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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사람들이 짚신을 선물한 이유

[서평] 조선을 이끈 19가지 선물 '선물의 문화사'

등록 2020.08.07 10:22수정 2020.08.0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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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여전히 많던 지난 3월 말, kf94 마스크 한 장을 선물 받았다. 마스크 구입이 3월 초보다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마스크 한 장이 절실할 때였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 받은 일주일분 두 장'에서 한 장을 준 거였다. 그런 마스크를 선물해준 이의 마음이 뭉클한 감동으로 헤아려졌다.

그냥 소용되는 수많은 물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어떤 물건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이 될 때 그 물건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어떤 끈이 되기도 한다. 일로 잠깐 만났으니 스쳐 가는 무수한 사람에 불과했을 그가 마스크 한 장으로 오래 기억될 누군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선물의 문화사>(느낌이 있는 책 펴냄)는 우리 조상들에게 사랑받는 선물이었던 달력, 단오부채, 지팡이, 종이, 짚신, 안경, 청심환, 귤, 화장품 등 19가지 물건을 통해 헤아려 보는 옛사람들의 사람살이 그리고 그 물건을 들려준다.
 
누구나 짚신을 삼았던 것은 아니다. 근대 이전 양반들이나 아낙네들이 짚신을 삼는 일은 기본적으로 없었다. 평민층 이하로 몰락한 양반의 경우에는 자급자족 차원에서 짚신을 삼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체면 때문에 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딸깍발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짚신을 삼기는커녕 신고 다니는 것도 체면에 손상이 된다고 생각해, 비가 올 때나 신는 나막신 종류를 맑은 날에도 신고 다닌다고 해서 가난한 선비를 딸깍발이라고 불렀다. - 174쪽

이젠 사극 혹은 민속박물관 전시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짚신은 근대 이전에는 우리의 보편적이며 대표적인 신발이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 그렇다 보니 가난한 삶을 상징하기도 했는데, 딸깍발이들처럼 그래서 가까이 두는 것조차 창피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선물의 문화사> 책표지. ⓒ 느낌이 있는 책

 
그런데 누구에게나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큰돈 들이지 않고 쉽게 마련할 수 있다는 것. 이와 같은 짚신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근대 대표적 선승으로 꼽히는 경허선사의 양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수월스님과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이 그들.

근대, 우리나라 북쪽 지역이나 북간도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수월스님은 문자나 법회 같은 것으로가 아닌, 평생 부지런히 일하거나 자비를 실천하는 것으로 불법을 전파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훈훈한 일화는 많다고 한다.

많은 제자를 둔 큰스님이 되어서까지 일하는 것으로 수행했다는 수월스님의 장기는 짚신 삼는 것이었다. 스님은 평생 짚신을 삼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큰스님이 되어서까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큰스님이랍시고 시봉(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중생들을 시봉하며 산 것이다.

혹세무민하거나, 재산을 가로챘다든가, 파렴치한 짓을 했다던가 등, 안녕과 평안을 위해 필요할 종교 혹은 성직자가 오히려 사람들을 피폐하게 하는, 종교(인) 관련 좋지 못한 소식이 잊을 새도 없이 전해지곤 한다. 그러기에 수월스님 같은 분들의 종교적 삶은 접할 때마다 뭉클, 등골 서늘해지는 어떤 가르침으로 와 닿곤 한다.
 
가난한 삶의 상징이 짚신이지만 동시에 짚신을 활용해서 가난을 벗어난 사례도 있다. <토정비결>로 널리 알려진 토정 이지함(1517~1578)은 1570년 영남지역에 심한 기근이 들어 유랑하는 백성들이 늘어나자 그들을 불러모아서 큰 집을 지어 머물게 한 뒤 여러 가지 일을 가르쳐서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 주었다. 그나마 그 일조차 못 하는 사람들은 볏짚을 주어서 짚신을 삼도록 했다. 매일 감독하면서 짚신을 삼도록 했더니, 하루에 열 켤레를 만들 정도가 되었다. 그것을 내다 팔아 곡식을 사서 충분히 생활이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권 22)에 나오는 기록이다.

짚신을 통해 돈을 벌도록 하고 백성들의 민생고를 해결했다는 기록의 이면에는 짚신이 가지고 있는 가난의 이미지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상에서 하찮게 취급되는 물건을 가지고 한 사람 몫을 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 있다는 것, 이처럼 위대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178쪽

수월스님의 스승 경허선사는 말년에 갑산, 강계인근에서 박난주라는 훈장으로 살며 가르침을 실천했다고 한다. 책은 '낮은 자리에서 올리는 그리움과 존경'이란 제목으로 경허선사와 수월스님 사이에 있었던 짚신 몇 켤레 이야기를 시작으로 짚신에 얽힌 여러 일화를 들려준다.

자신의 학문을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 썼다는 토정 이지함의 이야기도 인상 깊다. 학문을 출세나 신분 유지 등을 위한 수단이 아닌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위한 거울로 삼아 실천하며 살았다는 박손경·박민경 형제의 우애, 그 사이에 오간 짚신 이야기도 뭉클하다.

짚신은 난산으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산모를 살리는 약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난산의 산모에게 신다 버린 누군가의 짚신의 코를 잘라 태운 재를 술에 타 먹이게 하는 민간처방이 있었다고. 그런데 <산림경제>에 기록될 정도로 꽤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짚신은 호박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거름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올봄 선물 받은 마스크 한 장이 보다 남다르게 여겨지는 것은 건강하게 코로나19를 비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다. 누군가 내게 바란 이와 같은 마음은 2020년을 사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마음일 것.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마스크이기도 하다. 선물은 이처럼 주고받는 사람들의 설렘이나 감동인 동시에 그 시대가 깊이 반영되기도 한다.

혹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찮게 여겨지던 짚신이, 더 이상 신지 못하게 된 낡은 짚신 한 짝이 오죽 고마웠으면 생사에 관여하는 약이 됐을까. 그리고 작물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거름이 됐을까? 나아가 짚신처럼 누군가를 살리거나, 설레게 하거나 감동하게 한 선물들은 어떤 것들일까? 그렇다면 그 물건들은 어떤 이유로 누군가의 선물이 되었을까?

책은 옛 기록들을 토대로 관련 다양한 일화, 즉 선물이 오간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것들을 들려주는 한편 그 물건의 역사와 쓰임, 관련 풍습, 당시 사람들의 선호도 등 다양한 알거리들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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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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