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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꽃, 지금 한창입니다

꽃무릇과 어우러지는 소박한 절집, 함평 모악산 용천사

등록 2022.09.19 13:39수정 2022.09.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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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꽃무릇. 기다란 연초록 꽃대에 왕관처럼 씌워진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 이돈삼

 
꽃무릇이 화들짝 피고 있다. 이맘때 선홍빛으로 찾아와 우리를 들뜨게 만드는 꽃이다. 꽃무릇은 기다란 연초록 꽃대에 왕관처럼 씌워진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다.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꽃이다. 잎은 꽃을, 꽃은 잎을 서로 그리워한다는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꽃무릇은 남도의 절집에 많이 핀다. 선홍빛 꽃의 생김새가 강렬하고 짙어 절집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최근엔 지자체에서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부러 심기도 했다. 산과 들은 물론 도심 공원과 주택가까지도 꽃무릇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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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활짝 핀 숲길. 용천사로 오가는 숲길이다. 9월 16일 오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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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불갑저수지 수변에 핀 꽃무릇. 영광 불갑사는 함평 용천사와 함께 남도의 꽃무릇 군락지다. ⓒ 이돈삼

 
꽃무릇이 절집에 많이 피는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짝사랑이다. 옛날에 절집을 찾은 아리따운 처녀가 젊은 스님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스님을 마음에 품은 처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처녀의 무덤가에 피어난 꽃이라는 설이다.

반대로, 절집을 찾은 처녀를 그리던 스님의 혼이 붉게 타오른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꽃말도 누구라도 짐작하는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하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이유는 따로 있다.

꽃의 알뿌리가 머금고 있는 독성에 있다. 독성을 지닌 알뿌리를 찧어 절집을 단장하는 단청이나 탱화에 바르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알뿌리에 들어있는 방부제 성분 때문이다. 단청을 하고 탱화를 그리는 절집에서 많이 심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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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 대웅전과 용천(龍泉). 용천은 절집 이름을 만들어낸 샘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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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사이로 석등과 지장전이 보인다. 지난 9월 16일 오후다. ⓒ 이돈삼

 
꽃무릇을 이야기할 때 함평 용천사를 빼놓을 수 없다.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와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용천사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가는 양쪽 산자락과 산책로 주변에 꽃무릇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왕대밭 아래에도, 항아리 조형물 근처에서도 군락을 이룬다. 연못 둔치에 반영돼 비치는 꽃무릇 풍경도 멋스럽다.

모악산 자락 용천사는 역사 깊은 절집이다. 통일신라 때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고려 때 지어진 절집이라는 견해도 있다. 절집의 규모가 크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계단 옆에 샘이 하나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천(龍泉)이다. 절집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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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과 어우러진 용천사의 석등과 석탑. 지난 9월 16일 오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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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의 화사석 사이로 내다 본 석탑. 주변에 꽃무릇이 활짝 피어 있다. ⓒ 이돈삼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석등도 명물이다. 강희 24년에 세웠다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강희 24년, 1685년에 세운 것이다. 석등도 투박하면서 정감이 배어난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 아래에 거북을 조각해 놓은 것도 별나다. 위로 올라가는 거북에서 생동감이 묻어난다.

모악산 골짜기는 한국전쟁 때 빨치산이 머물렀던 곳이다. 전쟁 와중에 절집이 전부 불에 탔다. 하지만 석등은 두 귀퉁이의 거북만 파손됐을 뿐, 원형을 지켰다고 한다.

용천사는 한국전쟁 이후 방치됐다가 1964년 금당스님이 대웅전을 복원하면서 절집의 형태를 다시 갖췄다. 80년대에 요사채가 건립되고, 90년대 중반에 대웅전을 다시 지었다. 전각과 요사채의 고즈넉한 멋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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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의 승탑.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330년 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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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앞 당간지주. 석주를 세운 연대가 새겨져 있다. ⓒ 이돈삼

 
절집에서 승탑과 괘불을 내거는 당간지주도 눈여겨 볼 만하다. 용천사의 승탑 가운데 6기가 조선 후기에 조성됐다. 탑신에 '강희삼십일년 회백당인종대사'라고 새겨진 승탑도 있다. 강희 31년은 1692년, 회백당은 용천사를 중창한 스님을 가리킨다. 330년 된 승탑이다.

지장전 앞에 있는 한 쌍의 당간지주는 높이 1m 남짓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 당간지주를 세운 연대를 알 수 있는 연호가 새겨져 있다. 석등을 만들고 3년 뒤, 1688년에 만든 것이다.

반쪽만 남은 해시계도 용천사의 보물이다. 세로 39㎝, 두께 14㎝의 정사각 모양이다. 제작연대가 명확한 석등과 돌의 재질이 같은 걸로 미뤄 1685년에 석등과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전각이 불에 타면서 유실됐던 해시계는 1980년 경내에서 발견됐다. 한쪽이 부러져 사라지고, 나머지 한쪽만 모습을 드러냈다. 반쪽 해시계가 된 이유다. 꽃무릇과 전각이 어우러져 황홀경을 연출하는 절집이 지금 용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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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으로 둘러싸인 용천사. 선홍빛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 지난 9월 16일 오후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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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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