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와 '고향의 봄', 그리고 '가고파'까지. 아이와 어른 모두 무심코 흥얼거리는 이 노래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친일 음악가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친일 작곡가, 그 실체'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친일 음악가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편집자말]
 2016년 규현은 '제주 삼다수' 광고에 삽입될 '삼다도 소식'을 리메이크했다. '제주도민가'라 불릴 정도로 제주도민들이 사랑한 이 곡은 친일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했다.

2016년 규현은 '제주 삼다수' 광고에 삽입될 '삼다도 소식'을 리메이크했다. '제주도민가'라 불릴 정도로 제주도민들이 사랑한 이 곡은 친일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했다.ⓒ 광동제약 제주 삼다수 CF


제주도민들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노래가 있다. 바람과 돌과 여성이 많았던 시절의 제주도를 노래한 '삼다도 소식'이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맹이도 흔한데"(A)와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B)란 대목이 인상적이다. 가수 황금심이 부른 원래 버전과 달리, 나훈아와 슈퍼주니어 규현 등이 부른 버전에는 A 부분이 없고 B만 두 번 반복된다.
 
이 노래는 단순히 제주도민 애창곡 수준이 아니었다. '제주도민가'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해사문제연구소가 발행한 <해양한국> 2013년 3월호에 실린 '바다 따라 노래 따라: 삼다도 소식'은 "이 곡은 제주도민가라 할 만큼 제주 사람들이 즐겨 부른다"며 "회식 때는 물론 고향을 떠나 사는 향우회 회원, 도민회 회원 등 출향 인사들의 애창곡"이라고 소개한다.
 
이 가요는 처음에는 군인들을 위한 노래였다. 한국전쟁(6·25 전쟁) 중인 1952년, 군대 진영 내에서 불려지게 할 목적으로 제작한 진중(陳中)가요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삼다도 소식'은 1952년 제주도 군부대에서 만들어졌다. 6·25 전쟁 중 진중가요로 태어난 것이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부르는 보통의 대중가요가 됐지만, 뿌리를 파고들면 군인들을 위한 노래로 첫선을 보였다." 

친일 작곡가 박시춘, 그가 쓴 노래들 
 
그런데 이 노래는 친일파가 만든 곡이다. 작사가 유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작곡가 박시춘이 바로 그 친일파다. 지난 3월 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그가 작곡한 '비 내리는 고모령'이 불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3월 9일,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부르는 하은의 모습.

지난 3월 9일,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부르는 하은의 모습.ⓒ KBS

  
가수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은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로 시작한다.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고모령이란 고개를 배경으로 한 노래다. <불후의 명곡>이 친일파의 작품을 하필이면 3·1운동 100주년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편에 내보내는 바람에 논란이 됐던 것이다.
 
본명이 박순동인 박시춘은 일제강점 3년 뒤인 1913년 10월 28일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지금 MBC에서 방송되는 <이몽>의 주인공, 김원봉과 동향 사람이다. 하지만 밀양이 낳은 전설적 독립투사 김원봉과 정반대 삶을 산 사람이다.
 
밀양보통학교를 중퇴한 뒤 11세 무렵 가출해 악단 유랑생활을 한 그는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가수의 길도 걸었다. 기타 연주에도 뛰어났다. 이것이 작곡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 보이그룹 아리랑보이즈에서 '아이돌' 생활도 했다.
 
그의 주 특기는 작곡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박시춘 편에서는 "1943년까지 발표한 작품 수는 확인되는 것만 270곡 이상"이라고 소개한다. '항구의 선술집', '물방아 사랑',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무정천리' 등이 대표작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에 대중의 사랑과 애환을 다룬 작품만 만들었다면, <불후의 명곡> 3·1운동 100주년 특집에 그의 노래가 나왔다는 이유로 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일본군국주의의 승리를 위해 대중을 감화시키는 음악 활동에 열과 성을 보인 인물이다.
 
1942년부터 그가 작곡한 일본 군국가요로 확인되는 것은 '아세아의 합창', '결사대의 아내', '조선해협', '고성의 달, '남쪽의 달밤', '병원선', '진두의 남편', '옥퉁소 부는 밤', '지원병의 집',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낭자일기', '즐거운 상처' 등 총 13곡이다. 

일왕을 '님'이라 칭한 작곡가  
 
아무리 군국가요일지라도 어디까지나 대중가요였을 텐데, 노래 속에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낭자일기'란 노래를 들어보면, 그런 의문이 쏙 들어가게 된다.

박시춘이 작곡하고 친일파 조명암이 작사하고 친일파 남인수가 부른 '낭자일기'는 일본제국주의에 희생되는 한국 여성들의 불행을 오히려 찬미하는 노래다. 이런 대목이 있다.
 
낭자는 꽃이었소 붉은 정성의
한 조각 떨어지는 낙엽이었소
맘대로 못 정하는 생사일망정
떳떳이 죽는 것이 소원이었소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동원된 여성들.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동원된 여성들.ⓒ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조명암이 작곡하고 친일파 백년설이 부른 '즐거운 상처'를 들어봐도 탄식이 새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일제를 위해 싸우다 몸을 다쳐 병상에 누운 남자가 "상처는 만질수록 상처는 아파/ 님에게 못다 바친 목숨이 슬퍼"라며 애석해 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님'은 만해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그런 님이 아니다. 현재 일왕(천황)인 나루히로의 할아버지인 히로히토 일왕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노래 속의 한국 남성은 '님'에게 목숨을 못다 바치고 병상에 누워 있는 자기 자신을 한스러워 한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도 전투 현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불현듯 떠올린다. 이런 사람을 본받으라는 메시지를 한국 남성들에게 전하는 작품이다. 노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못 생겨 그런 것도 아니언만은
병상에 누운 대로 생각을 하면
불현듯 가고 싶은 저 땅의 전지(戰地)
훈장에 절을 하며 눈물집니다 눈물집니다

 
 육군특별지원병으로 강제징병된 사람들.

육군특별지원병으로 강제징병된 사람들.ⓒ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박시춘은 단순히 작곡으로만 히로히토 일왕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아코디언을 들고 '님'을 위한 공연 현장에도 달려갔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친일인명사전>은 이렇게 소개한다.
 
"1943년 9월부터 11월까지 매일신보사가 주최하고 '국민총력 조선광산연맹'이 후원했으며 조선연예문화협회가 연예 분야를 제공해서 조직한 '산업전사 격려 위문예능대' 대원으로 아코디언과 기악을 맡았다. 위문예능대는 강원도 영월탄광을 시작으로 함경북도·평안남도·황해도·경기도 일대 42개 광산을 순회하며 국민가요와 경음악 등을 공연했다."
 
매일신보사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발행 기관이었다. 국민총력연맹은 식민지의 인적·물적 자원을 침략전쟁에 동원하는 기관이었다. 매일신보사가 주최하고 국민총력연맹 산하 조선광산연맹이 후워하는 위문예능 행사를 위해서도 박시춘은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제주올레길 중에서도 송악산을 지나는 10코스는 풍광이 좋기로 소문났다.

제주올레길.ⓒ 제주올레제공

   
그렇게 일본에 대한 충성심으로 충만했던 그가 제주도를 노래하는 '삼다도 소식'에 곡을 붙였다. 그리고 그것이 제주도민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따라 불렀을 제주도민들의 마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사랑 받는 박시춘의 노래들, 하지만 
 
그는 제주도민들뿐 아니라 한국인 전체를 위해서도 '선물'을 만들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해방 후에도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82년에 문화훈장을 받았을 정도다. 한국전쟁 중에는 국군을 위한 노래를 작곡하고 휴전 뒤에는 일반 대중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무려 3000곡이 넘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한국인들은 홀로 흥얼거릴 때나 노래방에 있을 때 박시춘의 노래를 부른다. 작곡가가 친일 매국노라는 사실도 모른 채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따라 부를 수 있었던 최대 요인은 우리 사회의 친일청산이 여전히 불철저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친일파가 문화훈장까지 받고 83년 인생을 만족스러워 하며 지난 1996년에 생을 마감했을 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작품을 통해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친일청산이 아직 ABC 단계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에 씁쓸함만 진해질 뿐이다.

[친일 작곡가, 그 실체 ①] 육군훈련소에 울려 퍼지는 친일파의 노래... 이럴수가
http://omn.kr/1jy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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