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
배우가 되고 싶은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소년에게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다. 외계인처럼 앞뒤가 긴 두상에 여드름투성이의 피부, 살짝 칼로 그어놓은 느낌의 두 눈을 가지고 배우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인지할 만한 나이였다. 배우에 대한 갈망이 역치에 다다를 때면 영화관을 찾았다. '할리우드 키드'만큼의 열정과 에너지를 쏟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도서관보다 극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소년이 자라 진로를 선택할 무렵, 잠시 고민은 했지만 결국 '장래가 보장된다'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는 못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배우의 꿈을 차마 접을 수 없었던 청년은 학과 공부보다 연극반 생활에 몰두했다. 애당초 주연과는 거리가 먼 얼굴형이기에 코믹 연기로 살아남자 결심했던 청년에게 때마침 눈에 띄는 영화배우가 있었다. 이후 청년의 연기 스승이자 롤모델이 된 그 영화배우의 이름은 바로 박중훈이다.
조각상 같은 외모를 지닌 건 아니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와 풍성한 콧방울, 그리고 살짝 뒤집힌 두툼한 입술은 배우로서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연대기에 대해 여기서 논할 생각은 없다. 언제 데뷔를 했고, 왜 유학을 갔으며, 어떠한 작품을 했는지 줄줄 꿸 정도로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광적인 팬은 아니었으므로. 다만, 내 청춘의 가장 푸르렀던 이십 대의 강을 함께 건너 준 배우로서, 내 기억 속의 그를 떠올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