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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에 꽂은 꽃, 정류장에 방석... 이걸 왜 하냐고요?

[인터뷰]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이효열 게릴라 아티스트가 전하는 위로

등록 2020.11.30 14:52수정 2020.11.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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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직접 공수한 연탄에 꽃을 꽂아 길거리의 누군가를 향해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 7년째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콜라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이효열(33) 게릴라 아티스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뜨거운 여름에는 그늘막 쉼터에 양산을, 추운 겨울에는 버스정류장에 방석을 설치하고 있다. 각박해진 세상 속,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을 묻기 위해 11월 17일,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뜨거울 때 꽃이 핀다' 갤러리를 찾았다.

"제가 서서 울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 갤러리 한 편에서 환하게 피어 있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 이지민

 
2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을 무렵,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방황하던 그는 집 앞에 하얗게 타버린 채 쌓여 있는 연탄을 보면서 문득 자신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얀 연탄재가 쌓인 것을 보면서 저 연탄재도 저렇게 자기를 희생해서 온전히 뜨겁게 생을 마감하는데, 나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고민을 많이 하고 창피했어요."

그때 스친 문장이 바로 '뜨거울 때 꽃이 핀다'였다. 이 작가는 시장에서 산 국화 한 송이를 연탄에 꽂은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예상 외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강남역 버스 정류장부터 시작해서 서울시립미술관 언덕을 포함한 다양한 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 결과, 서울시립미술관이 포스팅을 해주면서 작품은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무명 작가였던 이효열 설치 미술가의 첫 데뷔였다.

그렇게 탄생한 '뜨거울 때 꽃이 핀다'를 본 사람들은 '위로', '공감', '힐링'이라는 단어로 그의 작품을 설명한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이 작가는 "열등감, 자격지심에 갇혔던 자신이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에 만든 작품"이라고 대답했다.

타인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는 사실 그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었다. 고군분투하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작은 꽃은 길거리의 누군가를 울리기 충분해 보였다.

이 작가는 감정노동자인 톨게이트 징수원을 위한 '장미로 가는 길', 과중한 업무로 순직한 집배원을 위한 '국화꽃 한 송이 부칩니다' 등 사회 외곽 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향한 다수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 속 짙게 배어 있는 따스한 사회적 메시지에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유를 묻자 그는 단순하지만 많은 고심이 담긴 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다 행복할 수는 없잖아요. 왜냐하면 내가 행복한 만큼 어쩔 수 없이 아픈 사람이 생겨요. 내가 경쟁에서 이기면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은 실패해요. 그러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이상이에요."

이런 생각엔 그가 판자촌에서 살았던 시절도 영향을 미쳤다.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이 작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원망스럽기만 했던 가난은 그가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연탄을 때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뜨거울 때 꽃이 핀다'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 작가에게 그의 어머니는 '가난했던 것에 감사하라'는 담담한 위로를 전했다고 한다.

"사람은 27세에 죽어서, 80세에 관에 갇힌다"
 

이효열 게릴라 아티스트 '뜨거울 때 꽃이 핀다' 갤러리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효열 작가 ⓒ 이지민

 
이 작가가 처음부터 게릴라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인, 축구선수, 배우 등 수많은 꿈이 그를 거쳐 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광고천재 이제석> 책을 읽은 그는 순식간에 광고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해 이제석에게 메일을 보냈고, 1년 후 기적처럼 이제석의 광고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기 이름을 걸고 예술을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설치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사람들은 다 내 이름으로 못 살고 죽거든요.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은 27살에 죽어서, 80세에 관에 갇힌다. 무슨 말이냐면 젊을 때 젊은 것을 모르고 27살에 정신이 죽은 거예요. 남 의식하면서 너 스스로 못 산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거죠."

이 작가는 자신이 끊임없는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을 1순위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이름으로 사는 법을 온전히 터득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슬픔이 담긴 작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작가는 그런 가여운 자신의 모습마저 사랑한다고 말한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쳤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본인에게 투자한 결과였다.

"자존감을 하나 얻는다, 나를 사랑한다는 단어가 함부로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아니에요. 강연 듣고, 친구들과 술을 먹으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나와 정말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나를 사랑하려면 많이 노력하셔야 해요."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최대한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다. 마녀사냥이 만연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념이나 이권을 떠나 어떤 사실을 봤을 때 그 사실만을 정확하게 인지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이 작가는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할 말은 하고,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도 소신 있게 맞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겠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

이 작가는 남녀노소 어떤 이가 지나가다 보더라도 누구를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원대한 꿈이라고 말했다. 기존 예술의 틀을 깨고 당시 비주류였던 '게릴라'라는 예술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갓난아기들도 봤으면 좋겠고, 80세 노인들도 봤으면 좋겠고, 남녀노소 다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전부 다 즐길 수 있고, 슬리퍼 신고 추리닝 입고 머리 안 감고 나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가 작품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이 작가는 누군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핵심 키워드로 뽑았다. 그는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생각한다고 할 때 기쁘다고 설명했다. 마치 우리가 문득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툭 한마디 던졌을 때 울컥한 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가 하는 직업이 그건 것 같아요. 그 사람을 모르지만 내 작품을 통해 울컥하고, 툭 던지는 한 마디에 위로를 받는. 누군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도 이 작가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작품과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대중들에게 꾸준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추운 새벽, 집을 나설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한다며 웃으면서 고백하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인 그는 부단히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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