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부르는 하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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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은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로 시작한다.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고모령이란 고개를 배경으로 한 노래다. <불후의 명곡>이 친일파의 작품을 하필이면 3·1운동 100주년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편에 내보내는 바람에 논란이 됐던 것이다.
본명이 박순동인 박시춘은 일제강점 3년 뒤인 1913년 10월 28일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지금 MBC에서 방송되는 <이몽>의 주인공, 김원봉과 동향 사람이다. 하지만 밀양이 낳은 전설적 독립투사 김원봉과 정반대 삶을 산 사람이다.
밀양보통학교를 중퇴한 뒤 11세 무렵 가출해 악단 유랑생활을 한 그는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가수의 길도 걸었다. 기타 연주에도 뛰어났다. 이것이 작곡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 보이그룹 아리랑보이즈에서 '아이돌' 생활도 했다.
그의 주 특기는 작곡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박시춘 편에서는 "1943년까지 발표한 작품 수는 확인되는 것만 270곡 이상"이라고 소개한다. '항구의 선술집', '물방아 사랑',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무정천리' 등이 대표작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에 대중의 사랑과 애환을 다룬 작품만 만들었다면, <불후의 명곡> 3·1운동 100주년 특집에 그의 노래가 나왔다는 이유로 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일본군국주의의 승리를 위해 대중을 감화시키는 음악 활동에 열과 성을 보인 인물이다.
1942년부터 그가 작곡한 일본 군국가요로 확인되는 것은 '아세아의 합창', '결사대의 아내', '조선해협', '고성의 달, '남쪽의 달밤', '병원선', '진두의 남편', '옥퉁소 부는 밤', '지원병의 집',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낭자일기', '즐거운 상처' 등 총 13곡이다.
일왕을 '님'이라 칭한 작곡가
아무리 군국가요일지라도 어디까지나 대중가요였을 텐데, 노래 속에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낭자일기'란 노래를 들어보면, 그런 의문이 쏙 들어가게 된다.
박시춘이 작곡하고 친일파 조명암이 작사하고 친일파 남인수가 부른 '낭자일기'는 일본제국주의에 희생되는 한국 여성들의 불행을 오히려 찬미하는 노래다. 이런 대목이 있다.
낭자는 꽃이었소 붉은 정성의
한 조각 떨어지는 낙엽이었소
맘대로 못 정하는 생사일망정
떳떳이 죽는 것이 소원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