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 뉴스게릴라의 시드니 리포트

올림픽 기간중 시드니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누굴까? 사마란치 IOC위원장? 그보다 더 바쁜 사람이 있다. 바로 한승수 목사. 90여명이 넘는 북측 임원단과 선수단의 숙식을 책임지며 시드니에 온 북측 동포들을 도울 '지원권'을 유일하게 부여받은 덕택이다.

38년 황해도 연백 출신의 한목사가 북한 동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4월.

호주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전격인 세계 싱크로나이즈 스위밍대회 때였다. 언어부터 음식, 기후 등 불편한 점이 많았던 북측 7명의 선수와 임원들에게 한승수 목사는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다. 매일 그들을 위해 새벽기도를 해준 것은 물론이고 마치 집에서 대회를 치루듯 모든 면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며칠동안 세심히 도와줬다.

대회 마지막 날, 처음 출전한 북한선수들이 선전하기를 기원하면서 한목사는 두 개의 꽃다발을 들고 수영장을 찾았다. 한국은 그때 9위로 일찌감치 출전이 확정됐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북한은 커트라인인 20위로 가까스로 올림픽 출전이 확정됐고 그들은 그 넓은 수영장에서 서로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처음엔 그토록 냉담하던 북한 선수들이 "목사님이 매일 기도해주신 덕분에 우리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습니다"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고 받았단다.

그 후 올림픽을 석달 앞둔 지난 6월, 한승수 목사는 북한 체육회에서 온 전갈 한 통을 받았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는 북측 선수와 임원을 한승수 목사가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는. 호주에 있는 많은 교회와 한인단체, 한국 기업이 북한 선수들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북측은 오로지 한승수 목사만 원했다.

그래서 바쁜 한승수 목사를 어렵게 인터뷰했다. 인터뷰중에도 계속 울려대는 핸드폰에 대화는 자주 끊어졌다.

정말 뵙기 힘드네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입이 좀 헐긴 했지만, 지금은 바빠서 아플 시간도 없어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시작하세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 갔다가 선수촌 밖에 나와 있는 임원들 아침 식사 챙기고 선수촌에 들어가 북한 선수들과 임원들 불편한 점 없나 확인하고 북측 선수들 돕고 싶어하는 분들 연결해 드리고 필요한 물건 구입하고 없는 물건 지원받으러 다니고... 뭐 그렇지."

도대체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북측사람들 보통 까탈스러운게 아닌 것 같던데...
"까탈스럽다기보다는 자존심이 강하지. 이해를 못할지 모르지만, 난 기독교인이잖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지. 더군다나 그 사람들이 같은 동포고 형제라면 더 그렇지."

제일 힘든 점은요?
"좋은 뜻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고맙지만, 한국 기업이나 종교단체에서 공명심만 앞세워서 접근하는 것을 그들이 제일 경계하고 있거든. 중간 입장에서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게 가장 힘들지."

교민들 반응은 어때요?
"지금 가장 도움을 많이 주시는 분들이 이곳 교민들이야. 오늘도 같이 돌아다녀봐서 알겠지만, 넉넉하진 않은 살림이어도 하나라도 북측 선수들 챙겨주고 싶어하는 모습 봤지? 남북 공동입장 때 한국에서 시청하는 국민들보다 여기 교민들이 더 기뻐하고 눈물흘리고 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일들이 쌓여 빨리 통일이 되는 게 교민들에게도 힘이 되는 일이거든."

어떤 때 가장 보람 있으셨어요?
"힘든 만큼 순간 순간 보람이 있어. 느꼈겠지만 북측 사람들 여기 남측 사람들을 얼마나 경계하나. 그런데 이젠 흉허물 없이 얘기도 나눌 수 있게 됐어. 어떤 친구는 식사시간이면 "목사님, 오늘은 기도 안하나요?" 묻기도 하지. 누군, 북녘에 내 조카가 있다니까 편지 써주면 전달해주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사랑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할까."

6.15 남북 정상회담후에 한국에서는 '상호주의'를 내세우면서 북한에 대한 남한 정부의 시혜성 지원에 대해 비난하는 여론이 있거든요. 직접 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목사님이 느끼시는 통일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난 신앙인이지 정치인이 아니야.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논리로 말하는 것을 나한테 평하라고 한다면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 하지만, 신앙이건 정치건 얼었던 관계를 푸는 건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지금 당장의 자존심이 아니라 더 큰 미래를 보는 게 옳은 게 아닐까 해. 가끔 남북관계는 이성교제 같은 거라고 생각도 하지. 상대방의 입장을 항상 생각하고 존중해주는 이성교제말이야."

통일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까요. 뭐라 생각하세요?
"나를 도와 봉사하시는 분들이 북에서 온 9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척척 수행해가는 것을 보고 누가 그러더군. '이 일은 종교인 아니면 못할 것 같습니다. 돈만 가지고 덤비는 사람은 절대 이 어려운 일 못하죠.' 그 말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서는 결코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해.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대가 없는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지."


기독교인이 아닌 나는 한목사의 생각을 반도 이해 못하겠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모습에서 나도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말하는 통일과 사랑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해빙을 위한 그의 말들은 실천하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힘과 진실이 담겨있다.

사랑은 그렇게 베풀어야 할 것 같다. 남과 북의 관계도, 연인과의 사랑도 말이다.
2000-09-29 21:4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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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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