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가 잘려나간 낭떠러지를 사진에 담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26] 황량한 들판에 있는 관광지 킹스 캐니언(Kings Canyon)

등록 2022.06.01 13:18수정 2022.06.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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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캐니언의 최대 볼거리. 산 하나가 떨어져 나간 절벽이다. ⓒ 이강진

 
좋은 야영장 시설이 있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앨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을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다음 목적지는 호주의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라 불리는 킹스 캐니언(Kings Canyon)이다.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울룰루(Ayers Rock)에서 가까운 곳이다. 당분간은 오지에서 불편한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킹스 캐니언에서는 물품 구입이 쉽지 않을 것이기에, 떠나기 전에 쇼핑센터에 들렀다. 마실 물을 충분히 산다. 과일도 샀다. 물론 필요한 음식 재료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계산하려고 줄 서 있는데 젊은 동양 여자가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다. 직감이 한국 사람 같다. 이름표를 달고 일하는데 한국 이름이다. 바쁘게 일하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진다. 여행하다 보면 한국 사람이 호주 전역에 많이 흩어져 산다는 것을 실감한다.

신호등이 있는 도시를 벗어나 황량한 광야의 고속도로에 다시 들어선다. 높은 민둥산이 줄지어 있는 경치를 뒤로하고 달린다. 직선으로 뻗은 2차선 도로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산이 많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다시 만난다. 도로변에 큼지막한 리조트 광고가 있다. 그런데 리조트가 있는 장소는 이곳에서 400km 떨어져 있다. 호주가 넓은 대륙임을 또다시 확인한다.

오래 달렸다. 평야만 계속될 것 같은 분위기가 바뀌면서 오른쪽 차창으로 민둥산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전 미국 서부의 사막 지대를 운전하면서 만났던 풍경과 흡사하다. 오랫동안 달려 큼지막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를 만났다. 계속 이 도로를 따라가면 울룰루다. 킹스 캐니언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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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룰루(Ayers Rock)와 킹스 캐니언(Kings Canyon)으로 가는 도로가 만나는 세거리. ⓒ 이강진

 
핸들을 돌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텅 빈 2차선 도로를 계속 달린다.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 운전해 야영장에 도착했다. 동네는 없다. 그러나 고급 리조트가 있다. 식당 규모도 크다.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킹스 캐니언을 찾아온 관광객만을 위한 시설이다.

오래 운전했더니 피곤하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광야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흔히 표현하는 '멍때리기'로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에 휴식을 권한다. 이곳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 전화도 불통이다. 그러나 자연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다. 

다음 날 아침 볼거리(Watarrka National Park)를 찾아 나선다. 공원에 도착하니 특이한 구조물이 보인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곳에 설치된 화면에서는 공원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산책로도 여러 개 있다. 길게는 이틀 동안 걷는 코스부터 한 시간 이내에 돌아볼 수 있는 짧은 코스도 있다. 그중에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산책로를 택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선택하는 6km 거리의 코스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3-4시간 걸린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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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Watarrka National Park) 입구에 세워져 있는 특이한 조형물. ⓒ 이강진

 
산책로에 들어선다. 산책로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늘이 없는 가파른 돌산을 올라가야 한다. 생각보다 힘들다. 중간에 쉬어 가면서 정상에 올랐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씻으며 내려다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를 들고 잠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화살표를 따라 산책로를 계속 걸어 들어간다.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없는 풍경이 계속된다. 드디어 산 하나가 칼로 자르듯이 일자로 떨어져 나간 엄청난 낭떠러지에 도착했다. 킹스 캐니언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낭떠러지가 위험하니 2m 이내로 가지 말라는 경고가 보인다. 극도로 조심하면서 엎드려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조심할 수밖에 없다. 

낭떠러지에서 사진을 찍다 추락사했다는, 오래전에 본 기사가 생각난다. 중간중간에 설치된 헬리콥터 착륙장과 응급 의료 시설이 비치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이 빗은 기이한 모양의 조각품들을 머리에만 담기에는 아쉽다.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르며 산책로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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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캐니언의 최대 볼거리. 산 하나가 잘려나간 낭떠러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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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곳곳에 설치된 응급 시설. ⓒ 이강진

  
돌산이지만 초목은 자란다. 돌과 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몸을 비틀어가며 자라는 작은 나무들이다. 생명의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가 있어서일까, 새들도 제법 보인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새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산책로 한복판에 앉아서 사람이 비껴가기를 바라는 듯이 날아가지 않는다.  

정상에서 바위를 밟으며 계속 걷는데 낭떠러지를 만났다. 낭떠러지에는 거의 수직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내려가 깊은 계곡을 건너니 에덴동산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에덴동산으로 향하는 산책로에 들어선다. 지금까지는 태양이 내리쬐는 바위를 걸었는데 초목으로 울창한 계곡이 나온다. 산책로 끝자락에 도착하니 작은 호수가 있다.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물과 숲을 보니 파라다이스라고 부를 만하다. 

내가 사는 동네가 문득 떠오른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집 주위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 보는 이 장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로운 환경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을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파라다이스도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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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사이에 설치된 산책로 계단. ⓒ 이강진

 
산책로가 거의 끝날 무렵 또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이정표(Giles Track)가 세워져 있다. 산책로 길이가 22km 그리고 목적지까지 하루 혹은 이틀 걸린다고 쓰여 있다. 혼자 걷는 것은 무리다. 동반자가 있으면 모를까. 오늘 하루 적당히 걸으며 기이한 풍경을 많이 구경했다. 킹스 캐니언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이유를 충분히 몸으로 느꼈다.

산에서 내려와 주차장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빵과 과일로 허기를 채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스켓을 앞에 놓고 식사한다. 그 옆에서는 젊은 여자가 가스 불을 피워놓고 간단한 요리를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래 쉬었다. 그러나 야영장으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거리가 짧은 산책로도 둘러본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편한 산책로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조금 걸어 들어가 작은 정자에 도착했다. 조금 전에는 정상에서 내려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낮은 곳에서 높은 절벽이 있는 풍경을 만난다. 나름의 멋진 풍경 속에 잠시 머물며 숲과 함께한다. 

다음 날 또 다른 볼거리(Kathleen Springs)를 찾아 나선다. 오래전에 사람들이 가축을 키웠던 장소다. 차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들어간다. 왼쪽으로 돌산이 계속된다.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많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가축에게 물을 주던 곳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물을 저장해 놓았던 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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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가축을 위해 마련한 물 저장 시설. ⓒ 이강진

 
산책로를 따라 계속 들어가니 푸르름을 뿜어내는 싱싱한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근처에 물이 있다는 증거다. 예상했던 대로 숲으로 난 산책로 끝에는 작은 호수가 있다. 호수라기보다는 큰 물웅덩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물이라도 있기에 동식물이 모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황량함을 자랑하는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에 야영장에 돌아왔다. 이른 저녁을 끝내고 넓은 야영장 주위를 걷는다. 수영장에서는 아직도 물놀이 소리가 요란하다. 캐러밴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야영장 외진 장소에는 젊은이들이 가지고 온 트레일러(Trailer Tent)가 많이 주차해 있다. 그 뒤에 있는 식당에는 맥주잔을 앞에 놓고 하루를 끝내는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식당 뒤에 있는 산책로를 걷는다. 석양을 즐길 수 있도록 나무판자로 조성해 놓은 운치 있는 산책로다. 광야를 휩쓸고 부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해가 멀리 떨어지기 시작한다. 많이 보아왔던 광경이다. 지는 해는 쓸쓸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또 한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지는 해가 있기에 뜨는 해도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즈음 지는 해가 떠오르는 태양 이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인터넷으로 보았던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법륜 스님의 강연이 떠오른다. 삶은 어느 때나 항상 아름답지 않았을까, 황혼의 나이에 지는 해를 바라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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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에서 바라본 석양, 황량한 지역에서 만나는 석양은 유난히 아름답다. ⓒ 이강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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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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