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삶이 시디신 레몬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처럼 신산할 때가 있다. 의도하지 않거나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이 '신산함'의 다른 이름이 '외로움' 이란 걸, 일을 그만두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야말로 문득 깨닫게 되었다.
찬바람이 불어와 어깨가 절로 동그랗게 말리는 12월 즈음, 짧은 겨울 해를 받기 위해 거실 소파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툭, 하고 굵은 눈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뭐지? 왜 눈물이 나지? '라고 채 깨닫기도 전에 한 방울의 눈물이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통곡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을 목도한 이후, 가장 큰 울음이자 전례 없던 '대성통곡'이었다.
꽤 오랜 기간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해 오면서 더 이상 나로부터 길어 올릴 그 어떤 물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둬야겠단 결심을 했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이내 실행으로 옮겨버렸다. 결단의 순간, 당시 함께 프로그램을 이끌던 담당 프로듀서는 눈꼬리를 한껏 내린 불쌍한 얼굴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작가님 출근 안 하셔도 되고, 원고만 보내 주셔도 된다니까요! 자녀분도 대학에 입학 잘~했고, 작가님 주변에 별로 신경 쓸 일도 없으신데, 왜 일을 그만두려고 하세요? 일 하시던 분이 안 하면 병난다고 하던데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능력은 둘째치고 경력이 이만한 작가를 당장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남부러워할 만한 보수를 벌어 들이는 직업은 아니나 프리랜서로 살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의 감성을 이어갈 수 있는 작가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내게도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바로 그 순간,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나는 숨을 쉴 수 없는 진공의 공간에 영원히 갇힐 것 같았기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에~이 뭐 새로운 작가랑 일하면 좋아할 거면서... 사람은 떠날 때를 알고 떠나야 뒷모습도 아름다운 법이라고요! 그러니 나 말리지 마요. 더이상."
사실 경력단절의 기간을 제외하고라도 20년 이상을 하나의 일에 정진해온 터라, 섭섭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어떤 회유와 압박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 결심했기에 말을 뱉은 후 정들었던 스튜디오를 나서기까지 놀라우리만치 거침이 없었다. '떠나는 것이 이리 쉬울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떠날걸, '이란 마음마저 생겨날 만큼.
그때가 11월로 막 접어든 가을 개편 시즌이었고, 이후로 어찌어찌해서 다른 지역의 음악 방송을 울며 겨자 먹기로 1년쯤 더 한 뒤(그 굳은 결심이 누군가에 의해 와르르 무너져) 마침내 애증으로 뒤범벅된 방송가를 떠나게 됐다. 삶의 신산함과 외로움의 등가 관계를 깨달은 건 그로부터 또 몇 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던 거 같다. 왠지 일을 그만두자마자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어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원고로 쓴 게 틀림없어!' 라며 이제는 그냥 무작정 쉬어보자 다짐에 다짐을 거듭해가던 날들이어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창밖엔 겨울 햇살이 찬란한데 이상하게 공허한 것이다. 그것도 전에 겪어 보지 못한 아주 지독한 공허함이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인지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리모컨을 찾아 음악을 틀었다. 음악이라도 없으면 껍데기만 남은 몸이 산산이 부서져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만 같은 조급함이 숨통을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흐르는 음악을 따라 신산함이 외로움으로 그리고 공허함은 공포로 급격히 바뀌어갔고 내 몸과 마음은 먼지가 돼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듯했다.
선명하게 다가온 노랫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