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6일 열린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 베트남 선수들이 태국과의 경기 전 팀 단체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박항서 감독은 이미 베트남 축구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대 최고의 감독이다. 2017년 10월 베트남 A대표팀 및 U23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한 이래 박 감독은 눈부신 업적을 쌓으며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던 베트남 축구를 몇 단계나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항서호는 23세 이하 대표팀의 'AFC U23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AFF컵 결승진출 2회-우승 1회, 2019 AFC아시안컵 8강, FIFA월드컵 동남아 최초의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 동남아시안게임 2연패,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위 등이다. 모두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 혹은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박 감독의 부임 이전까지 100위권 밖을 맴돌던 베트남의 FIFA랭킹은 박 감독의 등장 이후 두 자릿수대로 진입하여 줄곧 내려오지 않았다. 베트남 축구가 박항서 시대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박 감독의 성공은 동남아시아 축구에 '지도자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박 감독이 베트남에서 기대 이상의 신화를 창조하며 동남아시아 축구계에서 한국 지도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신태용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인도네시아, 김판곤 전 축구협회 감독선임위원장은 말레이시아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성공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AFF컵에서 박항서의 베트남을 비롯하여 태국을 제외하고 나란히 4강에 오른 3팀이 모두 한국인 지도자들이 지휘봉을 잡은 팀이라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박 감독의 성공이 한국축구와 우리 사회에 주는 또다른 교훈은 '경험과 연륜의 재발견'이라는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데 있다. 박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4강신화를 이뤄내는 데 기여하며 이름을 크게 알렸지만, 이후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여 잊혀져가고 있던 인물이었다. 한일월드컵과 같은 해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사령탑에 올랐으나 금메달에 실패하면서 더 이상 대표팀에서 기회를 얻지 못 했다. 지도자 경력은 길지만, 스타 출신 감독들에 밀려 프로 감독 데뷔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박 감독은 이후로는 주로 K리그 중하위권팀들의 감독직을 전전했고, 베트남의 지휘봉을 잡기 직전에는 1부리그도 아닌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의 감독직을 맡고 있었다. 박 감독이 베트남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현지에서도 고작 "한국 3부리그 수준의 감독을 데려왔다"며 뜬금없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박 감독과 베트남 축구의 만남은 서로에게 윈-윈이 됐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며 만일 국내 무대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축구 경력의 막바지에 와 있었을 박 감독은, 말년에 첫 해외무대 도전을 통하여 '지도자 인생의 뒤늦은 전성기'를 스스로 개척했다. 그간 높은 축구 인기에 비하여 피지컬과 기술의 한계로 국제대회 성적은 좋지 않았던 베트남은, 박 감독이 부임하면서 체계적인 선수관리, 압박과 역습, 활동량같은 한국축구의 장점들을 이식하며 한결 끈끈한 팀으로 진화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던 도전의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