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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4.45kg, 자연에게 지는 빚

환경에 관한 강의를 듣고, 책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다

등록 2020.11.13 08:14수정 2020.11.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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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교육에 참여하였다. 따로 교육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알쏭달쏭한 것이 쓰레기 처리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여러 지자체에서도 상당히 공을 들여 홍보하고 있다. 가끔 쓰레기 대란이라는 뉴스가 보도되면 관련된 참혹한 영상이 줄줄이 이어지며 심각성을 이야기 하는 것도 그 중요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 가끔 나오는 심각한 일반 쓰레기의 문제부터 분리수거할 때 분류 과정에서 당면하는 문제,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가 자원으로 활용되는 현장까지 강의에서는 두루 보여주었다. 분리수거의 기본은 자연에서 온 것을 원래 왔던 곳으로 잘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다.

충격적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 양의 통계를 내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말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연간 쓰레기나 우리나라 평균 쓰레기 배출량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1일 쓰레기 배출량은 3,657.7톤, 그중 내가 버리는 쓰레기 배출량 4.45kg이고(부천, 2020년 10월 기준) 이중 음식쓰레기가 30% 정도라고 했다. 이 수치는 어떤 통계보다 와 닿았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음엔 매일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 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비대면이지만 대화가 오갔다.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듬고 씻고 껍질을 벗기며 많은 양념을 넣고 무치고 볶고 지지고 하는 음식들. 그것도 접시에 보기 좋을 만큼 풍성하게, 부족하지 않도록 늘 넉넉하게 만드는 우리의 음식문화가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도록 만드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양을 어떻게 줄일까에 대해서는 더 얘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덜 사는 것, 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모든 기준은 개인의 몫이었다. 쓰레기, 환경, 플라스틱, 바다생물의 위험, 탄소, 기후변화... 이야기는 이어져 갔지만 결국 쓰레기 문제의 결론은 최소한 분리배출이라도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뭔가 해결책이 아닌, 개운하지 않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강의의 본래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고, 적어도 내게는 이번의 시민교육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되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혼자서는 점점 심각해졌다. 쓰레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는 삶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에 날마다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 많이 나오는 기후변화나 환경의 위협 같은 것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그동안 무분별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자연의 응답은 아닐까 생각했다. 늘 참고 사는 순한 사람이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내는 화 또는 폭발하는 에너지 같은.
 

플라스틱 없이 몇 년째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쓴 책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산드라 크라우트 바슐 지음) ⓒ 양철북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고민했다. 거창하지 않은 소박한 방법이라도 궁금했고 그것에 접근하고 싶었다. 마침 환경에 관한 것만을 모아놓은 도서관이 근처에 있었다. 그곳 서가에서 플라스틱 없이 몇 년째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쓴 책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산드라 크라우트 바슐 지음)를 만났다.

쓰레기에 관한 시민교육을 들으며 방법을 찾고 싶었던 내게는 딱 와 닿는 책이었지만, 몇 장 읽자마자 저자의 도전을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기로 결심하며 처음 고민하는 것들, 매일 쓰는 칫솔과 치약 용기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 비닐 포장이 안 되어 있는 화장실용 휴지는 살 수조차 없다는 것.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할 유리 용기의 금속 뚜껑에도 플라스틱 재질의 패킹이 붙어 있다는 것들을 나 역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커피콩의 비닐 코팅된 포장은 물론이고 테이크 아웃의 일회용 용기들은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식용유나 세제의 포장 용기는 또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무게로 파는 고형비누를 사면 상자에 담아 몇 겹의 포장을 거쳐 비싸게 파는 것을 백화점에서 본 기억이 있다. 매일 남은 음식을 덮어 두는 랩이나 유리로 된 밀폐용기의 플라스틱 뚜껑이 없으면? 대체제를 생각할 수도 없는 플라스틱 세상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은 플라스틱에 단단히 둘러싸여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런 무모에 가까운 시도를 한 계기는 베르너 보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행성>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의 충격으로 엄청난 실험을 결심하고 어렵게 실행하고 있지만 저자는 말했다. "환경을 지키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하며,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면 아무리 좋아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불과 60여 년 전쯤의 상황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가는 아이는 양은 주전자를 들고 간다. 장에서 파는 생선이나 고기는 종이로 싸고 짚을 엮은 끈으로 묶어서 준다. 사기그릇에 사기 뚜껑을 덮어 밥을 아랫목에 묻어 온기를 지킨다. 그때의 드라마 속 세상처럼 장을 보고 생활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습관을 조금이라도 바꾸기로 결심한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뜻밖의 힘'을 일깨워 낼 수 있고 우리가 창의성과 미래의 전망에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오늘 하루 내가 산 쓰레기를 따져 보았다. 만두 1인분을 포장한 용기, 비닐봉지, 나무젓가락의 비닐, 간장과 단무지를 싸고 있는 비닐과 그 모두를 담은 비닐봉지까지. 만두 1인분을 샀을 뿐인데 덤으로 많은 쓰레기를 받았다. 외에도 두부를 사고 플라스틱 용기를, 콩나물을 사며 비닐봉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코팅된 종이 박스에 비닐로 테이핑 된 귤도 샀다.
 
모든 새로운 시도, 모든 새로운 시작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법이며, 남들의 깔보는 듯한 비웃음이나 "이해할 수 없어!"라며 머리를 가로젓는 반응에 대해 개의치 않겠다는 자세도 포함되어 있다. 내 생각이 애당초부터 그렇게 당당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당초 내 의욕을 부추긴 것은 "행동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격언이었다.

남태평양의 쓰레기 섬에서 우리나라의 마요네즈 통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섬은 점점 더 그 숫자가 많아지고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열성적인 생태주의자는 아니고 피곤하게 살 용기도 없지만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강의 말미에 몇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우선, '내 손 안의 분리배출' 앱 깔기. 적어도 분리배출은 정확하게 잘해보자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손수건 사용하기. 지금은 손을 자주 씻어야 하는 코로나 시대이니 티슈를 사용한다면 그건 탄소발자국을 수도 없이 찍는 것이 되니까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다. 다음으로 스테인리스 재질의 텀블러 사용하기, 음식 주문할 때 안 먹을 것은 미리 말하기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9년 1월 1일부터 마트에서는 비닐봉지 사용이 일부 금지되고 있다. 처음엔 모두 불편해했지만 지금은 적응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확대한다면 어떨까.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지고 동식물들은 이미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데, 사람들만 너무 느긋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참에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도 조금 더 강화하면 어떨까. 쓰레기에 대해서 소비자와 지자체와 정부, 그리고 생산자의 업그레이드된 분담 체계를 만들기 위한 깊은 논의도 하루빨리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양철북, 2016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 바슐 #환경 시민교육 #플라스틱 행성 #플라스틱 섬(GP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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