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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마트, 모란다방... 강진을 먹여살리는 대단한 시인

민족시인 영랑 김윤식의 글이 음악 되어 흐르는 탑동마을

등록 2022.08.21 19:51수정 2022.08.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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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탑동마을에 있는 영랑생가의 안채 풍경. 마을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도록 해준 공간이다. ⓒ 이돈삼

 
이 새끼, 저 새끼, 내부총질 등 비속어가 일상으로 들려온다. 정제되지 않은 저급한 언어들이 정치권에서 난무한다. 말의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옛말에 '벼슬이 높은 1품은 아홉 번 생각한 다음 한 마디 말을 하고, 9품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 이상의 말을 뱉어내고 행동하는 것만 같다.

우리말을 잘 다듬어 쓴 '언어의 정원사'를 만나러 간다. 언어의 정원사는 내면의 서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영랑 김윤식(1903∼1950)을 가리킨다. 목적지는 '남도답사 일번지' 전라남도 강진이다. 강진은 김종률․정권수․박미희 트리오가 부른 '영랑과 강진'의 노랫말처럼, 영랑의 글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곳이다.

강진 사람들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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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탑동마을에 있는 영랑생가. 강진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도록 해준 공간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 이돈삼

 
강진 사람들이 얼마나 영랑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강진에 가면 금세 알 수 있다. 영랑의 동상이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가우도에는 영랑나루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영랑이나 모란이 들어가는 가게 이름도 많다. 마트, 다방, 미용실, 식당, 화랑, 빌라 등등.

"강진 사람들의 자부심입니다. 어려서부터 영랑생가를 놀이터 삼아서 놀았어요. 여름에도 정말 시원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영랑의 시를 배웠어요. 영랑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도 앞장선 분이셨지요. 지금은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여 강진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대단한 영랑입니다."

영랑생가 앞에서 모란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재성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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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와 탑동마을. 영랑생가가 마을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강진읍 탑동마을은 영랑 김윤식이 태어난 마을이다. 생가는 영랑이 떠나고 몇 차례 주인이 바뀐 집을, 1985년 강진군에서 사들여 복원했다. 생가의 사랑채 마당을 지키고 선 나무에서 은행이 영글어가고 있다. 은행잎을 노랗게 물들일 가을이 저만치서 기지개를 켜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나라 시문학의 발상지

김윤식은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의숙에 들어갔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 때 강진으로 내려와 4·4독립운동을 이끌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영랑을 '민족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윤식은 1930년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에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했다. 일제강점 때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하며 의롭게 살았다.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해 47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짧은 생을 사는 동안 87편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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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시문학파기념관 전경. 입구 왼쪽에 김영랑과 박용철 정지용의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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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시문학파기념관 내부. 우리나라의 문예사조와 함께 시문학파를 소개하고 있다. ⓒ 이돈삼

 
시문학파는 한국 서정시를 이끌며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펼쳤다. 김윤식을 비롯 박용철 정지용 정인보 이하윤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등이 참여했다. 동호회지 <시문학>은 1930년 3월 창간해 이듬해 10월 제3호를 끝으로 중단됐다.

창조파, 폐허파, 백조파, 카프파, 국민문학파, 해외문학파에 이은 시문학파는 모더니즘파, 생명파, 청록파에 앞서 우리 문학사의 허리 역할을 했다. 당시를 풍미했던 카프문학이나 감각적인 모더니즘에 휩쓸리지 않고, 창의적인 리듬과 감각으로 진정한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모국어를 세련되게 구사하며 한국시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도 받는다.

강진시문학파기념관이 영랑생가 앞에 있다. 기념관은 특정 문인이 아닌, 한 시대의 문예사조를 조명하는 공간이다. 한국 문학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문학유파 기념관이다. 입구에 <시문학> 1호와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정인보 이하윤 변영로를 포함한 시문학파 9명의 얼굴도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김윤식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변영로의 '논개', 정지용의 '향수',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 등 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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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 뒤편에서 만나는 세계모란공원. 영랑의 시 모티브가 된 모란 조형물과 함께 영랑의 시, 세계 여러 나라의 모란까지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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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 뒤편에서 만나는 세계모란공원. 영랑의 시 모티브가 된 모란 조형물과 함께 영랑의 시비가 설치돼 있다. ⓒ 이돈삼

 
영랑은 가고 없지만, 모란은 강진에서 한여름을 빼고 연중 볼 수 있다. 영랑생가 뒤편에 세계모란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공원에는 토종모란을 비롯 세계 여러 나라의 모란과 함께 아열대․난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다.

마을 골목에는 시와 그림이 버무려진 '시의 거리'도 조성돼 있다. 모란을 모티브로 한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이 많이 설치됐다. 삭막하고 허름한 골목을 환하게 밝혀준다.

모란처럼 늘 향기로운 탑동마을은 이른바, 명당에 속한다. 풍수지리로 볼 때 황소의 지형에서 콧등에 자리하고 있다. 오래 전 지방의 관아였던 동헌이 있던 마을이다. 지금은 군청, 경찰서 등 행정기관이 모여 있다. 북쪽으로 보은산이 있고, 남으로는 탐진강이 보이는 배산임수의 지형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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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의 사랑채. 은행나무와 배롱나무 그늘이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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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길로 단장된 탑동마을의 골목길. 영랑과 같은 시대를 산 김현구 시인을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영랑은 어린 시절 서문 출신의 시인 김현구와 함께 금서당(琴書堂)에서 공부를 했다. 금서당은 강진 신교육의 요람이었다. 처음에 '관서재'로 시작돼 금서당으로 이어졌다.

영랑은 금서당을 거쳐 4년제 강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강진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강진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같은 해 4월 4일엔 전교생 2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자연스레 탑동마을은 일본에 맞선 강진 만세운동의 터전이 됐다. 금서당은 이후 김영렬 화백의 작업실로 쓰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 화백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탑동마을엔 나라를 지키다 죽은 영혼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80년 5월 민주화 시위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강진군청과 강진읍교회 등이 5․18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탑동마을은 우리나라 시문학의 발상지답게 시 낭송, 시 창작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시문학파기념관이 이끄는 프로그램은 달콤한 시문학 이야기, 시가 흐르는 마을, 밤의 문화데이트 등 다채롭다.

전라남도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은 시 낭송과 예술교육, 시 창작교실 등도 주민들의 시적 감성을 높여준다. 문학의 향기와 역사의 숨결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탑동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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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탑동마을 전경. 영랑생가 뒤편 세계모란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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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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