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애인을 위한 시설

올림픽파크로 가는 기차엔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녁 7시부터 있을 캐시 프리먼이 나오는 육상경기를 보러 가는 인파들이다.

난 벌써 한 대의 기차를 놓친 참이지만, 다음 차도 역시 사람들로 미어질 것 같은 낌새다. '이번차는 좀 낑기더라도 잽싸게 타야지' 하며 플랫포옴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저쪽에 형광색 옷을 입은 역무원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있다. 역장인 듯한 사람이 휠체어를 밀고 탈 수 있는 나무판을 들고 있고 나머지 역무원들도 도착할 기차에 무전을 쳐가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잠시 후 도착한 올림픽 파크행 기차. 장애인이 앉아 기다리던 쪽의 열차문이 열리자 역장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여러분 잠깐만 내렸다 다시 타주십시오." 열차 속에서 간신히 서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 역장과 역무원들은 그들이 내준 통로로 휠체어를 밀어넣은 뒤, 안쪽 연결문을 열어 열차의 운전석칸에 휠체어를 이동, 고정시켜 놓는다.

내렸던 사람들은 다시 기차에 올라타고 휠체어 장애인은 올림픽파크까지 따라온 역무원의 인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림픽 파크로 나보다 더 빨리 들어섰다.

공원 입구 검색대에서도 난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늘어선 검색대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는 장애인 전용 검색대에서 간단한 검색을 받고 주경기장으로 미끌어지듯 들어간다.

파크 입구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인도해 데리고 간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도 이들의 처우는 다르다. 가장 싼 좌석표를 가졌더라도 원한다면 그 보호자까지 제일 좋은 좌석으로 바꿔준다.

올림픽이 끝나고 시드니에서도 장애인 올림픽이 열린다. 하지만, 이곳 시드니에선 특별히 그런 '의식'을 치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장애인은 분명 이곳 시드니에선 특별대우에 가장 먼저 배려되고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고 있다. 위로 차원의 장애인 올림픽은 오히려 자존심 상하다.

그가 기차에 올라탔을 때, 어느 누구도 "집에나 있지 왜 나와서 사람들 귀찮게 해"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기꺼이 양보해 주는 넉넉한 모습이었다.

나는 내 친구의 다리가 불편할 때, 어떻게 도와줘야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난 마음의 장애인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이곳 시드니에서 난 많은 한국인들이 커다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당연한 듯 경기를 즐기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두운 방구석에서 침울해 하고 있을 한국의 내 친구가 생각나 부끄러웠다.

2.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둠사이드란 조그만 역은 올림픽 기간 동안은 소프트볼과 야구를 보러오는 사람들로 오랜만에 붐비는 곳이다.

쏟아지는 한낮의 햇빛을 실컷 맞으며 경기를 관람한 까닭에 빨리 돌아가 시원한 맥주 한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역으로 오는 길. 경기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터에 낮은 무대가 만들어져 있더니 잠시후 음악이 띵가띵가 나온다.

닭이며 캥커루 복장을 뒤집어 쓴 할머니들이 깡충깡충 뛰며 멋진 민속춤을 보여준다. 바로 이어 파란색 무용복을 입은 아이들이 오스트렐리아 국기를 흔들며 귀여운 동작을 하고 있다.

야구 경기를 보다 돌아가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작은 무대 앞에서 어깨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그들의 귀엽고 깜찍한 춤을 보며 너무나 기뻐한다. 나도 그들의 어수룩한 동작이 너무나 재밌어 닭복장을 한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와...멋져요. 언제부터 준비하신 거예요?" "호호호...고맙수. 나는 한 3년전부터 연습했구 저기 저 꼬마는 한 달 정도 연습했을 거야." "다 이 마을 분들이세요?" "응, 이 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지. 4살짜리부터 70살 먹은 할머니까지 다 이 마을 사람들이야." "옷은요, 옷은 누가 만들었어요?" "저기 서 있는 캐롤라인이 만들었어. 그녀는 솜씨가 아주 좋아. 이 많은 옷을 다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서 우릴 입힌 거야."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오래 연습한 거 선보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하하하... 날은 좀 덥지만, 무척이나 행복한데."

쉰아홉이나 드셨다는 제인이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하나 가득 잡혔다. 3년 전부터 준비한 공연을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서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무대를 내려온 사람의 기쁨은 나로선 상상할 수 없겠다. 그곳이 멋지게 잘 지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아니라 이곳 가난한 시골무대일지라도 말이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앞에는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밴드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고 싶어했다. 남미계 여자보컬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투박하지만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반주자들. 확성기를 든 자원봉사자도 길을 가르쳐주며 중간중간 보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돈받고 나선 예술단이 아니라, 모두 기쁘게 사람들에서 자신을 선보이고 싶어하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450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그들의 공연이 시드니 올림픽을 넉넉하게 만들고 있다.

3. 사회 체육 시설

호주의 인구는 1900만. 남북을 합친 인구의 1/4 수준이다. 하지만 오늘(9월 28일)까지의 호주의 총 메달수는 13개. 올림픽 메달과 일반사회체육수준과는 아무 상관 없는 우리 나라같은 경우도 있지만, 호주는 다르다.

호주에는 3만여 개의 스포츠 클럽이 있고 650만 명이 운동선수로 등록되어 있다. 스포츠, 레크레이션 분야는 호주 국내 총생산 GDP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 어디를 가나 수영장, 테니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농구며 럭비를 좋아하고 풋볼에 환호하며 느긋하게 크리켓을 감상할 줄 알며 모든 국민이 수영은 기본이다.

열차나 길에서 친해진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는?"이라고 물으면 막힘 없이 줄줄이 대답한다. 입장권 가격이 취재차 간 나에게도 좀 버겁다 싶지만 호주인들은 '좋은 경기 관람하는데 그쯤이야' 하며 아낌없이 투자한다.

스포츠가 생활이며 인생의 기쁨이 된 느낌이다. 입장권 가격이 400달러나 한 수영, 육상, 체조경기에 대한 관심도 나를 놀라게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포츠 생활을 하는 게 우리처럼 큰 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호주에선 경기를 관람하는 건 오히려 소극적인 참여다.

시드니 올림픽과는 상관없이 이미 호주인들은 매일 매일이 올림픽같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호주시민들에겐 오히려 올림픽에서의 낭비가 아깝게 생각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지 않아도 스포츠는 언제나 호주인 곁에 있었으니까.

올림픽 매달 수에 연연해 할 때, 우리의 꼬마들은 마음껏 뛰어놀 공터하나 넉넉치 못한 우리의 현실이 그래서 더 마음 아프다.
2000-09-28 20:1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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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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