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디스 혜정아? 미디어가 발목 잡네요"

[당신의 우상은 안녕한가요①]?편견 감수하고 승무원 꿈꾸는 학생들 이야기

등록 2023.06.27 11:53수정 2023.06.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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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면 한 번씩 꿈꾸지 않는가? 어릴 적 거실 속 TV가 세상의 한계와 가능성을 정했다. 그중 미디어가 나타내는 '직업'에 주목했다. '직업'은 누군가가 선망하는 대상이다. 어떻게 묘사되는지 더욱 중요하다. 이 묘사가 타인의 직업에 대한 부당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건 아닌지, 근거 없는 적개심을 나타내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특히 그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과 '직업인'들에게 말이다. 사회의 편견은 미디어에서 나타내는 묘사로부터 공고히 되지 않을까? "드라마는 좀 드라마로 봅시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올 한 해 화제작 <더 글로리> 속 '스튜어디스 혜정아'가 유행어로 번진 것에 주목했다. 제복을 입는 승무원은 다른 직업보다 선입견에 휩싸이기 쉽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유독 '혜정이'에게만 '직업적 수식어'가 붙는다. 이는 승무원에 대한 부당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2023년 승무원에 대한 미디어의 묘사는 어떨까. 극 중 혜정이는 다소 성적으로 묘사되고 탐욕스러운 캐릭터다. 

물론 이 드라마가 직업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승무원에 대해 가지게 될 고정관념에 대한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당사자들이 꿈꾸기를 멈추지 않도록, 자부심을 가지고 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당신의 우상은 안녕한가요? - 기자말

"백지의 상태로 봐주세요."

편견을 감수하고 꿈을 꾸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주변의 시선과 맞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낙담하기도, 직업을 바라보는 불편한 반응에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간 미디어에서 비춰온 승무원 이미지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바라는 우상의 모습이 무엇인지 지난 5월 9일과 13일 항공운항과에 재학 중인 3명의 승무원 지망생과 올해 외국 항공사 입사를 앞둔 예비 승무원 안 씨를 만났다. 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승무원에 도전하고 있었다. '프로페셔널한 모습', '언어에 대한 관심', '소통', '다양한 문화가 오고 가는 직업'이 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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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타던 비행기 안 제주도가 고향인 정 씨는 매년 서울과 제주도를 비행기를 타며 오갔다. 어릴 적부터 봐온 승무원을 보고 꿈을 키웠다. ⓒ 이나혜

 
미디어가 발목을 잡았어요…
항공운항과에 재학 중인 정 씨(남, 20)는 고향이 제주도라 어릴 때부터 매년 4번 정도 서울과 제주도를 비행기를 타며 오갔다. 그는 승무원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가장 친숙한 직업이 됐다.  

하지만 그 꿈을 꾸는데 미디어가 발목을 잡았다.
"승무원에 대한 꿈을 꿀 때 미디어가 발목을 잡았어요. 승무원의 모습이 미디어에서 안 좋은 추세로 비춰져 제가 봐왔던 것들을 미디어가 부정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는 승무원의 진실된 모습을 찾고자 학교에 왔다고 한다. 
"항공운항과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은 '아니다, 아니다'라고 되새겼어요. 승무원의 진실된 모습을 찾는 게 학교에 온 이유입니다."

다른 직업과 달리 방송에서 승무원을 부정적으로 그리다 보니 오히려 꿈을 갖는데 미디어의 영향은 없었다. 이들은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편견을 감수해야 했다. 

항공운항과에 재학 중인 박 씨(여, 20)는 미디어가 승무원의 외적 기준을 높였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시선과 맞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낙담했다. 
"얼굴이 예뻐야 하고 몸매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방송에서 그렇게 비춰지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그 꿈을 꾸고 있다 보니까 주변 사람들이 '왜 들어왔냐'는 생각을 할까 봐 걱정돼요." 

그는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승무원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최 씨(여,20)와 예비 승무원 안 씨(여, 27)도 불편한 반응이 공존했다고 한다. 
최 씨: "항공운항과는 그냥 외모로만 되지 않냐고 말해요. 일반적인 공부가 아닌 항공운항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하고 싶은 공부가 다른 건데 무시하는 경향이 큽니다."

안 씨: "멋있다, 여행 많이 다녀서 좋겠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부모님 속상하시겠다, 좋은 사람 만나 시집 잘 가겠다는 등 불편한 반응이 공존했어요."

그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가 방영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드라마 속 승무원의 모습은 부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더 글로리> 속 승무원 역할을 맡은 혜정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안 씨는 "승무원의 모습 중에서 부정적인 관점들로만 버무려서 희화화됐다"고 말했다. 

"성적 대상화가 될 수 있는 캐릭터 설정, 제복을 입었을 때 꽉 끼는 체형의 배우를 쓰는 등과 같은 묘사가 불편했어요. 혜정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푼수끼가 있고 진중하지 않은 캐릭터라 승무원의 이미지까지 그렇게 인식이 되는 것 같아요."

박 씨는 "'스튜어디스 혜정아'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승무원에 대해 오해할 수 있겠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실제 비행기에 탔을 때의 승무원과 다르기에 시청자들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EO 재준아'가 아닌 '스튜어디스 혜정아'이기에

특히 혜정이에게만 직업적 수식어가 붙는 점을 지적한다. 승무원은 '이미지'에 대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들은 손님 앞에서 조심스러운 서비스 업무를 하기 때문이다. 

안 씨: "<더 글로리>에서 묘사된 바람직하지 않은 재벌 2세 재준이 캐릭터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도 재벌 2세들이 실제로 피해를 받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승무원은 서비스 업무를 하는 사람이에요. 기본적으로 손님이 하는 행동 앞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거든요. 승무원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묘사는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승무원 혜정이가 립스틱 바르는 장면이 많이 나온 것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최 씨: "혜정이가 제복을 입고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승무원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보니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번 자신의 이미지를 체크해요. 하지만 혜정이는 '이 남자를 꼬시겠어'라는 느낌으로 비춰지다 보니까 원래 목적과 다르게 해석돼요."

정 씨: "외모는 승무원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일 뿐인데, 사람들이 보기에 외모가 굉장히 크게 보이잖아요. 승무원은 외모보다는 매너나 행동이거든요. 외모는 그걸 이루는 하나의 축일뿐이에요. 그 축을 담당하는 다른 행동과 매너,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중요해요. 서비스로 겪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겪어보지 않고 보이는 외모만 크게 보는 것 같아요."

이에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지하기 쉽지 않다.
박 씨: "승무원의 외모적이거나, 안 좋은 모습만 비추다 보니까 사람들이 승무원이 안전 업무를 관리한다는 건 인지하고 있어도 세세하게 관리할 거라고 알아주는 승객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꿈을 가지고 있지만 비행기를 탑승하면서 잘 몰랐거든요. 일반인들은 더욱 그렇다고 생각해요. 미디어가 묘사한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 같아요."

현재 승무원에 대한 인식을 어떻다고 생각할까. 그들은 '외모적인 모습' 혹은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라며 쉽게 본다고 말한다. 

박 씨: "마냥 좋지 않다. 승무원은 서비스만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다."
최 씨: "서비스를 잘해주는 직업" 
정 씨: "승무원을 보는 핵심 키워드는 '쉽다'인 것 같다. 외모만 있으면 되기도 쉽고, 서비스하는 것도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절대 그 과정이 쉽지 않거든요. 그 뒤에 있는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봤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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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운항과 수험표 박 씨는 항공과에 들어오기 위해 많은 면접을 준비했다. ⓒ 이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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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에 대한 꿈 박씨가 고등학교 시절 승무원을 꿈꾸며 비행기 안을 둘러보고 있다. ⓒ 이나혜

    
승무원이 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들어 봤다. 승객에게 빠르고 정확한 전달을 위한 '기내 방송', 비행기 구조와 안전을 배우는 '항공 안전', 신뢰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 수업을 듣는다. 장시간 비행이 있기에 쳬력 관리도 필수적이다. 

그들은 승무원이 되길 바라며 일상에서부터 연습을 한다. 비행기라는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모든 승객이 편하고 설레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기 때문이다. 

안 씨: "저는 어딜 가든 항상 밝게 인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누가 봐도 기분 좋아지는 웃음으로요.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다른 서비스 업종보다도 고객들이 기대하는 기준이 아주 높아요. 일적으로 프로페셔널한 것을 넘어서 손님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기분 좋아지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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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되기 위한 노력 안 씨는 승무원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 이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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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되기 위한 노력 승무원의 단정함과 신뢰감을 나타내기 위해 학생들은 정장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 정 씨의 학교 생활 모습이다. ⓒ 이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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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면접 안 씨가 항공사 면접을 볼 때 사진이다. ⓒ 이나혜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많다. 기본적인 언어부터 비행 전문 용어, 공항 기호, 승객 유형에 따른 대처 등이다. 그 속에서 어려움도 따랐다.

정 씨: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한 사람의 개성을 지우고 밝고 친절한 승무원 모습으로 바꿔요.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안 씨: "승무원 준비를 하며 가장 불편했던 점이 있어요. 힘든 직업은 뭐 하려 하냐, 부모님 가슴에 못 박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딸 예쁘게 키워서 고생시키면 어떡하냐고 하더라고요. 하늘에서 시중드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렇지만 고귀하지 않은 직업은 아니에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선택했어요."
 

하지만 그는 자부심 하나로 꿈을 키운다. 

"승무원의 가장 중요한 직무 중에 '안전관리'가 있어요. 비상상황에서 승객들은 승무원만 바라봐야 해요. 사명감이 필수인 직업군 가운데 하나에요. 저는 자부심이 있어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속상하긴 하지만 저만의 생각이 명확하기 때문에 '네 맞아요. 힘들 것 같아요. 어떡하면 좋죠'라고 적당히 대답하고 넘어가요. 어쨌든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씀이니까요."
 

흉터 치료 하듯, 연고 바르듯

그들의 우상이 사라지지 않도록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들은 미디어의 묘사에 바라는 점이 있다. 안전을 위한 일이기에 섹슈얼한 모습으로 묘사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은 없다고 한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밴드를 붙여주듯 이들이 미디어로 인해 꿈을 저버리지 않도록 연고를 발라 달라는 것이다. 

안 씨: "진중하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섹슈얼한 모습으로는 절대로 묘사되지 않길 바라요."

박 씨: "성적이거나 외모적인 모습보다는 승무원의 업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묘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최 씨: "승무원 업무를 배우면서 안전을 위하는 게 더 크구나를 알 수 있었어요. 서비스 중심으로 묘사되는 게 아닌 안전을 위해 일을 하는 승무원이라는 것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정 씨: "물론 지금 미디어 때문에 승무원 이미지가 안 좋은 건 사실이에요. 불행 중 다행으로 더 나빠질 건 없다고 봐요. 추락할 데가 없으니까. 승무원으로서 하는 일이나 고충을 즐겁게 풀어내는 게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더 낮아질 건 없으니까 흉터 치료하듯, 연고 바르는 것처럼요."


백지의 상태로 봐주세요

미디어 속 비치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 말한다. 아니꼽게 보면 뭘하든 아니꼽게 보인다. 승무원에 대한 어떤 시선이 필요할까. 

박 씨: "승무원은 무조건 손님의 의견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업무이고,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승객 한 분 한 분의 목숨을 위해서 비행 전부터 모든 승객이 내린 후까지 다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으니까 생명을 지키는 모습을 가장 알아봐 주길 바랍니다."

안 씨: "승무원의 일을 낮게 보지도, 하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승무원들이 일하기 편해질 것 같아요."

정씨: "사실 아니꼽게 보면 뭘하든 아니꼽게 보인다잖아요. 승무원의 업무는 직접 느껴봐야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좋게도 나쁘게도 보지 말고 그냥 백지의 상태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알아주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비행기를 타고 승무원을 만나 느껴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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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되기 위한 소망 승무원 지망생 정 씨는 승무원이 되길 바라며 비행기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있다. ⓒ 이나혜

 
그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승무원을 정의한다. 

안 씨: "어떤 승객이든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승무원이요. 아무리 불편한 행동을 하는 승객이라도 지혜롭게 잘 처신하고, 그런 분들에게도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프로페셔널한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

박 씨: "그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승객의 세세한 작은 목소리도 들어주는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

정 씨: "저로 인해 다음 비행을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최 씨는 "비행기를 탔을 때 봤던 승무원의 모습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아서 승무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한다. 자신과 친구들이 겪었던 것처럼 미래의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한다. 

"여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이들이 꿈꾸기를 멈추지 않도록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승무원 #더글로리 #꿈 #드라마 #승무원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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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두려움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사람들은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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