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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아니면 어디 가서 목소리 내겠어요"

'학교가 삶인 엄마들'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야기

등록 2023.06.19 17:53수정 2023.06.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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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노동조합 사무실 벽 한 면의 모습. 학생단체 ‘살맛’의 팻말이 붙어 있다. 아래는 노조 일정을 기록한 6월 달력. ⓒ 이다겸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자영(가명, 69)씨는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시가 넘으면 집을 나선다. 그리고 5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

"원래 근무시간은 6시부터 4시까지예요. 그런데 6시에 (건물로) 올라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학생과 교수들이 오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한다. 9시가 되면 아침을 먹고 10시부터는 맡은 구역을 몇 바퀴 돈다. 점심 식사 후에도 이를 반복한다.

"난 진짜 내 집처럼 일해요."

이씨는 연세대 OO관 1층 청소를 맡아온 지 올해로 12년 차다.

지난 9일, 이씨는 휴게시간에 노동조합 사무실(노천극장 위치)에 들렀다.

"수건을 이마에다 메고 하면 땀이 눈으로 안 들어와서 딱 좋아."
"물 자주 내려달라고 종이에다 써서 화장실에 붙여놨거든. 그러니까 변기가 확실히 덜 막혀."
"소장님이 (깨끗해서) 호텔 엘리베이터 같다고 막 그래."



일하면서 생긴 얘깃거리를 다른 조합원들에게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담겨있었다.

조합원에게 노동조합 사무실은 낙이자 안식처다. 많은 조합원이 사무실에 종종 찾아와 가벼운 수다를 떤다. 때로는 건의 사항을 전달하거나 상담을 받기도 한다. 김현옥 연세대 분회장과 문유례·정윤석 연세대 부 분회장이 이곳에서 내·외부적으로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중대한 애로사항까지 처리·해결한다.

"어제(8일)는 EBS에 다녀왔어요. EBS는 노조가 생긴 지 한 달밖에 안 됐대요. 근데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분회장, 부분회장, 사무장들이 해고된 거예요. 그래서 연대하러 갔죠."

다른 노조 집회에 동참하는 것도 이들의 업무 중 하나다.

"원래는 하라는 대로 하는 노예였어요"

"15년 전 그 일이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2008년 '살맛'이라는 학생단체와 연대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용역업체에 부당대우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고 체불임금 3억 5000만 원을 돌려받았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일단은 투쟁하고 싸워야죠."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 뜻을 함께한다.

연세대는 지난해 청소노동자 고소 사건 이후로 청소노동자 휴게시설 대부분이 개선됐다.

"살림살이를 싹 장만해서 (1층으로) 올려줬어요."

창문이 없거나 지하에 있던 휴게실이 1층으로 이동했고 냉장고 같은 필요한 제품들도 모두 갖췄다. 제3공학관만 마땅히 옮길 곳이 없어 휴게실이 지하 주차장 옆에 그대로 있다. 원청은 2025년 12월 준공 예정인 제5공학관에 휴게실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다.

지난해 용역업체와 6개월 넘게 교섭하고 투쟁했던 반면 올해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2023년 최저임금이 460원 오른 것을 감안해 임금을 400원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교섭이 잘 마무리된 관계로 연세대 노동조합은 당분간 집회 계획이 없다.

대신 이달 14일부터 하청 업체 5곳과 보충 교섭을 시작했다. 하청이 원청과 임금 변경 계약이 안 됐다며 22년도가 아닌 21년도 급여를 지급해서다. 하청과 협상해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고 소급분을 받아야 한다.

"학교랑 대화를 안 해봤으니까 (사실인지) 모르죠. 아무튼 강력하게 얘기해 볼 예정이에요."

얼마 못 가 23년 급여로 달라고도 다시 얘기해 봐야 한다. 또한 공동으로 교섭하는 서울 지역 13개 대학 중 덕성여대, 카이스트를 비롯한 8개 대학은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이 학교들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연대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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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연세대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기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유례 부분회장, 김현옥 분회장, 정윤석 부분회장, 이다겸 기자. ⓒ 이다겸

 
"우리 엄마들은 학생들이 더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게 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해요. 다 내 자식 같고 그러니까."

조합원들은 자신을 '엄마'라고 칭한다. 그들은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학교에서 일한다. '엄마'들에게 연세대는 삶 자체이자 터전이다.

김 분회장도 15년 전 일을 시작했을 때는 노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가입하지 않았다.

"원래는 하라는 대로 하는 노예였어요. 노동조합이 생기니까 갑질이 사라지고 세상 살맛이 나는 거예요. 노동조합이 아니면 우리가 어디 가서 목소리를 내겠어요."

김 분회장은 "노조가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다"며 "지금은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오래오래 건강하기다. 김 분회장은 "우리 조합원 모두 건강해야 한다. 조합원들 거의 다 60세가 넘었다. 내년이고 후년이고 집회할 필요 없이 원청과 소통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고용형태, 일의 방식, 노동하는 시간과 공간 등이 갈수록 더 다변화·파편화되고 있다"며 "비정규 노동자와 노조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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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다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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