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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 분노한 기자들 "부끄럽고 천박"... 영구박제

[언론비평]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브리핑 영상에 드러난 실상

등록 2023.08.30 18:06수정 2023.08.3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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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니까 해군에 물어보고 싶은데, 함명을 변경한 전례로 나라가 망했을 때 그러니까 소련 같은 경우, 그리고 히틀러가 알아서 마음대로 한 경우가 있던데 그 외에 선례가 있습니까?"

한 국방부 출입기자가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에게 홍범도함 함명 변경과 관련해 물었다. "확인해 보겠다"는 불명확한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의 육군사관학교(육사)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방침이 큰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지난 29일 오전 열린 국방부의 언론 브리핑 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8월 28일 국방부가 배포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관련 입장문을 포함해 국방부를 향한 기자들의 원성이 이어졌고, "확인해 보겠다" "입장을 정리 중" "검토 중" 등 정부 측의 애매한 답변이 계속됐다. 한 국방부 출입기자는 전 대변인을 향해 "이게 얼마나 참 부끄럽고 이게 천박합니까?"라고 면전에서 일침을 놨다.

"어제 입장문은 이게 참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우리 국방부 인문학적 소양이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나?'라는, 되게 좀 안타깝더라고요. (...) (어제 입장문은) 전반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고, 나중에 상당히 문제가 될 만한 입장문인 것 같습니다.

빨치산 같은 경우도 파르티잔(partisan)에서 넘어온 말이잖아요. 이거 비정규군이에요. 이 당시에 우리나라 군대도 없고 국가도 없는데 이 당시 독립운동한 사람들 다 빨치산이잖아요, 다 비정규군인데. 이걸 갖다가 6.25 전쟁에, 아까 말씀들 나왔지만 김일성 태어나기 전에 그때 활동한 걸 빨치산이라고 하면 이게 얼마나 참 부끄럽고 이게 천박합니까?"


목소리 높인 기자들, 진땀 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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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유튜브 MBC뉴스 채널에 올라온 영상 <"얼마나 부끄럽고 천박합니까!" 국방부 브리핑에 폭발한 기자들 [뉴스.zip/MBC뉴스]>. ⓒ MBC 유튜브 갈무리

 
해당 국방부 브리핑 영상은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MBCNEWS 채널의 <"얼마나 부끄럽고 천박합니까!" 국방부 브리핑에 폭발한 기자들> 영상은 30일 오전 게시 후 7시간 만에 10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29일 오후 게시된 YTN 채널의 <"홍범도, 김일성이 관계가 있어요?" 역사수업 된 국방부 질의응답> 영상도 게시 23시 간 만에 조회 수 83만 회를 기록 중이다. 두 언론이 주목한 질문은 "김일성이 1912년에 태어난 사람"이라던 SBS 기자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홍범도 장군이) 빨치산에 가입된 상태에서, 봉오동하고 청산리에 참가했으니 이거 문제가 있다. 1920년대, 1919년대 빨치산하고 김일성하고 스탈린하고 아무 관계없습니다. 김일성 그때 몇 살이었어요? 김일성이 1912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빨치산 자격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고 이게 문제가 된다, 이게 왜 문제가 됩니까. 이렇게 어설프게 역사적 식견도 없이..."

이에 앞서 SBS 기자는 "(국방부가)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라고 (입장문에) 써놓고 독립운동 업적은 한 줄도 안 썼어요"라고 꼬집은 뒤 "홍범도 장군이 활약했던 1920년대 레닌의 공산당이고 북한군을 사주해서 6.25 남침을 한 공산당은 그건 스탈린의 공산당이에요"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레닌의 공산당하고 스탈린의 공산당은 아주 다릅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차이보다 더 커요. 근데 그것을 같은 공산당이라고 봐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국방부에서 공문서로 이렇게 내서 기자한테 줘버린다는 것은 이건 문제 있죠. (국방부가) 역사 논쟁에 끼어드는 건 좋은데 역사 논쟁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치열하게 하는 거고 정확하게 하는 거거든요."

질타는 계속됐다. 국방부 출입 JTBC 기자는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군정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이 문장을 쓰셨잖아요"라고 운을 뗀 뒤, "그 위에는 공산주의 이력이 문제된다, 이렇게 쓰셨고.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다, 이게 잘못됐다는 뜻이죠?"라고 물었다. 전 대변인이 또 다시 확답을 못하자 그 기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 문장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공산당,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독립군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독립군을 억지로 통합했다, 이렇게 읽혀요. 이 당시에, 이게 맥락이... 확인을 하고 쓰신 거예요, 도대체 이게? 그런데 갑자기 바꾸면 어떻게 해요, 이 자리에서."

자유시 참변에 대한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기자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직접 가담을 했느냐고 물어봤어요"라며 "그러니까 그게 맞다 그랬다는 거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서 우리 독립군을 살해하는 데 가담했다는 내용이 되거든요"라고 묻자 전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게 말씀드렸다면 제가 잘못 (답변) 드린 것 같고."

영구 박제된 국방부 '홍범도'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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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오늘 국방부 기자들한테 털린 건 영구 박제해 놓을 필요가 있다."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이 계속되던 29일 오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가 해당 브리핑 영상을 질문마다 캡처하고 정성스레 자막을 단 게시물이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들썩였고,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은 하루가 지난 브리핑 영상을 재정리해 기사로 내보냈다.

30일 <한겨레>의 <"홍범도는 빨치산" 국방부에…'김일성 7살 때다' 기자가 설전 [영상]> 기사는 포털 다음에서 2000개 넘는 타임톡(댓글)이 달렸다. 이날 YTN과 SBS도 각각 <"홍범도, 김일성이 관계가 있어요?" 역사수업 된 국방부 질의응답>, <[영상] "이렇게 어설프게 역사적 식견도 없이!"…국방부 대변인 진땀 나게 한 기자의 '팩폭'>이란 제목의 기사로 국방부 브리핑 내용을 비판했다.

반면,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설전과 달리 실제 보도는 브리핑 당시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29일 SBS <8뉴스> 보도였다.

이날 SBS는 <홍범도 장군 흉상만 이전 가닥…'중복 서훈'도 검토> 리포트에서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 청사에 설치된 독립 운동가들의 흉상 가운데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이전을 검토하는 걸로 가닥이 잡혔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군의 입장을 전했다.

군 관계자는 "독립 운동가 5명의 흉상을 모두 옮기려 했지만, 반발이 커 대상을 홍 장군에 한정하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육사에 설치된 홍 장군 흉상 이전을 우선 검토한 뒤, 국방부 청사의 흉상 이전 문제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방부는 이 과정에서 굳이 학계와 협의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SBS는 "그런 공산당 입당이나 여러 가지 활동과 관련된 확인된 사실 또 이런 의혹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검토한다는 배경을 설명해드린 것"이라는 전 대변인의 설명을 덧붙였다. 설전을 벌인 SBS 기자가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주목을 받은 것과는 대조되는 건조한 리포트라 할 수 있다.
#국방부 #홍범도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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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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