 것 같아요."

"박시온, 그도 소아외과에서 치유받는 환자중 한 명"

-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화를 위해 농담하는 법이나 거짓말하는 법도 어느 정도 배운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굿닥터>의 박시온이 극 후반부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예기치 않은 농담을 던지는 부분도 일종의 '성장'으로 읽혔다.
"초반 대사에도 나오지만 실제로 자폐아에게 거짓말하는 법이나 남을 웃기는 법 등을 다 가르친다. 그들에게는 그것도 일종의 '정보 습득'이다. 박시온 또한 맨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습득된 상태였지만, 사랑을 계기로 기존의 모든 것이 다 깨진다. 가슴이 뛰면서 거짓말도 하게 되고, 농담도 하게 되는 거다. 사랑이라는 건 단순히 연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 있는 요소 전체를 뜻하는 거라 생각했다.

혹자는 <굿닥터>가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 드라마에서 사랑은 엄청난 치료의 방법이다. 배경을 소아외과로 설정한 이유도 10살 정도의 인격을 지닌, 또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는 박시온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굿닥터> 속 환아들과 박시온은 동일 선상에 있다. 다른 아이들은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지만, 박시온을 치료한 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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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박시온을 괴롭힌 동구나 아버지(정호근 분)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했던 건가?

"박시온의 삶에 생채기를 낸 사람들은 다 나오게 하는 게 목표였다. 그들이 다 박시온을 통해 힐링을 받는 것도 목표였고. 그래서 동구는 꼭 넣으려고 했다.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조그만 자전거포를 한다는 설정이었다. 박시온이 차윤서를 통해 위안을 받고,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안 순간 나타나게 하려고 후반부에 넣었다.

박시온의 아빠는 완전히 갱생한 건 아니다. 박시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이 사람의 최선은 박시온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박시온이 의사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김도한은 박시온의 아빠에게나 박시온에게나 시덕이(형) 같은 존재였다. 그걸 어느 순간 아빠는 알았던 거다.

그러니 아빠에게 '한 번이라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박시온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봐 준 것에 감사해 한 거고. 원래는 아빠가 병상에서 박시온을 붙잡고 말하는 신이 있었는데, 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다 뉘우치지 않고, 딱 그 정도만 보여주고 세상을 떠나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다."

- 박시온의 성장과 동시에 드라마 속 대부분의 인물들도 나름의 성장을 이룬다. 특히 출세주의에 젖어 있던 고충만(조희봉 분)이 외과 의사로서의 자아를 깨닫는 건 의미가 있었다.
"<굿닥터>에 절대 악인은 없다. 악인과 선인을 나누려 하지도 않았고, 다만 아주 현실적인 인물과 조금은 이상적인 인간을 나누어 두려 했다. 고충만은 악인이 아니라 조직 속에서 현실적인 길을 가는 사람의 상징이었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아주 아깝게 편집된 신이 있다. 고충만이 김도한(주상욱 분)과 술을 마시면서 '나 너 미워했다, 그런데 1등만 의사하라는 법 있냐. 2등 3등도 의사할 수 있지 않냐'라고 토로하는 장면이었다. 원래 그게 19회 회식신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차윤서(문채원 분)가 박시온과 공개 연애를 선언하는 장면을 부각하다 보니 아깝게 편집됐다. 고충만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감독님도 그걸 편집하고는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 고충만과 우일규(윤박 분)의 대화 장면에서도 비슷한 뜻이 전달되었던 것 같다. 천재들의 틈바구니에서 '보통 사람'인 그들의 애환이 느껴졌다 해야 할까. 그 장면에서 '평범한 의사'들에 대한 따뜻함도 느껴졌다.
"강현태(곽도원 분)의 아들을 수술하는 방법도 결국은 평범한 의사인 차윤서가 답을 찾지 않나. 그런 부분들을 통해 평범한 의사들을 향한 존경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의료행위에 '개인'은 없다. 대부분이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거지. 박시온이 천재적인 진단 능력을 보여 주지만, 그건 다 책에 있는 거다. 없는 것을 발견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후반부 박시온의 능력을 많이 부각시키지 않았던 것도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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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갖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1회 쓰기 전부터 생각한 대사"

- 다른 이야기인데, <굿닥터> 속 환아들을 보면 말하는 게 참 어른스럽다고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당장 내 7살짜리 딸만 봐도 어른스럽다. (웃음) 그런 부분을 좀 더 어른스럽게 꾸며 봤다. <굿닥터> 속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 아니다. '동심'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개인이 말하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바라는 것이나 가치관을 내가 좀 더 양념한 거다. 또 어린아이가 아이처럼 이야기하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아이의 이야기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 않겠나. 드라마 속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는 건, 그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듣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도 참 많았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위한다'는 단어는 <굿닥터> 곳곳에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안 좋아한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독설을 하고 쿨하게 이야기하는 게 미덕이 됐더라. '오글거린다'는 말도 마음에 안 든다. '우리는 하나야' '사랑해' 같은 말은 사실 옛날엔 많이 썼던 표현들인데, 요즘 사람들은 그게 '오글거린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를 사회의 일원으로 만든 건 바로 '사랑해' '예쁘다' '고마워' 같은 말을 해 준 부모님의 오글거림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폭탄을 투하하듯, '위한다' 말고도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예쁘다' 같은 말을 반복해 넣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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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교훈적인 내용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선생질하는 드라마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게 떠오르는데…. <굿닥터> 역시 일종의 '선생질'이었던 건가? (웃음)
"지금의 나를 키운 것도, 내 친구들과의 우정을 만들어준 것도 다 그 오글거리는 말들이다. 그런데 요즘엔 일단 공격적이어야 하고, 독설을 해야 한다. 그 정반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정확히 말해 이번엔 '선생질'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정도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 따뜻함을 갖고 있지만 잠깐 그걸 잊고 있지 않나'라는 거다. 세상이 표현에 대해 너그럽지 않아졌으니까…. 그런데 그건 분명히, 100%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 강현태가 추진하려 했던 영리병원 전환 문제 역시 사회와 인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는 박재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웃음)
"영리병원 얘기는 생각보다 많이 못했다. 박시온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원래 하던 이야기의 반밖에 못 했다. 잠깐 언급됐던 '포괄수가제'도 굉장히 중요한 화두다. 영리병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많이 강조하면 마지막에 스토리가 산만해질 것 같았고, '이정도만 해도 충분히 뜻은 전달했다' 싶어서 줄였다. 마지막 회에 나온 강현태의 '아이들 갖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대사는 1회를 쓰기 전부터 생각했던 거였다."

"함부로 다뤄선 안 되는 '타인의 인생', 그게 나의 '그린메스'"

- 문득 궁금해진다. <굿닥터> 속 인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박시온과 차윤서는 결혼을 할지 안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의지에 의해 잘 해나갈 것 같다. 차윤서는 박시온의 장애와는 상관없이 그의 선한 본모습을 좋아하고, 박시온도 차윤서가 예뻐서 사랑하는 것도 있겠지만,(웃음) 정말 그에게 감사해 하고 있다. 진짜 감정으로 엮인 커플이니 잘 될 거다. 포스터 속 모습처럼 마지막 회를 끝낸 것도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그 공간에 덩그러니 둘만 있는 모습은 둘만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걸 암시한 거다.

김도한과 유채경(김민서 분)은 깨지면 안 된다. (웃음) 사실 결혼사진이 나오는 장면이 대본엔 있었는데, 다 찍을 시간이 없었다. 한진욱(김영광 분)과 나인영(엄현경 분)은 100% 결혼한다. 한진욱은 나인영의 의료적 주치의임과 동시에 영혼의 주치의니까. 나인영과 나인해(김현수 분)는 몇 년간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고, 임신과 출산에 각별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한진욱이 옆에 있는 거다. 사실 한진욱은 부잣집 아들이라는 설정이다. 김도한보다 더 좋은 외제차를 타는 애다. (웃음)

파트장 남주연(진경 분)과 시니어 조정미(고창석 분)도 결혼할 확률이 높다. 고충만과 우일규는 정말 좋은 외과의사가 될 거다. 그간 그들이 천재들에 밀린 2등 3등 외과 의사였다면, 박시온에 의해 변화된 마음이 그들을 1등 외과 의사로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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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회에서 박시온은 '좋은 의사는 좋은 사람들이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처가 많이 있어야한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한다. 박재범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남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부족함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혼자만 행복한 거지만, 스스로 좀 아파보고 그걸 딛고 행복해진 사람들은 남들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의 행복은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행복이다. 차윤서가 테이블 데스(수술 중 환자 사망)를 겪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아파봐야 절실하게 남을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테고, 그게 진정한 치유일 테니까. 그래서 <굿닥터>는 결국 의사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 박시온은 형이 준 그린메스 덕분에 의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김도한에게는 동생이 준 책이 있었다. 박재범 작가에게도 '그린메스'가 있었나?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는데,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글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뭘 쓰지', '나는 왜 작가가 하고 싶지' 생각했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인생이더라. 타인의 인생, 그게 나에게는 그린메스다. 다만 원칙은 있다. '남의 인생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거다. 가공의 인물이라도 남의 인생을 함부로 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 또 다른 타인들의 인생을 그려 낼 박재범 작가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생각한 게 있나?
"<굿닥터>는 내가 잘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였다. 다음엔 내가 잘 하는 걸 해보려 한다. <굿닥터>보다 8배는 빠르고 8배는 더 엎치락뒤치락하는, 맛깔스럽고 쫀득한 작품일 거다. <굿닥터>에서 가졌던 사회적 소명의식은 잠시 내려놓고, 내가 즐기면서 확실히 잘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

===== <굿닥터>를 이끈 '굿작가', 박재범 인터뷰 =====

1. "'굿닥터' 너무 잔잔해? 더 늘어지지 못한 게 아쉽다"
2. "현실에서 박시온을 만나면, 피하지 말아 주세요"
3. '굿닥터' 박시온이 삼각김밥만 먹은 이유, 편해서일까?
4. "'굿닥터' 굿배우들, 천재 뛰어넘어 '동물' 같았다"

굿닥터 박재범 주원 문채원 주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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