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태학적 전환"에 대한 페루 국립대 교수의 의견

등록 2021.03.03 10:23수정 2021.03.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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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은 지난 2월 24일부터 25일까지 양일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지역의 생태 문명을 위한 경험과 실천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약 80명의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하여 비대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팬데믹 위기로 환경과 생태 문제에 대한 학술대회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그런데도 이 학술대회가 주목할 만 것은 라틴아메리카 특히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는 헌법에 동, 식물의 권리는 물론 산과 강 같은 무생물인 자연(Nature)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환경법을 가진 나라들이다. 이러한 자연의 권리에 대한 법제화에 사상적 기반을 형성한 학자들이 국내 학술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물리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들은 특별 강연 형식으로 이뤄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태학적 전환(Ecological Turn for Post-Corona Age)"이라는 특강에 주목하였다. 안데스 지역 국가 출신의 이들 학자들은 최재천 교수의 강연에 전반적으로 동의와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들 중, 페루 국립대(UNMSM) 철학과 교수 제논 데파스(Zenón Depaz) 교수는 최 교수의 예방백신, 행동백신론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면서도 최 교수가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를 인용하면서 "농업이 인류역사상 최악의 실수"라는 견해를 일부 받아들이는 것에는 분명히 이견을 표하였다. 
    

제논 데파스 페루 UNMSM 교수 필자가 페루 방무시 찍은 사진 ⓒ 박호진


안데스 지역 전통사상을 복원한다는 학자들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의 이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위도상 수직적으로 길게 배열된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경도상 수평적으로 배열된 유라시아 대륙보다 농업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였기 때문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위도상 남북축으로 배열된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위도에 따라 달라지는 온도 차이 때문에 농경발달이 동서축으로 배열된 유라시아 대륙보다 뒤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안데스 지역 고대문명을 유라시아 대륙에 버금가는 문명이자 현대 산업 문명을 대체할 문명으로 보려는 이들 지역 학자들에게 제레드 다이아몬드 이론은 글자 그대로 자신들의 논리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인 것이다. 필자가 보더라도 이들의 불만은 이해할만하다. 만약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한반도가 생태학적으로 문명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지형이라고 단언한다면 과연 우리는 저명학자가 말한 것이라 하여 그러려니 하겠는가?

학문적으로 볼 때 <총, 균, 쇠>는 의심할 여지 없는 명저이다. 그런데도 폴리네시아 지역의 위도에 따른 농업발전과 문명발전사례 연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고대문명을 사례연구 없이 위도상 협소한 지형을 가졌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문명으로 규정한 것은 가정 속에 이미 결론이 포함된 것이다. 즉 총, 균, 쇠로 라틴아메리카 고대문명이 멸망한 것이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폴리네시아 지역의 위도에 따른 농업 및 문명 발달의 사례로 라틴아메리카 고대문명 멸망의 필연성을 추정한 것이다.

필자는 이 대학자의 견해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라틴아메리카 지역 고대문명 사례연구를 안 했더라도 라틴아메리카 고대문명이 총, 균, 쇠로 멸망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데스 전통 사상을 복원하려는 학자들은 안데스 지역 고대문명이 총, 균, 쇠에 의해 필연적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할 문명이 아니라 현대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문명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중 제논 데파스 교수가 최재천 교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농업이 생물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에 반대 관점을 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안데스 지역에서는 한국이나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볼 수 있는 벼와 같은 단일 작물 재배방식과는 달리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농경 방식이 적용되고 있었음을 언급하려 한 것이다.

안데스 지역은 위도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고도에 의해서도 온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 작물을 방대한 지역에 단일하게 심는 영농방식은 불가능하다. 안데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단식 밭에는 기후와 온도에 따라 각각 다른 작물들을 심는다. 제논 데파스에 의하면 이렇게 안데스 지역에서 각기 다른 기후와 온도에 적응한 감자의 종류만도 수천 종에 이른다고 한다. 즉 안데스 지역 농경 방식은 일찌감치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농경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제논 데파스의 주장을 옹호하거나, 제레드 다이아몬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논 데파스든, 최재천이든, 제레드 다이아몬드든 서로 간의 소통의 장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소속입니다.
#최재천 #생태 #안데스 #제레드 다이아몬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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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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