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2 07:02최종 업데이트 23.08.0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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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와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오른쪽),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예루살렘에 있는 크네세트(의회)에서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기본법 개정안에 표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24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이 국내외 반발과 우려에도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는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3차례 독회 끝에 여권 64명의 찬성으로 가결 처리했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이어간 야권은 물러서지 않는 여권 강경파 입장에 결국 투표 불참을 선언했다.

법안 발의에서 처리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정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정뿐 아니라 가결된 기본법 개정안 내용 또한 앞으로 이스라엘이 보여줄 정치 혼란을 잉태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21세기 초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지 또 하나의 예시를 남기게 됐다.


이스라엘은 고유의 역사와 지정학적 배경으로 자신들의 독특한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단원 의원내각제를 기본으로 다수파 정치세력이 행정부를 구성하고 독립된 사법부가 별도로 기능한다는 점은 많은 다른 나라와 유사하다. 흔히 이스라엘이 서아시아에서 드문 민주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는 각각의 독립적 국가기관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특이한 점은 대법원이 가진 행정부에 대한 평상적 견제권이다. 이번 기본법 개정 이전까지 이스라엘 대법원은 행정부의 '비합리적' 결정과 절차를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1월 새로 출범한 네타냐후 내각이 지명한 샤스당 대표 아리에 데리 내무-보건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 탈세 혐의로 지명 불가 명령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격분한 네타냐후 총리와 핵심 연정 세력이 사법부에 대해 '손 좀 봐줄' 필요를 절감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이스라엘 집권 연정 그룹이 사법부의 해당 권한 박탈을 강행한 공식적 명분은 국가 권력 간의 균형 있는 조화였다. 얼핏 보면 사법부의 국무위원 지명거부권이 낯설고 따라서 현 정권의 주장에 설득력 있다는 동조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일 문서로서의 헌법 없는 이스라엘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정부의 '사법 정비'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논란의 사법부 권한 축소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 사법부의 독특한 이 기능이 처음 시작된 것은 영국 통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법원은 다수의 영국 출신 판사들이 구성하고 있었고, 토착 출신이 다수를 이루는 지방 법원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행정 결정과 관련된 재판권을 대법원에 귀속시키고 있었다. 

독립 이후에도 대법원의 유사한 권한이 이어진 것은 헌법 제정을 위한 일련의 과정과 관련 있다. 이스라엘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단일문서로 된 헌법이 없다. 성문 헌법이 없는 경우, 여러 법전에 분산된 헌법적 규정들을 종합하고 해석해 권위 있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 최고 수준의 법원에 대한 권한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국의 경우 이러한 최고 수준의 사법기능을 귀족원(상원)이 가지고 있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서민원(하원)과 달리 영국의 귀족원은 세습되거나 국왕이 임명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재적 의원이 일정하지 않고 가변적이다. 그리고 법안을 제안하지 않고 하원이 제안한 법률을 검토하고 심의하는 기능을 가졌다. 

법안을 검토하고 심의하는 기능은 최종적 합헌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와 유사하다. 특별한 경우 아니면 거부하지 않지만 승인을 지연시키면서 하원의 재숙고를 권고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능에는 다른 많은 국가에 있는 대법원의 기능을 포함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9년에 이르러 결국은 대법원을 독립적 기구로 분리시켰다. 

이처럼 의원내각제의 경우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들과 달리 엄격한 의미의 삼권 분립이 행사되지는 않는다. 대신 상원이 항소법원 기능의 일부 사법적 판단 능력을 가지거나 대법원이 상원의 일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경우가 두 번째에 해당한다. 단원제 국가 이스라엘은 대법원이 일부 상원의 기능을 가지면서 정부와 의회에 대한 감시 기능을 행사해 왔다. 

단일 문서로서의 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은 대법원이 정부와 의회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기능에 대한 합헌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헌법을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1948년 독립을 선언한 이스라엘은 국가 구성의 근본이 되는 헌법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여러 걸림돌이 작용했다. 

유대인이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이스라엘은 당연히 종교적으로 유대교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유대교도를 중심으로 건국한 이스라엘은 종교적 근간의 국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특히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십계명에 근거한 헌법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에서 세속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충돌을 할 수밖에 없다. 

서아시아에 있는 다수의 이슬람교 국가에서 샤리아법이 헌법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의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이 십계명을 헌법의 근간으로 삼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보장될 수 없다. 이스라엘 국민 가운데 25%가량 차지하는 아랍인의 종교활동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아시아 이슬람국가 가운데 튀르키예가 비교적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한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그들의 헌법에 샤리아법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색채를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는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든 평등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담겨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초래하는 대법원 기능 축소
 

지난 7월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정부의 '사법 정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초강경 우파 연정은 대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지난 24일 강행 처리했다. ⓒ 연합뉴스


이러한 배경에서 이스라엘은 단일 문서로서의 헌법 제정을 미뤄왔고, 그를 대신해 헌법적 기능을 하는 다수의 '기본법'을 순차적으로 제정해 왔다. 그중에는 종교적 이유로, 민속적 이유로 갈등의 소지를 담고 있는 기본법도 있다. 그래서 잠재적 갈등의 여지를 줄이고 민주주의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역할을 대법원이 담당해 왔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처럼 복잡한 법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 속에서 법률가로서의 지혜로 국가의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균형을 잡아 왔다. 이스라엘 대법관들이 동시에 활동가(activist)와 현자(prudentialist)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런 고유의 역할 때문이다. 이스라엘 현 정권이 대법원의 기능을 축소하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위헌적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발상이다. 

뇌물 수수, 언론재벌과 유착, 측근들의 방산 비리 등 수많은 부패와 위법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의 손발을 묶고 있는 행태는 더더욱 오해의 소지가 농후하다. 총 세 번에 걸쳐 15년 1개월을 집권해 온 네타냐후 총리는 경제적으로 이스라엘을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서안지구 유대인 이주촌을 확장하면서 번번이 위기를 모면해 왔다.  

현재 구성하고 있는 연정 체제 역시 역대 최고의 극우성향을 보이면서 국민들의 저항을 부르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군부마저 혀를 찰 정도의 비이성적 편향을 보이는 현 정부는 급기야 안보의 큰 축을 담당하는 예비역 군인들의 집단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불체포특권을 유지하려는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파기 위협의 소수 극우세력에 끝없이 이끌려 가는 상황이다. 

국민의 의사가 상대적으로 잘 반영되는 의원내각제지만 선거 이후의 과정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정치인과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과정에서 소수 세력이 집권세력 유지를 위해 권력 핵심에 합류한다. 그리고 연정 파괴를 위협하면서 그들만의 소수 의견을 국가 정책으로 관철시킨다. 

이렇게 의회와 정부는 다수 국민의 뜻과 멀어진다.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사법부 권한 축소 정책들은 특수한 정치환경 속에서 의회 표결을 통과하고 이스라엘을 지탱해 온 민주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소수의 극우세력에 의해 전통이 무너지는 일은 불행히도 이스라엘이 유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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