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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는 총을 들었고, 우린 휴대폰을 들었다"

[인터뷰] 유학생 에에띤·윤쉐진이 전하는 '2021년 미얀마 민중이 저항하는 방법'

등록 2021.02.25 07:18수정 2021.02.2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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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범대 한국어학과 박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에에띤(AYE AYE THIN)과 석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윤쉐진(Yunn Shwe Zin)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중 한 곳인 서울대 도서관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미얀마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현재 미얀마 사람들은 오후 8시가 넘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군부가 야간 통제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럴 땐 고전적인 방식으로 저항한다. 각자 집에서 악을 몰아낸다는 의미가 있는 냄비를 두드리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그날 하루 상황을 공유한다.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매일, 매 순간 싸운다. 결국 우리는 승리할 거다."

1988년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경험한 에에띤(AYE AYE THIN)이 목소리를 높였다. 1988년 8월 8일 미얀마 양곤에서 수만 명의 학생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8888시위'다. 당시 10대인 에에띤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반면, 1990년대 생인 윤쉐진(Yunn Shwe Zin)은 이번 시위가 처음이다. 그는 학창시절을 보낸 미얀마 양곤에서 경찰이 고무탄과 실탄 등을 발사하는 걸 페이스북 라이브로 지켜봤다. 이후 미얀마의 소식을 각국의 대통령 트위터에 전달하고 유튜브 중계를 퍼나르며,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사실 미얀마 민중들은 늘 저항해왔다. 1962년을 시작으로 1988년, 2021년까지. 군부는 세 번의 쿠테타를 일으켰고, 그때마다 미얀마 민중은 군부 세력을 몰아내려 목숨을 걸어왔다. 지난 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발하자 곧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시작됐다. 현재(24일 기준) 군부의 진압에 수백 명이 다쳤고, 최소 4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지 인권감시단체인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군부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약 569명이 구금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에에띤과 윤쉐진은 세대는 다르지만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같은 '민주화 세대'가 됐다. 서울대 사범대 한국어과에 재학 중인 이들은 8888 시위를 본딴 '22222 시위(2021년 2월 22일)'를 서울에서 함께했다. 멀리서나마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미얀마 국민의 평화 시위를 지지하는 마음을 모았다.

2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이들은 "한국도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중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획득하지 않았느냐"라며 "현재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 불복종 운동(CDM, Civil Disobedience Movement)에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호소했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난 군부의 통치를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 미얀마도 한국처럼"
 

서울대 사범대 한국어학과 박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에에띤(AYE AYE THIN)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중 한 곳인 서울대 도서관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미얀마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 미얀마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22222 시위'에 참여했다. 같은 날,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에에띤 : 나는 8888 시위도 거쳤고, 군부의 탄압도 겪을 만큼 겪었다. 겪었기에 안다. 절대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얀마에서 한국어 부교수로 있었기에 교육자로서의 책임감도 있다. 군부 시절 우리의 교육은 형편없었다. 군부는 정보를 차단하고 주입식 교육을 반복하며, 교육을 하찮게 여겼다. 그때로 돌아가면 미얀마에 미래는 없다. 내 몸은 한국에 있지만,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함께 한다고 알리고 싶어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쉐진 : 매일 친구들과 페이스북으로 미얀마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사실 나는 8888 시위를 거치지 않아 당시의 상황을 잘은 모른다. 하지만 내 윗세대들이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건 곧 내 일이고, 내가 살아갈 곳의 이야기다. 나는 군부의 통치를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

- 미얀마 현지 상황은 어떤가.

에에띤 : 군부는 시위 초부터 야간통행과 5인 이상 집합을 전격적으로 금지했다. 인터넷도 통제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거였다. 이를 어기면 유혈진압을 하겠다는 식으로 경고했다. 결국 총을 쏜다는 건데, 나의 미얀마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에에띤은 눈물을 흘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우리 모두 죽는 게 가장 무섭잖나. 미얀마 국민은 죽음보다 군부 통치가 더 무서웠던거다. 그래서 모두 22222 시위를 비롯해 매일 시위하고 있는 거다.
 

서울대 사범대 한국어학과 석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윤쉐진(Yunn Shwe Zin)이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중 한 곳인 서울대 도서관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미얀마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윤쉐진 :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대학생인 내 동생도 22222 시위에 참여하기 전에 엄마한테 절을 했다더라. 군부가 무력진압을 경고했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의 인사였다. 그리고 다른 미얀마의 젊은이들처럼 팔뚝에 혈액형과 전화번호를 적고 시위에 참여했다.

확연히 달라진 시위 방식... "너무 똑똑하지 않나"

- 과거 미얀마 민주화 시위와 비교하면 시위 방식이 달라졌다.

에에띤 : 확실히 그렇다.  8888 시위 때는 물도 마시지 않고 단식하며 싸웠다. 지금은 아니다. 군부 쿠테타 이후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지 말고 시위에 동참하자는 의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차가 고장났다며, 도로 위에 차를 세우고 저항하는 식이다. 그날 밤, 군부가 정지한 차를 견인해가니 이제 사람들은 1시간 동안 5km 속도로 운전하며, 교통상황을 지체시켰다. 너무 똑똑하지 않나? 또 군부가 아예 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하니 이제 사람들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평화시위인 셈이다. 시장에서 장 봐온 물건을 길에 떨어뜨리고 사람들이 모여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일상에 저항하는 거다.

윤쉐진 : 군부는 총을 들었고, 우리는 휴대폰을 들었다. 우리의 무기는 휴대폰이고 SNS다. 페이스북 라이브로 집회를 중계했고, 국제사회에 이를 알리기 위해 트위터를 활용했다. 20대인 우리 세대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어 유학생이 많은 편이다. 그게 이번 시위의 장점이 됐다. 미얀마 현지에서 영상이 나오면 유학중인 나라의 자막을 달아서 퍼트렸다. 그 사람들(군부)은 실탄으로 무장했고, 우리에게 남은 건 미디어뿐이다.

- 군부가 일부 대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섰는데.

윤쉐진 : 수백 명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서워하기보다 더 세게 싸우고 더 많이 모이고 있다. 우리가 이 투쟁에서 이겨야만 체포된 사람들도 풀려날 수 있다는 걸 아는 거다.

300만 원이던 유심칩이 5000원이 된 세상
 

서울대 사범대 한국어학과 박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에에띤(AYE AYE THIN)과 석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윤쉐진(Yunn Shwe Zin)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교정에서 미얀마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세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 권우성

 
- 에에띤은 군부통치와 민주정부를 모두 거쳤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 뭐였나.

에에띤 : 군부는 정보를 통제했다. 휴대폰도 비쌌지만, 당시 유심칩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1980년대에는 유심칩이 300만 원일 때가 있었다. 그러다 100만 원대로 떨어지고, 25만 원에서 2014년 경에는 5000원대로 가격이 낮아졌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그만큼 국민들이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우리가 겪어온 군부통치가 잘못됐고, 민주주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운 것이다.

윤쉐진 : 나는 1990년대생이라 에에띤 만큼 군부통치를 겪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차별이 있었다. 내가 중고등 학생일 때, 군인 부모를 둔 자녀들은 시험 전날 미리 시험지를 받아봤다. 머리가 좋다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모가 군인이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서울대 사범대 한국어학과 박사과정인 미얀마 유학생 에에띤(AYE AYE THIN)과 석사과정인 윤쉐진(Yunn Shwe Zin)이 서울대 학생회관앞에 설치된 5.18민주화운동 기념탑앞에서 미얀마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운동을 성공시킨 한국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권우성


"길어져도 상관 없다, 우린 끝까지 함께 할 것"

- 국제사회에서도 미얀마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윤쉐진 : 반가운 소식이지만 국제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압박해야 군부도 겁먹을 것이다. 내 친구 중에 미얀마 유엔사무소 CCTV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냐'고 쓰인 피켓을 들고 3~4시간 서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 전에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

- 이후에도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을 알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에이띤 : 미얀마가 불교 국가잖나. 일단 이번 주 유학생들과 함께 절에 다녀올 생각이다. 다들 다치지 않고, 살아 남아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 미얀마 상황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계속 집회와 기자회견도 할 예정이다. 사실 정부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도 있어 일부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다. 이른 시간내에 미얀마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길어진데도 상관없다. 우리도 끝까지 함께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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