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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배 채운 시절, 서랍에 '빵' 넣어준 친구를 찾습니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3부 소년의 꿈 (11)

등록 2020.11.06 10:19수정 2020.11.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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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쿠데타 주동자 박정희 소장(가운데) ⓒ 자료사진

 
5·16 쿠데타
 
고교 1학년 때인 1961년 5월 16일 새벽, 아버지가 켜놓은 라디오 소리에 잠이 깼다. KBS 라디오에서는 예삿날과 달리 정규방송 대신 행진곡과 함께 박종세 아나운서의 음성이 떨리면서 흘러나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새벽 정적을 깨뜨렸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혁명공약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정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의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이른 새벽부터 혁명공약 방송은 계속하여 반복 방송됐다. 라디오에서 귀를 떼지 않던 아버지 표정은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그 무렵 아버지는 민주당사를 출입하면서 재기를 노리던 중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시국에 민감했다.
  

5.16 당시 육사생도 쿠데타지지 시가행진 ⓒ 자료사진

 
살벌한 공포 분위기
 
이 변란은 혁명이 아니라 군사반란이요, 쿠데타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때 나는 '혁명' '군사반란' '쿠데타'란 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들고 등교했다. 안국동 네거리를 지나는데 소총에 대검을 꽂은 군인들이 20~30미터 간격으로 대로변에 서 있었다.
 
어딘가 살벌한 공포 분위기였다. 그 며칠 후 아버지는 쿠데타의 주동자는 군사혁명위원회 장도영 의장이 아니고, 사실상 실권자는 부의장인 박정희 소장이라고 귀띔했다.

바로 그분은 구미역 뒤 각산에 사는 신문사네 시동생이라고 하여 깜짝 놀랐다. 신문사네라고 하면, 고향 어른들이 늘 귀엣말하던, 우리 집 이웃에 살았던 박상희 선생의 부인을 말함이 아닌가.
 
군사혁명위원회 부의장 박정희 소장은 야전 점퍼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시청 앞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쿠데타의 사실상 실권자로 당시 시민들은 작달막한 체구에 깡마르고, 선글라스로 얼굴 표정을 가린, 그 외모에서부터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고 한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의 전권을 장악하고,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포고령을 마구 쏟아냈다. 그들은 구악을 일소한다며 구정치인을 연금시키고, 깡패들을 잡아들였다. 야간 통행금지도 저녁 8시부터로 연장하는 등, 날마다 일련의 강압 조치들이 줄줄이 쏟아냈다.
   
'눈물 젖은 빵'
 
그 무렵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혁명공약을 암송케 했다. 운동장 조회시간 전교생은 이 혁명공약을 낭독했고, 중간고사 사회 시험에도 출제돼 빈칸을 메우게 했다.
 
혁명공약에서 "절망과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데타 초기에는 시중의 미곡상에 쌀이 떨어지자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미처 동회에 주민등록이 안 된 우리 식구는 배급 양곡도 받을 수 없었다. 마침내 돈도, 쌀도 떨어져서 학교에 도시락을 싸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교실을 벗어나 수돗가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물로 배를 채웠다. 학급 친구들이 도시락을 다 먹었을 즈음, 다시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이듬해에도 그런 날이 계속되자 당시 내 뒷자리의 별명이 '두꺼비'란 한의섭(현, 재미동포) 친구는 아침 등교 때면 내 책상 서랍에 빵 봉지를 넣어두었다. 거기에는 단팥빵이나 소보로(곰보)빵이 두어 개 들어있었다.
 
"얘, 아무 소리하지 말고 먹어."

그 빵은 나에게 '눈물 젖은 빵'이었다. 그렇게 그 빵이 맛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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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뒷자리에 앉았던 한의섭 친구, 미국 LA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편지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죽기 전에 꼭 그를 만나고 싶다. 혹 이 친구의 거처를 아시는 분은 연결 부탁드립니다. ⓒ 박도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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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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