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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만 국경인가, 섬은 어느 곳보다 소중한 국경"

[인터뷰] 사진전 '섬의 무늬' 여는 강제윤 섬연구소장... "섬을 향한 편견 깨야"

등록 2021.07.04 15:09수정 2021.07.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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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섬연구소장. ⓒ 권우성


"섬에 대해 잘 모르고, 섬사람들의 고통을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시인 강제윤은 '섬 활동가'다. 2012년 '섬학교'를 세우고 2015년 '섬연구소'를 만들어 섬과 섬사람들을 지켜오고 있다. 그에게 붙는 수식어와 그가 쌓아온 이력을 살피면 독보적이란 평이 절로 나온다.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2003년 33일 간의 단식 끝에 보길도의 댐 설치를 막고 상록수림과 자연하천을 지켜냈다. 최근까지도 그는 수많은 섬을 다니며 비슷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면서도 강 소장은 흑산공항 사업에 찬성 의견을 내기도 했다.

때문에 혹자는 '이율배반'이라며 그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상식"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강조한다. 섬과 섬사람들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상식에 위배될 때 '꼭지'가 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의도, 강제윤 사진전 '섬의 무늬' 중. ⓒ 강제윤


강 소장을 지난 6월 29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강 소장은 7월 14~18일 서울 종로구 도화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을 앞두고 있다. 사진전의 이름은 '섬의 무늬'다. 이전에 열었던 사진전 '섬나라, 한국(2015년)', '당신에게 섬(2019년)'과는 느낌이 다른 주제다. 다만 그가 꾸준히 사진전을 이어가고 섬 활동가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다.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우리의 소중한 영토를 민병대처럼 지켜왔고, 지금도 지키고 있는 이들을 돕진 못할망정 그런 편견을 갖고 대하면 되나. 영토를 지키고, 영토가 지닌 자원을 지키고,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서 섬은 어느 곳보다 소중한 국경이다. 휴전선만 국경이 아니다." 

이번 사진전은 한국섬진흥원의 출범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전남 목포 삼학도에 세워지는 한국섬진흥원은 오는 8월 문을 연다. 한국섬진흥원 설립은 섬연구소의 2018년 첫 제안(제1회 한국지속가능성포럼)이 단초가 돼 그 결실을 맺었다. 강 소장은 한국섬진흥원 출범의 의미와 함께 앞으로의 갈 길이 멀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 소장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섬은 버려진 땅? 섬 덕분에 영토와 주권 이야기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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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섬연구소장. ⓒ 권우성


- 사진전 주제가 '섬의 무늬'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2015년 첫 사진전 주제가 '섬나라, 한국'이었다. 그땐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섬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섬을 유배지 아니면 유토피아로 생각하던 시절이었고, 그리스 산토리니나 인도네시아 발리보다 먼 곳으로 여기던 때였다. 그래서 사진전을 통해 '섬나라, 한국'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2019년엔 '당신에게 섬'이란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2015년보단 많은 사람들이 섬과 가까워졌다. '누구나 나의 섬 하나쯤 가져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당신에게 섬'이란 주제를 택했다. 이전까지의 사진전에선 섬도 사람 사는 곳이다, 섬도 따뜻한 곳이다, 섬은 무서운 곳이 아니다 등 포괄적으로 섬을 소개하려고 했다면 이번엔 섬의 구체적인 무늬를 보여주고 싶었다. 섬의 무늬, 섬사람들의 무늬를 보여주는 전시회로 기획했다." 

- 전시되는 사진도 이전과는 좀 다르겠다.
"그렇다. 이전엔 섬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다, 섬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섬엔 이런 음식도 있다 등 섬의 대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번엔 좀 더 내밀하게 들어가 구체적인 빛깔들을 섬세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 왜 섬을 알리는 일을 하나. 
"내가 섬 출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섬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섬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섬사람들이 얼마나 소외되고 차별을 받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우리는 통상 섬을 관광자원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섬이 지닌 영토적 가치, 안보적 가치도 굉장히 중요하다. 우린 육지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섬을 버려진 땅으로 여기지만 섬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해양영토와 주권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반도 내륙으로 우리의 영토가 끝난다면 어떻겠는가.

조선왕조실록에 암태도 염간(염전에서 일하는 사람) 20명이 왜구 선박 9척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선박 한 척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100명까지도 탄다. 그런 규모의 왜구를 섬사람 20명이 물리쳤다. 기록되지 않은 비슷한 일도 많이 일어났을 것이다. 섬사람들이 우리 국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피를 흘려왔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무인도가 된 서해의 서격렬비열도를 중국인이 매입하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만약 그 섬이 중국인 소유가 됐다면 그곳에서 독도처럼 영토분쟁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영토를 지키고, 영토가 지닌 자원을 지키고,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서 섬은 어느 곳보다 소중한 국경이다. 휴전선만 국경이 아니다. 섬을 함부로 대하고 섬에서 사람들이 떠나버리면 그곳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당장 중국 어선들에 떼거지로 몰려와 한반도 인근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섬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 과거 왜구가 섬을 점령해 자원을 수탈해갔던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섬을 우리는 그동안 천대하고 무시해왔으며 외롭게 수백 년간 섬을 지켜온 이들을 편견을 갖고 대해왔다."

- 섬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꼭 '섬'을 제목에 넣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개인의 범죄여도 꼭 섬사람 전체를 공모자, 범죄자로 몰아가곤 한다.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과 육지 사람들이 가진 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더해져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많은 이들이 화성에 사는 사람들을 '불안하겠다'며 걱정해줬다. 하지만 섬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섬사람들을 걱정하지 않고 섬 전체를 공모자로 생각한다.

어느 마을에 범죄가 일어났다고 해서 시장, 도지사가 사과하지 않잖나. 하지만 섬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그걸 요구한다. 통계적으로 따져보면 섬의 범죄율이 육지의 범죄율보다 훨씬 낮다. 내가 자꾸 사진전을 열고 섬 관련 활동을 벌이는 건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우리의 소중한 영토를 민병대처럼 지켜왔고, 지금도 지키고 있는 이들을 돕진 못할망정 그런 편견을 갖고 대하면 되겠는가."

"섬진흥원 생겼지만... 산림청처럼 '섬청' 필요"
 

관매도, 강제윤 사진전 '섬의 무늬' 중. ⓒ 강제윤


- 2003년 고향인 보길도에서 단식 투쟁 끝에 댐 건설을 막고 상록수림과 자연하천을 살려냈다. 2012년 '섬학교', 2015년 '섬연구소'를 만들었고 그 동안 지심도, 관매도, 백령도 등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왔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데 기준이나 철학이 있나.
"간단하다. 상식에 위배될 때 '꼭지'가 도는 것이다. 지심도의 경우 원래도 이미 관광지인데 관광개발을 이유로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그곳에 시설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누가 봐도 뻔하지 않나. 주민들 쫓아내고 그곳에서 이권을 얻으려는 자들이 있었다. 당시 섬 주민들을 돕는 이들이 없었다. 심지어 어느 환경단체에선 '섬에 사람이 살면 해가 된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하더라. 제게 지심도 주민들이 직접 도움을 요청해왔고, 경상남도에서도 (거제시를 통제할 수 없다며)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한편 저는 오랫동안 섬 환경운동을 해왔지만 흑산공항 사업엔 찬성하기도 했다.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육지 사람들은 KTX, 일반열차, 버스, 택시, 승용차, 비행기 등 온갖 교통수단을 다 누리지 않나. 섬사람들은 배 하나 뿐이다. 그것도 1년에 많게는 120일까지 배가 뜨지 못한다. 육지에선 철도 파업 이틀만 하면 난리가 나면서 섬사람들은 그냥 참고 살라는 거다. 물론 그 자리에 보존해야 할 게 있다면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섬에는 무조건 안 돼'라는 식의 태도는 상식에 어긋난다."

- 많은 사람들이 교통을 일상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과 분리된 삶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섬에선 작은 질병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많지 않나.
"섬에 대해 잘 모르고, 섬사람들의 고통을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리산도 (흑산도처럼)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엔 수많은 도로가 놓여 있고, 그곳을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흑산공항을 만들려면 1.2km 도로(활주로) 하나가 필요할 뿐이다. (흑산공항 건설로 피해를 입는다는) 철새나 쇠똥구리만큼 섬사람들의 삶도 중요하다."
 

증도, 강제윤 사진전 '섬의 무늬' 중. ⓒ 강제윤


- 오는 8월 '한국섬진흥원'이 출범한다. 출범 이후가 더 중요할 것 같은데.
"섬연구소는 2018년 '제1회 한국지속가능성포럼'을 통해 행정안전부에 처음 한국섬진흥원 설립을 제안했다. 이후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법안 발의로 이번에 한국섬진흥원이 출범하게 됐다. 우선 '각 섬들이 지자체에 속해 있는데 왜 섬만을 위한 기구가 필요하냐'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섬은 어느 지자체에서든 제일 소외되는 곳이다. 백령도의 고통을 인천이 잘 모르고, 거문도의 고통을 여수가 잘 모르고, 울릉도의 고통을 경북이 잘 모른다. 하지만 백령도의 고통을 거문도가, 거문도의 고통을 울릉도가 잘 안다. 섬은 각기 떨어져 있어도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걸 국가가 통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섬 정책을 다루는 정부부처만 10여 곳이다. 중구난방에 통일성 없는 섬 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이벤트성 사업이 이어졌고, 이 부처에 했던 사업을 저 부처에서 또 하는 일이 많았다. 그것도 단기적인 사업이 대부분이라 실제 섬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한국섬진흥원을 처음 제안할 때 섬 정책을 컨트롤하고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곧 출범할 한국섬진흥원은 섬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할 권한만 갖고 있다. 반쪽짜리인 셈이다. 행정안전부 산하 조그마한 연구소 수준의 '진흥원'에서 해양수산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이 얽혀 있는 섬 정책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겠는가. 섬이 가진 특성을 공유하고 섬들을 하나로 묶어 정책 개발을 넘어 현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 즉 '청' 정도의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 산림청 정도의 수준을 제한하는 건가? 
"그렇다. 정부부처의 외청이라도 '섬진흥원'을 넘어 '섬청' 정도의 규모와 역할이 부여돼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섬에도 우리의 부모형제가 살고 있다. 섬이라고 특별한 괴물이 사는 게 아니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섬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강제윤 사진전 '섬의 무늬'>
- 2021년 7월 14 ~ 18일 (오전 10시 ~ 오후 8시)
- 도화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율곡로 24, 안국역 6번 출구)
- 온라인 전시 : 미나리하우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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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섬연구소장. ⓒ 권우성

 
#강제윤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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