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1979년, 국내에선 1987년에 개봉한 리들 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은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괴물 에이리언에 맞서 싸우는 여전사 시고니 위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4년과 1992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 1, 2에서는 세라 코너를 연기한 린다 해밀턴이라는 걸출한 여전사가 등장했고 밀라 요보비치는 <제5원소>를 거쳐 2002년부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통해 여전사의 계보를 이었다.

2010년대부터는 여전사들도 더욱 다양해졌다. <킥 애스> 시리즈의 힛걸(클로이 모레츠 분)처럼 귀여운 여전사도 있었고 <어벤저스> 시리즈의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처럼 첩보에 특화된 여전사도 있었다. 미셸 로드리게스가 연기한 <분노의 질주>의 레티 오티즈도 빼놓을 수 없고 최근에는 갤 가돗이 연기한 원더우먼이 침체돼 있는 D.C필름스를 먹여 살리는 '소녀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할리우드 여전사 계보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바로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로 유명한 안젤리나 졸리다. <툼 레이더>를 비롯해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솔트> 등 많은 액션 영화에서 멋진 여전사를 연기했던 안젤리나 졸리는 유독 이 영화에서만큼은 주인공의 '멘토'로 출연했다. 무기력하게 살던 청년을 뛰어난 암살자로 키워내며 또 다른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원티드>였다.
 
 <원티드>는 국내에서도 28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티드>는 국내에서도 28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유니버설픽쳐스 인터내셔널코리아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배우

출세작 <툼 레이더>부터 최신작 <이터널스>까지. 많은 관객들은 안젤리나 졸리 하면 강인한 여전사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초창기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던 '연기파 배우'에 가까웠다. 안젤리나 졸리는 1999년 드라마 <지아>를 통해 골든글러브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의 리사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활동하던 안젤리나 졸리는 2001년 게임을 원작으로 만든 액션 영화 <툼 레이더>에서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툼 레이더>는 세계적으로 2억 74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렸고 2003년에는 속편이 개봉되기도 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안젤리나 졸리는 이후 <알렉산더> <샤크(목소리 출연)> <월드 오브 투모로우> 등에 출연하며 명성을 높였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2005년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 출연해 대체불가 섹시 여전사로 거듭났다. 킬러들이 부부싸움을 하는 무시무시한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는 세계적으로 4억 87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2008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에서 타이그리스의 목소리 연기를 한 안젤리나 졸리는 같은 해 <원티드>에 출연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원티드>에서 아버지가 전설적인 킬러였던 평범한 청년을 가르치는 멘토 폭스를 연기했다. 그동안 조연이나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하지 못한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제임스 맥어보이의 출세작이기도 한 <원티드>는 7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3억 42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원티드>는 국내에서도 2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9년과 2011년, 2013년에 걸쳐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서 뽑은 '가장 출연료가 높은 여성 배우'로 선정된 안젤리나 졸리는 2011년과 2014년 <피와 꿀의 땅에서>와 <언브로큰>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4년 <말레피센트>로 7억 58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한 안젤리나 졸리는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의 <이터널스>에서  코스믹 에너지로 냉병기를 소환해 싸우는 여전사 테나를 연기할 예정이다.

통쾌한 액션에 뜨끔한 교훈까지 담긴 영화
 
 안젤리나 졸리는 <원티드>에서 평범한 회사원 웨슬리를 암살자로 키우는 멘토로 활약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원티드>에서 평범한 회사원 웨슬리를 암살자로 키우는 멘토로 활약했다.유니버설픽쳐스 인터내셔널코리아
 
동거하는 여자친구와 매일매일 싸우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잔소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회사원 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 분)는 긴장하면 심박수가 올라가 발작을 일으키는 지병까지 앓고 있다. 마트에 약을 사러 간 웨슬리는 우연히 아름다운 암살자 폭스(안젤리나 졸리 분)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전설적인 킬러였던 아버지가 조직의 배신자에게 살해 당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긴장하면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는 지병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킬러 본능임을 듣게 된 웨슬리는 방직공장으로 위장한 결사단의 본부로 들어가 본격적인 킬러 교육을 받는다. 웨슬리는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훈련과 운명의 방직기가 알려주는 이름으로 살인 타깃을 정하는 비과학적인 결사단의 운영에 회의를 느낀다. 하지만 폭스는 방직기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그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웨슬리에게 털어놓는다.

결사단의 힘든 훈련 과정을 마친 웨슬리는 아버지의 원수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배신자 크로스(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쫓아 그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죽였다고 믿었던 배신자는 다름 아닌 웨슬리의 아버지였다. 운명의 방직기가 정해주는 타깃이 결사단 리더 슬론(모건 프리먼 분)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웨슬리는 아버지의 진짜 원수를 처단하기 위해 아버지의 총을 들고 방직공장에 찾아간다. 

<원티드>에서 관객들의 심장을 가장 쫄깃하게 만드는 장면은 역시 웨슬리와 슬론, 폭스를 비롯한 결사단의 킬러들이 한자리에 모인 마지막 장면이다. 웨슬리와 폭스를 제외한 나머지 킬러들은 슬론의 그럴듯한 논리에 넘어가지만 폭스는 홀로 미소를 지으며 총알이 크게 원을 그리며 휘는 사격을 통해 웨슬리와 슬론을 제외한 모든 킬러들을 사살하고 자신도 총알을 피하지 않고 자결한다. 폭스가 쏜 총알에는 'Good-bye'라고 쓰여 있었다.

모든 비극의 원흉인 슬론은 방직공장에서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웨슬리가 심어둔 미끼에 걸려들어 머리에 총을 맞고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빼앗긴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되찾은 웨슬리는 카메라를 보며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침을 날린다. "지금 당신은 대체 뭘 하고 있나?" <원티드>가 단순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가 아닌 관객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다.

<가오갤><어벤저스>의 스타로드가 <원티드>에?
 
 <택시운전사>의 피터기자는 <원티드>에서 웨슬리의 아버지이자 전설적인 킬러를 연기했다.
<택시운전사>의 피터기자는 <원티드>에서 웨슬리의 아버지이자 전설적인 킬러를 연기했다.유니버설픽쳐스 인터내셔널코리아
 
많은 영화에서 선과 악을 오가는 배우 모건 프리먼은 <원티드>에서 '결사단의 리더' 슬론을 연기했다. 웨슬리를 결사단으로 끌어들여 뛰어난 암살자로 성장시키지만 사실 그 목적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조직을 배신한 크로스를 아들의 손으로 죽이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결사단을 이용해 일확천금을 노리려는 의도는 없어 보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폭스도 그동안 그가 맡았던 캐릭터들에 비하면 비중이 다소 작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폭스는 웨슬리를 훈련시킬 때 기차 터널에서 아크로바틱한 묘기를 선보이고 웨슬리가 커브 사격에 자신감을 갖지 못할 때는 직접 목숨을 걸고 타깃을 자처한다. 웨슬리를 뛰어난 암살자로 성장시키려는 '멘토'로서의 책임감과 애정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웨슬리의 아버지 크로스는 자신을 죽이러 온 아들을 낭떠러지에서 구해낸 후 아들이 쏜 총에 맞고 최후를 맞는다. 크로스는 부서진 열차 안에서 웨슬리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 후 숨을 거두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크로스를 연기한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은 지난 2017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넘긴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 피터를 연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다.

<원티드>에는 개봉 13년이 지난 후에 보면 관객들에게 매우 익숙한 스타 배우 한 명이 단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스타로드를 연기한 크리스 프렛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어벤저스> <쥬라기 월드> 등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크리스 프렛은 무명 시절이었던 2008년 <원티드>에서 웨슬리의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는 못된 직장동료 베리 역으로 짧게 등장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원티드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 안젤리나 졸리 제임스 맥어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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