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둑>은 이인성 장애를 다룬 영화로,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얼굴도둑>은 이인성 장애를 다룬 영화로,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 (주)미디어로그


'이인증'이란 정신분석학 용어가 있다. 영어로는 '디퍼스널리제이션'(Depersonalization). 직역하면 몰개인화, 객관화란 뜻이다. 말하자면 개인이 자아를 상실한 채 스스로를 객체로서 인지하는 증상인데, 이 때문에 이인성 장애를 겪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자기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실존하는 자신'은 희미하기만 하고 상대적으로 '관찰하는 자신'이 선명하게 남는다. 말하자면 그의 자아는 어떤 대상을 향하는 '시선'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19일) 개봉한 영화 <얼굴도둑>의 주인공 세바스티앙(마티유 카소비츠 분) 또한 이인성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에게는 비밀스런 취미가 있는데, 그건 바로 타인의 삶을 모방하는 것. 부동산 중개업자인 그는 자신의 의뢰인들을 남몰래 관찰한 뒤 그들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냄으로써 자아를 지각한다. 어느 날 은퇴한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몽탈트가 그에게 집을 의뢰해 오고, 습관처럼 몽탈트의 얼굴을 훔친 세바스티앙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과 마주한다.

 세바스티앙은 몽탈트의 얼굴은 물론 그 이상의 것들까지도 모방한다.

세바스티앙은 몽탈트의 얼굴은 물론 그 이상의 것들까지도 모방한다. ⓒ (주)미디어로그


세바스티앙이 타인의 '얼굴'을 훔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신성한 의식 같다. 그가 은연중에 타인을 관찰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눈가의 주름, 미소 짓는 입술 등 관찰 대상을 깊숙히 훑는다. 몽탈트를 표적으로 삼고 나서는, 그가 과거 했던 TV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되뇌인다. 급기야 세바스티앙은 음악을 대하는 몽탈트의 애정까지도 자기 안에 체화하고, 심지어 몽탈트의 개조차 세바스티앙을 주인으로 여기고 따른다. 그렇게 세바스티앙의 모방은 더이상 모방이 아닌 게 된다. 마치 그는 완벽하게 몽탈트가 된 것만 같다.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에도 <얼굴도둑>이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에는 주연배우 마티유 카소비츠의 힘이 크다. 특히 그가 '얼굴도둑'인 세바스티앙과 더불어 '얼굴을 빼앗기는' 몽탈트까지도 직접 연기했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극중 속이 텅 빈 듯한 세바스티앙과 달리 몽탈트는 강렬한 아우라를 풍기는 캐릭터인데, 마티유 카소비츠는 낮은 톤의 걸걸한 목소리와 냉소적인 말투로 세바스티앙과는 엄연히 다른 몽탈트를 창조해 냈다. 그는 서사 속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얼굴도둑이 된 셈이다. 이를 모르는 관객에게 있어 몽탈트가 1인 2역으로 탄생한 가상의 인물이란 걸 알아차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주연 마티유 카소비츠는 '얼굴도둑'인 세바스티앙과, '얼굴을 빼앗기는' 몽탈트를 1인2역으로 연기했다.

주연 마티유 카소비츠는 '얼굴도둑'인 세바스티앙과, '얼굴을 빼앗기는' 몽탈트를 1인2역으로 연기했다. ⓒ (주)미디어로그


영화는 세바스티앙이 몽탈트의 자아 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까지 훔치면서 급물살을 탄다. 몽탈트의 연인이었던 코넬리(마리 조지 크로즈 분)와 둘 사이의 아들을 만난 세바스티앙이 몽탈트를 대신해 그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는 자의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이 떠오른다. 세바스티앙의 도둑질이 들통날까 걱정하는 와중에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도 흥미진진하다. 그렇게 줄곧 예상을 빗나간 끝에 <얼굴도둑>이 남기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틀렸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군가의 무엇'일 때 비로소 나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군가의 무엇'일 때 비로소 나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 (주)미디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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