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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대에 걸쳐 환생하는 한 여자와 남자의 사연

[넘버링 무비 311]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갈라 프레젠테이션 <더 비스트>

23.10.10 11:33최종업데이트23.10.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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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더 비스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베르트랑 보넬로. 그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이라면 <전쟁론>(2008)이나 <라폴로니드 : 관용의 집>(2012) 같은 작품들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전기를 다룬 <생 로랑>(2014)으로 설명하면 좋을 것이다. 고(姑) 가스파르 울리엘이 정점의 로랑을 연기했던 작품이다. 이후 <녹투라마>(2016)와 <좀비 차일드>(2019), <코마>(2022)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리고 새 작품인 이 영화 <더 비스트>는 제80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며 많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래와 과거에 대한 거대하고 불안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번 작품은 1903년 완성된 헨리 제임스의 단편 소설 <정글의 짐승>을 기반으로 각색되었다. 자신의 삶이 어떤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붙잡히게 될 것이라는 확신적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그리고 그 미래의 불행을 정글 속의 짐승처럼 웅크린 채 기다리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은 이 작품을 세 시대에 걸쳐 환생하는 한 여자와 남자, 그리고 매 순간 두려움으로 인해 실패에 직면하게 되는 이들의 관계로 재해석하여 완성해냈다.
 
02.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1903년과 2014년, 그리고 2044년에 이르는 세 시대의 이야기를 정교하고도 교묘하게 이어내 각각의 시대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조합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가브리엘(레아 세이두 분)이라고 불리는 여성이 존재한다. 그녀는 스스로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세 개의 시간대 선 위에서 거의 동일한 성격을 보이고 과거의 자신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을 가진다. 하지만 그의 곁에 존재하는 루이(조지 맥케이 분)은 그렇지 않다. 루이는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 변화는 특히 2014년의 인셀(비자발적 독신자)의 인격을 가진 인물에 이르러 급격해진다.
 
두 캐릭터의 다른 설정은 영화가 루이라는 인물을 '꿈에서만 사랑을 나누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도 연결되는데 이는 마치 불교에서의 윤회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나 미래에 다른 자신의 모습과 기억이 존재하더라도 서로의 삶에 대해 기억을 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내면 어딘가에 무의식 속에 존재하게 된다는 부분이다. 그렇게 본다면 각각의 시대에 존재하는 루이의 서로 다른 인격은 따로 존재하면서도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어렴풋한 기억으로나마 그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가브리엘의 꿈 속에서 유영하는 존재로 영원해질 수 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더 비스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나의 강박이 어떤 현실과 이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 다른 현실의 연결과 불안은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모습으로 시작과 함께 관객들에게 던져진다. 1903년을 배경으로 한 귀족 파티에서 만나게 되는 가브리엘과 루이의 모습을 통해서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어렴풋이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어떤 불안한 느낌,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소멸시킬 것 같은 누군가와의 관계 대한 이야기를 루이와 함께 나눈다. 두 사람의 밀회는 그녀의 남편이 소유하고 있는 인형 공장으로 이어지고, 세 시대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첫 시작이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 속 세 번의 시간대 속에서 핵심 사건이자 비극으로 존재하는 설정들이 모두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예상되는 일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 중 1903년에서 벌어지는 대홍수는 1910년 파리 대홍수를, 2014년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스토킹과 여성 범죄는 2014년의 엘리엇 로저(Elliot Rodger) 총기난사 사건을, 마지막으로 2044년의 인공지능과 인간 개조 프로젝트는 현재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AI 문제다.
 
중점은 동시대와 연결성에 있다. 우리가 개념적으로 과거나 미래라고 부르는 시점 역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현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과거는 조금 전의 현재, 미래는 잠시 후의 현재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모두가 장미빛 미래를 예상하고 희망찬 관측을 내놓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사실적인 어려움들이 각각의 시대에도 존재한다. 감독의 극 중 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인형 공장 내부에서 맞이하는 대홍수와 그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탈출 기회는 이 모든 비극의 전초이자 시작으로 받아들여진다.
 
04.
각각의 시대 사이의 연결성은 다른 지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루이의 제안으로 찾아가게 되는 1903년의 점술가와 우연히 접속하게 되는 2014년의 포츈 텔러가 대표적이다. 조금 더 넓게 보면 과거의 흔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인공지능 역시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강하고 생생하다는 쪽의 두 과거와 달리 미래의 슬픔과 고통 때문에 현재에서 미리 아파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괴로움을 제거하라고 종용하는 미래는 서로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결국 연결성을 갖고 있음에도 개념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서로 다른 시점의 설정은 연결성이 직진성 혹은 영원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1903년의 루이가 2014년에 이르러 스스로가 비극 그 자체가 되는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나아가 이 모든 비극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성만을 유지하라는 AI의 기계적 판단은 되려 역설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불확실한 감정과 결과를 알 수 없는 미래의 가치를 증폭시키게 한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더 비스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어쩌면 이 영화 <더 비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삶이 두려움으로 점철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쪽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간대에 존재하게 되더라도 그때는 또 그때 가질 수밖에 없는 고통과 불안이 존재할 것이며 모든 것이 완벽해지리라 예상되는 인공지능의 시대 위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감정을 잃는 일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실패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미래의 프로세스 위에서도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데 실패하는 가브리엘을 통해 그 믿음은 완성된다. 결국 내면의 '더 비스트'라는 것은 내면을 뒤흔드는 불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두려움을 내재한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삶 전체를 통칭하는 말이 될 것이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더비스트 조지맥케이 레아세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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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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