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7 11:31최종 업데이트 23.08.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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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자 영국 <가디언> 기사 "'조금 끔찍하다': 한국 잼버리에서 스카우트들의 캠프장 상황" ⓒ 가디언


올해 한국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들의 한마당 축제 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미숙한 운영으로 세계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예견된 폭염에도 적절한 대비가 안 된 운영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적지 않은 참가비에도 불구, 기대에 부푼 지구촌 청소년들을 기다린 것은 열악한 환경과 지원이었다. 

무엇보다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 속에 허허벌판에 마련된 텐트촌이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발상이다. 극기를 스카우트 정신 가운데 꼽지만 어디까지나 상비 대응책이 있을 때의 말이다. 준비 부족으로 참가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킨 주최 측이 '극기'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면피성 변명에 불과하다. 


우선 대회 일정을 꼭 8월 초로 맞춰야 했는가 하는 지적부터 필요하다. 물론 잼버리 행사를 여름에 개최하는 것은 전통이기도 하거니와 여러모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견디기 힘든 기후조건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구 온난화로 현재의 8월 기온이 인간의 정상적인 장시간 외부 활동에 장애가 된다는 것은 충분히 알려진 정보다. 

그럼에도 폭염에 따른 외부 활동 자제 권고를 내린 정부가 동시에 뙤약볕 아래서 대규모 야영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1920년 첫 대회 이래 잼버리 행사는 북반구 국가의 경우 7~8월 중 개최해 왔다. 2007년 영국 대회 이래 최근 네 차례의 대회는 모두 7월 말에 개최했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 환경에서 한국도 되도록 8월은 피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32년 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17회 대회와 비교해도 그렇다. 당시 개막일은 8월 8일이었으나 당시의 기후는 지금과 달랐다. 1991년 고성 잼버리 개막 당일의 평균기온은 23.9°C, 최고기온은 29.8°C를 기록했다. 올해 개막일 평균기온은 28.8°C, 최고기온은 34.5°C였다. 20년 사이 지구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데도 8월 개막을 고집한 것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대응에도 심각한 문제
 

지난 5일 자 프랑스 <르 피가로> 기사 "'국가적 수치' : 한국에서 스카우트 잼버리가 악몽으로 변하다" ⓒ 르 피가로


시설 미흡은 말할 나위 없다. 5명의 조직위원장 가운데 세 명이 중앙정부 부처의 장관이다. 정부 조직의 지원과 예산확보를 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행사 전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행사 두 달 전 장마와 폭염에 대비한 추가 예산 93억 원을 조직위가 요청했으나 정작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정부 예산을 마련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부실 준비로 이어졌다.

실질적 준비 기간이 1년 남짓인 점을 감안할 때 준비 소홀을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혹여 현 정부 출범 당시 인수인계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해도 그때 해결했어야 옳다. 지난해 국정감사와 올 3월 주무 부처인 여가부의 준비 현황 브리핑 당시에도 준비 부족 등이 지적됐지만 대응 계획을 말할 뿐 실제 지켜지지는 않았다.

샤워 시설, 화장실, 의료시설의 부족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졸속 행정의 결과다. 심지어 전북의사협회가 의료지원 의사를 사전에 밝혔음에도 조직위는 의료인력이 확보돼 필요치 않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료진 부족으로 실신한 환자들이 줄을 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며 이러한 사실은 외신을 통해 세계에 전파됐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의 대응에도 심각한 문제가 지적된다. 수많은 온열 환자가 발생하고 보건, 위생 문제가 커지면서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자 중앙정부가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3일 행정안전부가 재난안전특별교부세 명목으로 30억 원, 여성가족부가 9억 원,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69억 원이 일사천리로 지원 결정됐다. 

전 국민과 전 세계 언론의 우려
 

지난 4일 자 독일 <포커스> 기사 "한국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대회, '국가적 수치'" ⓒ 포커스


사전에 적절한 점검과 준비를 했다면 같은 돈을 쓰고도 망신을 사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혹여 국가적 망신이 두렵다고 언론을 통제한다면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더 큰 차원의 문제로 비약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혹은 실제로 불거졌다. 4일 자 영국의 <가디언>은 취재차 방문한 현장에서 취재의 제약이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취재는 델타 구역으로 불리는 곳으로 제한됐고 텐트 지역을 포함한 다른 장소는 가볼 수 없었다고 한다. 참가자들과의 면담은 잼버리 언론팀 동석 하에 이뤄졌고 그 이유는 참가자들을 학대, 괴롭힘, 오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재가 허용된 델타 구역에서는 북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속에서의 인터뷰 내용은 참으로 건전하고 밝다. 한 참가자는 샤워장, 화장실 사용 등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재미있는 활동들이 있으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또 한 참가자는 더위 속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호의를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카우트들이 함께 협력하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기자에게 말한다. 

그런데 <가디언>의 취재 후 반전이 일어난다. 인터뷰에 응했던 한 참가자가 기자에게 따로 찾아와 인터뷰 때와 다른 말을 했다고 기자는 전하고 있다. 조금 전 인터뷰 내용을 철회한다면서 관계자가 동석한 채로 인터뷰를 진행해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기자에게 고백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국가적 수치' : 한국에서 스카우트 잼버리가 악몽으로 변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사태를 조명하고 있다. 더위로 인한 문제 외에 열악한 시설에 따른 혼란이 발생한 대회였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독일의 유력 주간지 <포커스> 역시 "한국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대회, '국가적 수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주간지는 폭염 속에서 쉼터와 물 공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14세에서 17세 사이의 아이들이 모기에 포위돼 있다며 한탄하는 한 영국 부모의 말을 전하고 있다. 

무엇이 진짜 '국가적 수치'인가. 더위, 열악한 화장실, 부족한 식수… 물론 아닐 게다. 이번 사태에서도 전 국민과 전 세계 언론의 우려 속에서 여타 대형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도 책임지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진짜 한국의 수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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