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서 일단 한 번 다녀오면 자녀의 성적이 쑥쑥 오른다는 신통방통한 학원의 존재가 큰 화제가 됐다. 학생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일정기간 숙식을 하면서 아침에 일어난 후부터 자기 전까지 공부만 시키는 오직 공부만을 위한 '기숙학원'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성적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마법의 학교'로 통하던 기숙학원은 정작 학생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하는 빽빽한 스케줄도 불만이었지만 무엇보다 기숙학원의 내부규율이 비인간적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기숙학원은 학생들 사이에서 '스파르타 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혹독한 교육과 비인간적인 훈련을 통해 강한 병사들을 육성하던 스파르타 군대를 연상하게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던 스파르타 군대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존경과 감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영화 <300>이 그 주인공이다. 
 
 <300>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음에도 국내에서 290만 관객을 동원했다.
<300>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음에도 국내에서 290만 관객을 동원했다.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액션 연기에 특화된 제라드 버틀러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는 배우로 데뷔하기 전 독특하고 이색적인 직업을 경험했던 배우들이 적지 않다.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매튜 메커니히는 닭장 청소부로 일한 경력이 있고 브래드 피트는 음식점 앞에서 인형탈을 쓰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하지만 이 배우는 고생스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비교적 우아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했던 제라드 버틀러였다.

1997년 <미세스 브라운>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업한 버틀러는 2003년 <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에서 안젤리나 졸리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명 뮤지컬을 영화화했던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오페라의 유령> 역시 초창기 버틀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었다. 하지만 1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버틀러의 대표작은 역시 2007년에 개봉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이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스파르타의 시각에서 묘사한 영화 <300>에서 버틀러는 스파르타 전사들을 이끄는 레오니다스 왕을 카리스마 있게 연기하며 세계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6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300>은 세계적으로 4억5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300>은 국내에서도 29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7년 < P.S 아이 러브 유 >와 2008년 <님스 아일랜드>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던 버틀러는 2009년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한 또 하나의 대표작 <모범시민>을 선보였다. 불법적인 사법거래에 불만을 품은 주인공의 정부를 향한 처절한 복수를 담은 <모범시민>은 제작비의 2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며 선전했다. 다만 버틀러는 특유의 거칠고 마초적인 이미지 때문에 로맨스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버틀러는 2010년대 들어서도 <백악관 최후의 날>,<런던 해즈 폴른>,<엔젤 해즈 폴른> 등 여러 액션 영화들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액션 스릴러에 특화된 배우로 사랑 받고 있다. 2010년부터는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에서 버크족 족장 스토이크의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이름값에 비해 메가히트작이 부족해 작품을 고르는 눈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버틀러는 언제나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배우다.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액션쾌감
 
 제라드 버틀러는 <300>을 통해 세계적인 액션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제라드 버틀러는 <300>을 통해 세계적인 액션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뮤직비디오 및 CF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잭 스나이더 감독은 2004년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물론 <새벽의 저주>는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했지만 스나이더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보여주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평가를 의식했을까. 스나이더 감독은 차기작 <300>을 통해 자신의 영상미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사실 <300>의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레오니다스 왕(제라드 버틀러 분)이 이끄는 스파르타의 전사 300명이 '한 없이 관대한' 크세르크세스 황제(로드리고 산토로 분)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대군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고르고 왕비(레나 헤디 분)와 의원들의 갈등이 비교적 큰 분량을 차지하지만 결국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장면은 대부분 스파르타 전사들의 화려한 전투 장면에 집중돼 있다. 

프랭크 밀러가 만든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300>은 원작의 느낌을 잘 구현하면서 독창적인 영상미를 뽑아낸 잭 스나이더 감독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슬로모션과 롱테이크 기법들, 그리고 합을 잘 맞춘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장면들을 보여준다. 실제로 <300>의 액션 장면들은 국내에서도 드라마 <추노>, 영화 <안시성> 등 여러 작품에서 오마주됐다.

물론 스파르타 군인들을 선역, 페르시아 군인들은 악역으로 표현한 것은 이란 등 아랍권 관객들에게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스파르타 군인들을 용맹한 군인들로 묘사한 것에 비해 페르시아 군인들은 판타지 영화 속 오크군단을 보는 것처럼 보기에도 흉측한 괴물들로 묘사했다. 영화 개봉 후 이란 정부에서는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에 공식사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페르시아 후예들의 '저주'가 이뤄진 것일까. 잭 스나이더 감독과 제라드 버틀러가 모두 빠진 속편 <300: 제국의 부활>은 2014년 개봉해 1억1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3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지만 전편만큼의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지난 3월에는 <300: 전사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이는 프랭크 밀러 원작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오리지널 <300> 시리즈와는 무관한 영화였다.

화려한 피어싱으로 관대함 강조한 호드리구 산토로
 
 크세르크세스 황제를 연기한 로드리고 산토로는 분장을 하지 않으면 상당한 미남배우다.
크세르크세스 황제를 연기한 로드리고 산토로는 분장을 하지 않으면 상당한 미남배우다.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300>의 주인공은 당연히 "THIS! IS! SPARTA!!"를 외치며 페르시아에서 온 거만한 사자를 발로 차버리는 스파르타의 용맹한 레오니다스 왕이다. 하지만 <300>에서는 레오니다스 왕이나 스파르타 전사들보다 더욱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캐릭터가 있었다. 과도한 피어싱과 심하게 치장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자신의 관대함을 강조하며 스파르타의 항복을 요구하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였다.

크세르크세스 황제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브라질 출신의 배우 호드리구 산토로. <300>에서와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한 꽃미남 배우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로라 리니가 짝사랑하는 칼을 연기했던 산토로는 한국배우 김윤진이 출연했던 드라마 <로스트>에서도 파울로를 연기했다. 그리고 2016년에 리메이크된 고전 영화 <벤허>에서는 무려 예수님을 연기하기도 했다.

단역에 가까웠던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레나 헤디가 연기한 고르고 왕비의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고 홀로 남은 고르고 왕비는 테론 의원(도미닉 웨스트 분)의 반대에도 페르시아의 대군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남편과 스파르타 전사들을 위해 파병을 주장한다. 레오니다스 왕 역시 페르시아군의 화살 세례가 쏟아지는 순간 조국이나 함께 싸운 동료들이 아닌 "나의 여왕.. 나의 아내.. 나의 사랑"이라고 부르며 최후를 맞는다.

<300>에는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들 중에서 오늘날 상당히 유명해진 배우 한 명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엑스맨> 비기닝 시리즈에서 매그니토 에릭 렌셔를 연기했던 마이클 패스벤더가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데뷔한 패스벤더는 주로 드라마에서 활동하다가 <300>에서 스텔리오스를 연기하며 영화로 데뷔했다. 패스벤더는 <300> 이후 영화 출연 비중을 늘리면서 오늘날 관객들에게 익숙한 스타배우로 성장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300 잭 스나이더 감독 제라드 버틀러 마이클 패스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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