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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라는 비난 대신 "느려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우리는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4편

등록 2023.01.09 09:46수정 2023.01.0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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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지능'이란 지적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 능력을 말한다. 본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1980년 개정된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따르면 IQ 71~84 사이를 '경계선 지적 기능'으로 정의한다. 한국 역시 해당 편람의 기준에 따라 '경계선 지능'을 규정하고 있으나 일상에서의 ▲ 언어 ▲ 행동 ▲ 학습 능력 및 사회적 기능 수준과 상담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경계선 지능이 언급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EBS '심층취재 경계선 지능' 보도 이후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시선과 교육 및 복지 개선 속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취재팀은 경계선 지능인이 겪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재조명하고 사회의 다각적 변화를 도모하고자 본 취재를 시작했다. 특히 단순 문제 지적을 넘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따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난 3월부터 경계선 지능인 당사자, 학부모, 특수교사, 경계선 지능 전문가 등 14명을 인터뷰했으며, 관련 데이터 분석 등을 진행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경계선 지능인의 삶을 총 4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기자말]
"어머니, 그거 어머니 욕심이에요."

경계선 지능인 자녀를 둔 학부모가 학교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다. 고등학생 자녀가 여느 학생들처럼 3월 모의고사를 봤다는 게 그 이유다. 학원도 어차피 하지 못할 공부 왜 시키냐고도 묻는다. '경계'에 서 있는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은 직접 맞춤형 방과후교실을 개설하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지역 커뮤니티도 형성했다.

그렇게 느린학습자의 부모, 시민 활동가, 사회복지사, 연구자가 모였다. 평범한 학부모였던 이들은 관련 조례를 건의하기 위해 '스터디'도 구성했다. 이처럼 부모들은 느리지만, 천천히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 토대를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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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 홍세영 이사 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 홍세영 이사가 시민회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차례

이처럼 경계선 지능인 본인과 학부모, 주변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제는 전문가들이 경계선 지능인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대안을 고민할 때이다. 이에 경계선 지능 연구소 '느리게 크는 아이' 박현숙 소장은 "이미 나와 있는 목소리는 물론 해외 사례까지 고려한 포괄적이고도 미래 지향적인 대안을 전문가들이 나서서 구체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경계선 지능 전문가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 특히 현장에서 경계선 지능 학생들을 직접 상대하는 전문 교사 육성이 중요하다. 교원 양성 과정에 특수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 과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맞춤 교육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경계선 지능 대상 연구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게 되면, 입는 아이들도 입히는 교사들도 지치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파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 아동 지도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실습을 포함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되기 전에 느린 학습자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갖고, 아이들을 당연한 하나의 주체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요." - 윤상이 팀장 (지역아동센터 충북아동지원단 경계선사업팀)

교육의 목표는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14년 차 특수교사로 유튜브 채널 '경계를 걷다'를 운영 중인 이보람 교사는 경계선 지능 학생들을 바라보는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습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문제아로 여기거나 숨기는 대신, 그들의 학업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인'으로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부모의 용기가 변화의 첫걸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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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건중학교 이보람 특수교사 진건중학교 이보람 특수교사가 경계선 지능을 위한 교육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생애주기별 맞춤 복지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자치단체별 조례를 바탕으로 지역 복지관 간 네트워크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복지사들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경계선 지능인의 평생교육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마다 복지 대상이 다르다 보니 구축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 복지 사업을 운영하는 복지관 간 네트워크 형성은 더 원활한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저희는 아동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어디는 중고등 어디는 청년, (복지관마다) 다 다르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청소년이 됐을 때도 끊기지 않고 꾸준하게 지원받을 수 있고 나아가 학년별 맞춤 교육 부분까지도 논의될 수 있겠죠." - 위주환 사회복지사 (구로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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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내 복지관별 경계선 지능 사업 성격 분류도 2022년 9월 29일 기준 서울시 내 5개의 종합복지관을 대상으로 제작한 분류도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2022년 9월 29일 기준 서울시 내 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한 지역 간 네트워크 구축이 진행되고 있는 자치구는 ▲ 도봉구 ▲ 성북구 ▲ 동대문구 ▲ 양천구 ▲ 구로구 총 5곳이다. 취재팀은 해당 자치구 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을 한 곳씩 꼽아 해당 종합사회복지관의 경계선 지능 사업 성격 및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복지관마다 모집 대상과 진행되는 사업의 성격 또한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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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내 5개 종합사회복지관의 경계선 지능 사업 개괄 2022년 9월 29일 기준 서울시 내 5개의 종합복지관 경계선 지능 사업 개괄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경계선 지능인, 두려워 말고 세상과 맞서라

무엇보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자 하는 경계선 지능인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먼저다. 경계선 지능 청년 이창갑씨는 누구보다 경계선 지능을 잘 아는 사람은 경계선 지능인 본인이라며 "제3자보다 당사자가 직접 움직이고 당사자를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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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지능 청년 최원재, 정지은씨 창작물 (왼쪽) 경계선 지능 청년 최원재씨가 직접 그린 그림, (오른쪽) 경계선 지능 청년 정지은씨의 그림. ⓒ 최원재, 정지은 본인 제공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경계선 지능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먼저 사회를 마주한 카페 '아자라마' 바리스타 최원재(27)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우선 용기 있게 밖으로 나가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해요."

분명, 본인이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어려움을 겪고 있을 이들도 많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당장은 그 출구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지자체 차원의 복지 및 정책 그리고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인식 변화의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있다. 두려워 말고, 세상에 나와도 괜찮다. 틀린 게 아니다. 조금 다를 뿐이다.

"느린 학습자들이 아마 전국에 꽤 있을 거예요. 그 친구들이 모두 사회 일원이 돼서, 각자 원하는 꿈과 목표를 이뤄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 최원재 (카페 아자라마 바리스타)

[우리는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1편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2편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3편
덧붙이는 글 본 취재물은 '제5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경계선지능 #경계선지능인 #느린학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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