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너머의 '김지영 씨'들에게

등록 2020.10.26 10:23수정 2020.10.2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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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베스트셀러'. 소설 <82년생 김지영>(2016)에 붙는 또 하나의 수식어다.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페미니즘 대중화를 대표하는 이 여성 서사는 지금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여성 고등교육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결혼, 임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의 이야기는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이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가와 지역에서 회자되는 중이다. 대졸, 기혼, 유자녀인 30대 여성 '김지영 씨'의 삶은 각 나라의 언어로 무리 없이 번역된다.  

여러 논자에 의해 지적됐지만, 책 표지에서 '김지영 씨'의 구체적인 이목구비를 가리거나 지운 얼굴은 표준화된 여성의 삶을 나타낸다. 회색 바탕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한국 '김지영 씨'의 뒷모습은 총천연색으로 클로즈업된 텅 빈 얼굴로 글로벌하게 갱신되고 있다.

특히 출간하자마자 중쇄를 찍고, 현재 10만 부 넘게 팔린 일본의 경우 <82년생 김지영>을 매개로 'K-문학'의 부흥마저 재차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김지영 씨'들의 얼굴은 과연 다 똑같을까. 

소설과 영화의 온도 차 혹은 공감대

초국적 지평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김지영 씨'의 생애는 전략적으로 여성의 삶이 카테고리화된 것으로 우선 주목된다. 이는 소설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더 많은 공감을 위해 차이가 조정되는 방식과 연동된다. 소설에서는 독박육아로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하는 한 여성의 의식이 비워지면서 여러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반면 대중적인 장르로서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은 결국 주인공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해피엔딩을 마련하고 있다. 영화 속 '김지영 씨'는 '여자아이는 자라서'라는 제목의 글을 문학 잡지에 게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의 이 엔딩은 소설의 첫 부분과 이어지는데, 이는 김지영 씨가 바로 작가라고 동일시하게 한다. 글 쓰는 김지영 씨라는 확장된 설정은 동시대 한국의 상황과 맥락에 밀착된 결과이다. 또한 영화에서 '김지영 씨'는 '맘충'이라는 조롱에 힘껏 반격한다. 이 장면은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된 직접적인 배경으로서 참지 않고 대거리하는 여성들의 등장 및 진전과도 겹쳐진다. 2016년 출간한 소설과 2019년 상영한 영화의 온도는 사뭇 달라졌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상담 시작과 동시에 이미 치료는 성공적이라고 '김지영 씨'를 따뜻하게 격려하던 여성 의사는 원래 소설에서는 다소 건조하게 김지영 씨의 사정을 전하던 남성이었다. 숨겨진 화자로서 이 남성 의사는 결국 페이닥터가 된 아내를 포함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성들의 심연에 결코 닿지 못한다.

이 차이를 문제적으로 제시하는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 김지영 씨는 엄마와 또 그 엄마의 엄마 세대와 시대를 넘어 바로 연결된다. 할머니의 목소리로 지영의 엄마 '미숙'을 위로하는 장면은 멜로드라마로서 영화의 백미이다.

분명 핵가족을 위해 고학력임에도 경력단절이 된 '지영'과 교사의 꿈을 지녔음에도 대가족을 위해 각종 노동을 해야 했던 '미숙'의 삶은 같지 않다. 그럼에도 두 모녀가 얼싸안고 울 때, 희생하는 여성들의 삶은 익숙하게 반복된다.

각각이 달리 체현하는 역사적 순간들, 즉 여성의 값싼 노동을 취하던 군사독재도, IMF 이후 여성혐오가 더해지는 신자유주의도 잠시 잊혀진다. 이때 '정대현 씨'마저 부주의한 남편일 뿐, 너도 힘들었겠다고 위로받는다. 여기에서 세대 간 차이, 혹은 성별 사이 위계는 희미해진다. 
 

세계 17개국으로 번역 출간된 <82년생 김지영> ⓒ 민음사

 
김지영, 사토유미코, 진쯔잉…같고도 다른 이름들

물론 소설과 영화, 매체별 목적하는 의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둘 다 성공한 드문 경우로 꼽혀야 한다. 그럼에도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지적하는 것은 실제 현실 속 다양한 '김지영 씨'의 서사들이 하나의 얼굴로만 복제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성 서사로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왕성한 번역은 'K-페미니즘'의 융성으로 지목되기보다, 더 많은 '김지영 씨'들과의 조우로 여겨져야 한다. 생각해보면 '82년생 김지영'은 정확히 광장을 메웠던 '촛불소녀'와 '배운녀자' 등과 동시대를 살아왔다. 표본화된 서사에서 이 정치적 격동은 생략되어 있지만, 쉬이 번역될 수 없는 이 여성들의 역사로 인해서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내셔널 베스트셀러'에서 새삼 강조해야 할 것은 원본의 권위가 아니라 '김지영 씨'들의 각기 다른 얼굴, 그 여백에 새겨진 차이인지도 모른다. 1982년의 일본에서 가장 흔하게 붙여진 이름인 사토유미코佐藤由美子들은 1982년의 한국에서  가장 많이 태어난 김지영들과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라고 해도 중국에서 진쯔잉金智英으로 불릴 수 있는 이들과도 같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국경 너머의 '김지영 씨'들에게 먼저 안부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류진희 님은 성균관대학교 강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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