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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에서 만난 걸인이 내 인생을 바꿨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3부 소년의 꿈 (12)

등록 2020.11.09 14:28수정 2020.11.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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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 담 위에 핀 배꽃으로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 박도

    
아버지의 수감
 
아버지는 5.16 군사쿠데타 후 처음에는 고향 선배이자 민족주의자인 박상희 선생의 막내 동생이 쿠데타 주동이라 해 잔뜩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곧 혁신계 정치인과 구 정치인들이 연행되자 그제부터는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자지러졌다.
 
"미국의 기막힌 용병술이다. 이이제이의..."

아버지는 당시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뱉고는 더 이상 말없이 바깥출입도 삼간 채 하루종일 방안에서 신문과 라디오 뉴스만 보고 들으면서 지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새벽 사복경찰들에게 연행됐다. 그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어머니가 막냇동생을 업고 돌아왔다.
 
하루 사이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그새 까맣게 그을렸다. 어머니는 자동차를 타면 멀미를 했다. 그래서 온종일 아버지를 찾으러 막내를 업고 뙤약볕에 종로서로 서대문교도소로 걸어 다녔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 짐작됐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찬물 한 바가지를 들이킨 뒤 그대로 쓰러졌다. 울보 막내도 지쳤는지 저녁밥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 두어 시간 뒤쯤 어머니가 기운을 차렸는지 눈을 떴다.
 
"종로경찰서에 갔더니 오늘 오후에... 서대문형무소로... 넘어갔다고 하더라. 물어물어 거기까지 걸어갔으나... 오늘은 면회가 안 된다기에 그냥 왔다."
 
어머니는 거기까지 더듬거리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잠든 막내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나는 더 이상 말없이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다.
      

고교시절의 기자 ⓒ 박도

 
휴학계를 쓰다
 
이튿날 새벽 평소대로 일어난 뒤 나는 학교 갈 준비 대신에 노트 한 장을 찢어서 거기다가 휴학계를 썼다. 가정 형편상 1년간 휴학하겠다고 쓰고는 이름 옆에 도장을 찍어 봉투에 넣었다.
 
마침 주인집 아들이 한 울타리에 있는 중동중학생이기에 그 편에 담임 선생님에게 보냈다. 어머니는 나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굳이 말리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니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방 안에서만 지내기도 답답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삼청공원 산책로를 몇 바퀴 돌다가 내려오곤 했다.
 
낯선 서울에서 아무 희망이 없는 암울한 나날을 보내면서, 매일같이 엉뚱한 생각만 했다. '이대로 혼자 죽어버릴까? 아니면 가출해버릴까?' '죽는다면 어떻게 죽어야 고통도 없고 흔적도 없이 죽을까?'
   

서울 종로 탑골공원, 당시에는 우국지사. 잡상인, 실업자들로 메웠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개방치 않아 한산하다. ⓒ 박도

  
탑골공원에서 만난 걸인
 
학교를 그만두자 그길로 인생이 끝난 줄만 알았다. 막냇동생은 아직 철부지라 매 끼니 때마다 주인집 밥상을 건너다보고 우리 집 밥은 찬밥(쌀밥)이 아니라고, 반찬이 없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막내의 울음에 쩔쩔매는 어머니를 쳐다보기가 괴롭고 갑갑해서 나는 낯선 서울 시내를 마구 쏘다녔다.
 
그때 우리 집은 <경향신문>을 구독했다. 석간 배달시간이면 매일 같이 신문배달원은 밀린 신문대금을 독촉했다. 그는 당시 덕수상고생으로 여러 날 대하다 보니 그만 그와 친해져 버렸다.
 
어느 날, 그는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나의 사정을 어림한 듯 내게 신문배달을 권하며 자기 대신 가회동 구역을 맡아달라고 말했다.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며칠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날도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발길이 멈춘 곳은 종로 탑골공원이었다.
 
그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실업자, 지게꾼, 잡상인, 날품팔이 노동자, 약장사, 관상쟁이, 시각장애인 점쟁이, 팔각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우국지사 등 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들끓었다.
 
나는 여러 인간상을 대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후문 쪽에서 한 거지를 만났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 위까지 완전히 끊겨 있었다. 그 부분은 고무판으로 상처 부위를 싸맸지만 뾰족이 내민 살갗에는 피고름이 엉겨 있었다. 그 상처에는 쉬파리가 붙어 피고름을 핥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상처에 전혀 상관도 않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손을 내밀며 한두 푼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의 몰골은 시꺼멓게 땟국이 낀 '아! 사람이 저럴 수도 있을까' 싶도록 처참했다. 그 거지를 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멎은 충격과 함께 온몸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그는 예순살은 족히 넘은 늙은이였다. 이미 인생의 막다른 황혼 길에서 무슨 미련이 있어서 두 손을 다리 삼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삶의 애착에 젖어 구걸하는가. 더 이상 살아봐야 앞으로 무슨 영화가 있다고, 구차한 목숨을 잇겠다고 두 발 대신 손으로 발을 삼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걸식을 하는가! 그 순간 이런 생각들이 퍼뜩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뭐냐?'
'16세의 사지가 멀쩡한 녀석이 학교를 못 다니게 됐다고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하며, 인생이 괴롭다고 죽음을 생각하는 게 얼마나 못나고 비겁한 일인가.'
'그래 지금 내가 죽는다고 치자. 그러나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내일 아침 해는 그대로 동쪽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부모만 가슴에 못이 박힌 채 두고두고 무능한 자신을, 비명에 간 자식을 원망할 테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죽는다고 해서이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해는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며, 나만 몹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억울해서 도저히 죽을 수 없었다.
 
'그래, 저 사람도 살겠다고, 하늘이 준 목숨을 버릴 수 없어 저렇게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데, 나는 그보다 낫지 않는가?'
 
그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그 거지는 내겐 생명의 은인이었다. 
 

천도교 '수운회관' 그 바로 옆에 경향신문 낙원동보급소가 있었다. ⓒ 박도

  
<경향신문> 배달원이 되다
 
나는 이튿날 덕수상고생 이정수군을 따라 <경향신문> 낙원동보급소를 찾았다. 그 보급소는 낙원동 천도교본부 수운회관 옆에 있었다.
 
"소장님, 제가 말하던 중동 학생입니다."
 
늙수그레한 소장은 내 몰골을 훑으면서 물었다.
 
"아침저녁 배달하려면 힘들 텐데, 배겨내겠어?"
"힘껏 해보겠습니다."
"우리 보급소에서는 처음 배달하는 사람한테는 보증금이 있어야 하는데..."
"얼맙니까?"

"오천 환."
"저한테는 그런 큰돈은 없습니다."
"매일 신문도 맡기고 수금도 해야 하기에..."

 
그 말에 시무룩이 그냥 돌아서려는데 소장이 불렀다.
 
"그럼 담임 선생님 신원보증은 받아올 수 있나?"
"안 됩니다. 지금은 휴학 중입니다."

 
그러자 나보다 이정수군이 더 다급한 듯 끼어들었다.
 
"소장님, 집안 형편이 매우 딱한 모양입니다. 첫달 배달료를 보증금으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소장은 그 말에 난감해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렇게 하겠나?"
"예."

  

60년 전 경향신문 낙원동 보급소 자리, 지금은 '해바라기' 갤러리로 변해 있었다. ⓒ 박도

 
이튿날 아침부터 이정수 학생을 따라다녔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물려주하고자 분필을 꺼내 들고서는 독자의 대문 구석에 배달 순서대로 K1, K2 등의 기호를 쓰곤 석간배달부턴 내가 그 암호를 찾아 넣게 했다. 
 
내가 사흘 만에 독자 집을 다 익히자 이정수군으로부터 신문배달을 완전히 물려받았다. 그 무렵에는 신문은 하루 두 번씩 발간됐는데, 일요일 오후에만 한 번 쉬었다.

조간 배달은 늦어도 새벽 4시 30분까지, 석간 배달은 오후 4시까지 보급소로 가서 기다리다가 본사 신문수송차에서 신문을 받아 내린 뒤 소장이 세어준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배달원들은 구역으로 달음질쳤다.
 
새벽길은 조용하고 상큼했다. 통금이 갓 풀린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신문배달원이나 우유배달원, 두부장수만이 지날 뿐이었다.

도시는 미처 새벽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는 거리에 차도 드물어 나는 도시의 주인이 된 기분으로, 종로 북촌의 골목길을 꼬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뛰어다녔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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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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