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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바다 민간인학살 70년,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어주소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마산 구산면 원전리 앞 바다 추모제 지내

등록 2020.06.13 14:25수정 2020.06.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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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6월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 “70주년 제13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지냈다. ⓒ 창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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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6월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 “70주년 제13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지냈다. ⓒ 창원유족회

 
"무덤도 없는 영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 주리라. 조국의 산천도 고발하고 푸른 별도 증언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유족)자들로 모인 '전국유족회'가 1960년대 내걸었던 표어다. 억울한 죽음이 있은 지 70년이 지난 가운데, 다시 유족들이 모여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회장 노치수)가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 '70주년 제13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지낸 것이다.

유족회는 이날 아침 마산돝섬유람선터미널에 모여 선박을 타고, 70년 전 민간인들이 수장되었던 그 바다에 나가 추모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1부 추모제례에 이어 2부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추모제례는 정기정 마산민예총 춤위원장이 초혼무를 추었고, 노치수 회장 등이 제관을 맡아 진행되었다.

제단에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창원지역 민간인 학살희생자 신위'라는 위패가 놓였고, 펼침막에는 '총 484명'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창원유족회는 축문을 통해 "그토록 애타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님들을 연단의 위패로 만나는 것이 올해로 70년이 되었습니다"며 "이곳은 님들이 캄캄한 밤 오랏줄에 묶여 끌려와 공포에 떨며 피눈물로 생의 마지막 절규를 한 곳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아직도 그때의 애절하고 처절한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오늘 우리 유족일동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깊은 바다 속에서, 어느 골짜기 어느 하늘 아래에서 떠돌고 계시는 영령들을 위하여 이곳 괭이바다 선상에서 무릎 꿇고 엎드려 맑은 술 올리며 추모제를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유족들은 "원통하고 애통하게 죽음을 당하신 영령들이시여! 세월은 강물처럼 무심히 흐르고 흘러 70년이 흘러갔습니다"며 "후손들은 님들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완전한 진실규명과 해원을 다하지 못하고 이렇게 조촐하게 합동추모제를 올리는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다.

이들은 "형제자매아들딸손자손녀들이 두 손 모아 엎드려 축원 드립니다.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 제 생을 다 살지 못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님들께서 부디 평화로운 저승에서 안식하시길 빌고 또 빕니다. 이제 모든 원한을 내려놓고 편히 영면하시옵소서"라고 빌었다.

추모식에서 노치수 회장은 "그 전쟁을 이용한 이승만 정부가 많은 국민들을 아무런 죄목과 재판절차도 없이 국군이나 경찰 등을 앞세워 무고한 국민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산골이나 계곡 또는 바다에 수장 학살하여 죽임을 당하게 한 지도 어느덧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라고 했다.

노 회장은 "이곳 바다는 밤이면 바람소리와 함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괭이바다라는 곳이며 1950년 전쟁이 나자 영장도 없이 마산형무소에 예비 구금시켰든 1681명 중 700명이 넘는 우리 부모형제들을 7~8월 사이 네 차례에 걸쳐 미군함정에 굴비처럼 엮어 산천초목이 잠든 야밤에 학살 수장시켰던 곳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 회장은 "죽음을 당한 자들 중에는 일제시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도, 미군정반대, 단독정부반대 또는 농지개혁을 외치던 농민과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 심지어 어린 고등학생까지 무차별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슬프고 통탄스런 이야기를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어 "그로써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물러가고 난 후 1960년대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일어났던 유족회간부들을 1961년 5.16 박정희군사쿠데타로 우리 유족들은 또 한 번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어려운 시련을 잘 이겨내고 헤쳐 오다보니, 지난 5월 20일에는 '제2기 진화위법'이 통과돼 진실규명의 길이 다시 열리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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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6월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 “70주년 제13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지냈다. 사진은 노치수 회장. ⓒ 창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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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6월 13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 “70주년 제13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지냈다. ⓒ 창원유족회

 
허성무 창원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참혹했던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일부 이루어지고, 위령제와 추모식이 열리고는 있지만 유족들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기에는 아직까지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보냈다.

허 시장은 "과거의 불행하고 아픈 역사를 용서와 화해로 극복하고,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이찬호 창원시의회 의장은 "고인과 유족 마지막 한 사람까지 완전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계속 있다면 언젠가는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보내왔다.

정대호 시인은 "학살의 현장 괭이바다"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통해 "… 여기 괭이바다에서 수장당한 넋들이여/당신들은 그 시대 우리 민족이 가야 하는 길을 알았습니다/죽음이 보여도 그 길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한 시대를 우직하게 살았습니다/아름다운 바다 아름다운 혼령들이여/당신들이 있어서 자랑스런 나라여/당신들이 있어서 자랑스런 민족이여/여기 아름다운 혼령들을 모셔/아름다운 명복을 빕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김형숙 유족이 낭송한 "아버지께 띄우는 편지"의 전문이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김형숙

기억조차 잔인한 6.25의 격동
총부리 앞에 어머니의 절규는
기약 없는 이별되어
독수공방 세월을 부등켜 안은
통한으로 기다립니다.
어머니의 나이 스물일곱에
끝내 아버지와의 사별을 하고
무남독녀 무거운 짐 남기시니
청춘과부 수절하라 매정도 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서러운 갈증 되어.
눈물로 달랜 고독의 여정입니다.
부부의 애정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사별의 아픔조차 숨죽이며
고달픈 시집살이 외로운 심신마저
가슴으로 녹이며 오늘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애절한 삶을 아버지는
아시나요!
북한의 부질없는 욕망에 눈이 멀어
대한민국 최악의 멸망을 꿈꾸는
6.25전쟁에 불순분자들이 생겨나고
그들은 저들이 살기위해 촉망 받던
아버지를 빨갱이로 몰아 억울하게
무참히 총살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청춘까지 빼앗긴 아버지의
분하고 원통한 한을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까요!
가족을 그리워하며 슬퍼 우실
아버지의 영혼은 지금 어디 메서
슬픈 연가 부르시나요!

70년이란 긴긴 세월을 구천에서까지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오매불망 피눈물이 맺힙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저 하나 딸을
금지옥엽처럼 예뻐해 주시던 나의 아버지!
이제 우리 창원 유족회 노치수
회장님과 유족들이 반드시 영령들의
위령탑 건립과 명예를 회복시키겠습니다.
어린 저를 큰 사랑으로 예쁘게 키워주신
그리운 나의 아버지 이제는 부디 평화의
낙원에서 고통 없이 편히 영면하옵소서.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소중한 유산 형숙 올립니다.

2020년 6월 13일.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괭이바다 #창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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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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