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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방한, 과잉 의전도 칙사 대접도 없었다

한국정부가 왕이 떠받들었다? 보수진영의 비판 한번 따져봤더니

등록 2020.11.27 15:42수정 2020.11.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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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를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맞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미국 정권교체와 트럼프 대선 불복으로 인한 혼돈의 와중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일본과 한국을 연달아 순방했다. 한국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은 이 방문의 정치적 의의를 신속히 전달하기는커녕, 손님 접대가 과했다며 부차적인 데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보수 언론과 정당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왕이 부장에게 서한 및 꽃다발을 보낸 것,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접촉을 시도했다가 그만둔 것, 왕이 부장이 강경화 외교부장관과의 회담장에 지각한 것 등을 거론하면서 '과잉 의전이다', '칙사 대접을 했다', '사대주의 외교다'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엉뚱한 관심

27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中) 서열 25위 밖 왕이, 한국 오면 국가원수급'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6일 강경화 외교장관과 회담 시간에 24분 지각했다"면서 "회담 모두 발언에선 사과 한마디 없다가 오찬 때서야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고 말한 뒤 이렇게 비판했다.
 
"왕이의 공산당 서열은 25위권 밖이다. 정치국원도 못 되는 중앙위원이다. 그럼에도 방한 기간 대한민국 의전 서열 1·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전 여당 대표, 대통령 특보·측근 등을 줄줄이 만난다. 자가격리 중인 여당 대표는 '코로나 와중 방한에 큰 감동'이란 편지를 보냈다. 어느 장관은 면담에서 밀리기도 했다."
 
국민의힘도 비판하고 있다. 김기현 의원은 26일자 페이스북 글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강경화 장관과의 회담에 25분 지각한 것은 단순 해프닝이 아닙니다"라며 "친중 사대주의에 기반한 문 정부의 과도한 저자세 외교가 만든 학습 효과의 결과일 것입니다"라고 비판했다.

왕이 부장이 지각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외교적 결례다. 하지만 그는 지각에 대해 두 번 사과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오찬 때만 사과했다고 했지만,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회담 예정 시각 20분 전인 오전 9시 40분경에 사전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사전 통보 없이 지각했거나 혹은 지각해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면, 당연히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보도와 달리 실제로는 두 번 사과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중국 정부의 상위에 있으므로, 한국 외교부장관과 달리 중국 외교부장의 자국 내 서열은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왕이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가주석을 대표해 방한했으므로, 그의 공산당 서열이 한국 방문에 영향을 미칠 이유가 없다. 중국 밖의 해외 무대에서는 중국과 주석을 대표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고, 공산당 서열이 몇 위인가는 그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왕이 부장이 이낙연 대표에게 기대한 것은 편지와 꽃다발이 아니었다. 그는 이낙연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하지만 자가격리 중이라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낙연 대표가 편지와 꽃다발을 보낸 것이다. 자가격리 중인데도 만나러 나갔다면 과잉 의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섭섭해 하지 않도록 하고자 선물을 보낸 일을 과잉 의전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만남 요청을 거절할 때 편지나 꽃다발을 꼭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수도 있다. 이는 개인의 문제일 뿐, 국격의 문제는 아니다.

또 카운터파트가 아닌 한국 통일부장관이 면담을 요청한다고 해서 중국 외교부장이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정에 따라서는 만남을 거절할 수도 있다. 왕이 부장의 성격이 이낙연 대표 같았다면 이인영 장관에게 편지나 꽃다발을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왕이 부장이 그렇게 하느냐 마느냐 역시 개인적 특성의 문제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참작할 사항이 있다. 대한민국 영토에서 대한민국 통일부장관을 만나는 것에 대해 중국 외교부장들이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므로, 중국 외교부장들이 통일부장관과의 만남에 특히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잉 의전도, 칙사 대접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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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를 찾아 박병석 국회의장과 환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맹자는 <맹자> 이루(離婁) 편에서 "예(禮)가 아닌 예와 의(義)가 아닌 의를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다(非禮之禮,非義之義,大人弗為)"고 말했다. 예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가 아닌 비례지례(非禮之禮)를 대인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나라 유학자 정자(程子)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말했다. 과도한 공손함도 비례지례의 일종이라고 말한 것이다.

왕이 부장에 대한 대우와 관련해 과공(過恭)은 없었다. 과잉 의전이 있었다고 볼 여지는 거의 없다. 왕이의 외교적 결례는 있었지만, 그 자신이 두 번 사과했다.

칙사 대접 역시 없었다. 칙사 대접이 있었느냐 여부는 제후국 군주의 태도에 따라 좌우됐다. 황제국 칙사가 방문하면 제후국 군주는 도성 밖에까지 가서 마중하곤 했다. 이와 유사한 양상이 왕이 외교부장의 이번 방문에서 나타났다고 볼 여지는 전혀 없다.

중국 정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안미경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한국이 미·중 어느 한쪽에 크게 기우는 현상이 나타나기 어렵다. 어느 한쪽에 대한 사대주의가 부각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이 중국에 대해 사대주의 외교를 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중국 외교부장에 대한 예우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려면, 적어도 1999년에 탕자쉬안 외교부장이 방한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야 한다. 김대중 정권 때인 이 시기에 <한겨레>까지도 '특별 대접'이라고 평했을 정도의 상황이 있었다. 그해 12월 11일자 기사 '중국 외교부장 특별대접'은 탕자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환대를 이렇게 보도했다. 
 
"탕 부장은 홍순영 외교통상부장관과 한·중 외무장관회담 및 김대중 대통령 예방 등 공식 행사를 11일 오전까지 마친 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간편복 차림으로 온천과 도자기 등으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홍 장관은 탕 부장의 나들이에 동행하는데, 버스는 여행 중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도록 탁자를 사이에 두고 6명씩 마주앉도록 의자가 배치된 것을 사용한다. 이들은 이천에 도착해서는 광주요로 가서 도자기 굽는 현장을 견학한 뒤 미란다호텔에 묵는다."
 
양국 장관은 온천탕에서 알몸으로 대화를 나눌 계획까지도 세웠었다. 하지만 적절한 장소가 없어서 온천탕 회담은 포기했다고 위 신문은 보도했다. 좋게 보면 친절한 대접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상황은 중국에 대한 특별대접으로 비쳐질 요소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과잉의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당시의 한국 정부가 중국에 대해 사대주의 외교를 했을 리는 없다. 오히려 현실적인 계산으로 그런 예우를 해준 측면이 많았다. 위 신문은 한중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과시하는 한편, "북한 문제와 탈북자 문제 등 껄끄러운 현안도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그런 환대를 베푼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현안을 매끄럽게 푸는 한편, 중국을 지렛대로 남북관계에서 유리한 위상을 차지하고자 그런 대우를 베푼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과민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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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세종로 외교부를 방문한 왕이 중국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회담 전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왕이 부장의 이번 방문은 탕자쉬안 부장의 1999년 방문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국 측의 대우도 탕자쉬안 때와 현저히 달랐다. 그래서 과잉의전이니 칙사 대접이니 친중국 사대주의니 하며 비판을 가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반응은 과민반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자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를 말했다.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과민도 비례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을 대표하는 손님을 맞이한 상황에서, 너무 잘 대해주는 게 아니나며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비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역학구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이고 조 바이든도 자국의 국제적 위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중대 변화를 맞고 있다.

이런 속에서 미국 못지않게 불안을 느끼는 세력이 있다. 친미를 발판으로 기득권을 축적해온 세계 각지의 친미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중국을 비롯한 미국의 라이벌 국가들이 부각되는 것을 두렵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별 것 아닌 것을 보고도 '중국이 너무 강해진다'며 두려움을 갖곤 한다. 그들의 눈에는 중국인들이 어딜 가나 대단한 예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지나친 과민반응에서 나오는 착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과 운명을 함께하는 그들의 처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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