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위해, '불교의 방식'으로 꾸준히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인터뷰

등록 2019.12.18 18:05수정 2019.12.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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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 톨게이드 수납노동자 점거 현장,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촉구 기도회, 차별금지법 제정 전략 국회토론회, 故 김용균 추모식…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노동·인권 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의 양한웅 위원장과 김한나 활동가 역시 그렇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기 힘들지 않느냐 묻자, 곧바로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첫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벌써 2020년 사회노동위원회의 차별금지법 관련한 새로운 활동 계획을 풀어놓는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어떤 의미일까?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종교 기반한 여러 인권단위들 중에서도 스님들과 함께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곳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만났다.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한나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2012년에 '노동위원회'로 시작했어요. 당시에 집행부에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투쟁을 함께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그 전까지는 종단에 이런 기구가 없었어요. 2016년부터 '사회노동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었고, 노동뿐만 아니라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활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현재 확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노동, 성소수자, 빈곤, 인권 등의 의제에 저희 여력이 되는대로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양한웅 : "활동가는 저희 둘이고,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약 스무 분이 계십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위원장, 김한나 활동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두 분이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양한웅 : "저는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했어요. 제가 한국통신 노조 활동을 하다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조계종에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질 때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서…. 불교와 노동 부분을 두루 잘 알아야 할 수 있고, 특히 불교를 모르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김한나 : "위원장님이 불자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으세요. (웃음) 저는 2016년에 사회노동위원회로 확장할 때부터 상근활동가로 활동했어요. 전에는 이주노조 관련한 활동을 하기도 하고, 불교 관련 단체에 계속 있었어요."
 
- '노동위원회'에서 2016년에 '사회노동위원회'로 전환한 계기가 있나요? 어떤 부분들이 바뀌었는지?

양한웅 : "사회노동위원회로 변화하게 된 계기는 세월호예요. 노동위원회로 활동을 하니까 사람들이 '왜 노동위원회가 세월호 활동을 하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어요. 사실 노동과 사회·인권 문제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래서 전환하게 된 거죠. 그 이후에는 인권, 빈곤 등의 이슈에도 거리낌 없이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요. 위원회 체계도 바뀌고, 당시에 위원회 소속 스님이 20명이 늘어난 거예요. 예산도 세 배로 늘었어요."

사회적 약자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 한다는 것
 

인사혁신처 규탄 기자회견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019년에 사회노동위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했던 활동은 어떤 것인가요?
김하나 : "작년에 저희가 베트남 전쟁 양민 희생자분들과 베트남 스님을 모시고 추모제를 했어요. 양민 학살에 대해서 참회하고 추모도 하는 계기였는데, 한국에서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현지에 가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올해 다녀왔어요. 스님들께서 생존자이자 피해자인 분들을 만나서 당시 이야기를 듣고 참회하는 기회가 되었죠. 하반기에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침몰원인 규명과 유해수습 촉구하는 기도회를 꾸준히 했어요. 저희가 어쩌다보니 추모제 전문이 되었어요. 출입국 단속을 피하다가 사망한 이주노동자 딴저테이씨 추모제, 빈곤으로 돌아가신 송파 세모녀 추모제, 제주 4.3이나 광주 5.18 희생자분들을 위한 추모제까지…."

- 그런 활동에 주로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양한웅 :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슬픔과 고통에 함께 하는 것, 실천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신념과 목적이 강하죠.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 그리고 스텔라데이지호와 같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 분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주로 해요. 세월호도 세월호 인양과 미수습자,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에 대한 대응 활동을 주로 했어요. 남들이 안하는 것만 골라서 해요. (웃음)"

- 조계종이 사회·노동 투쟁현장에 연대하거나 스님들께서 함께하시면 당사자분들은 힘을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김한나 : "스님들께서 함께 기도해주시기도 하니 조금 힘이 되고 위안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양한웅 : "스님들께서는 '우리가 가면 도움이 되냐'고 여쭤보세요. 그러면 '도움이 된다'고 하죠. 스님과 같은 종교인들이 가면 그 자체가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힘이 되고, 또 사용자나 정부에게도 부담이 돼요. 그래서 악착같이 스님들과 가죠.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예요. 목사님, 신부님들과도 이야기해서 함께 가고."


- 다른 종교들과도 함께 활동을 많이 하시나요?
김한나 : "3대 종교 노동인권협의회가 있는데, 천주교 서울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와 함께하고 있어요. 유기적으로 긴급하게 움직여야 할 때가 있죠. 서천 국립생태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자회견 갔다가 알게 되었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3대 종교가 함께 현황파악을 하고 같이 원장을 면담했어요. 다음 날에는 노조 집행부와 또 면담하고, 이후에 협상이 곧 타결됐고요."

- 3대 종교가 함께 활동할 일이 자주 있겠네요.
김한나 :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중에는 서로 적대감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종교계는 가서 양쪽 말도 들어보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사측이나 정부에는 서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 구슬리기도 하고."
양한웅 : "3대 종교가 중재, 협상 참관 등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나마 정권이나 정치인들이 들어주는 척 하는 게 바로 종교계거든요. 우리가 가면 만나주기도 하고, 교섭이 뚫리기도 하고요. 인권단체는 안 만나주는데, 종교계를 안 만나주면 욕을 듣잖아요. (웃음)"

- 종단 내부에서 노동·사회운동을 같이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힘들진 않으셨나요?
양한웅 : "처음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어느 교수가 신문에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 일의 변천이 심한 상황을 비유)라고 기고를 했어요. 조계종 안에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세상이 확 바뀐 거라고.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흐지부지 하다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초미의 관심이었어요. 저는 스님들을 모아서 집회에 나가는 방식, 노동운동과 같은 방법을 택했으면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기도회, 오체투지, 삼천배와 같은 불교적인 방식으로 활동을 해 왔는데, 그게 계속 스며들어갔어요. 그런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불교 내부에서도 사회적 소통기구가 필요하다고 많이 인식을 하게 되었죠."

- 말씀하신 불교적 방식의 활동이 절대 쉽지 않기도 하잖아요.
김한나 : "힘들죠. 그런데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우리가 단식, 고공농성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양한웅 : "활동하다보면 진실 되게 하는 활동인지, 대충 시간 때우는 건지 누구보다 노동자가 잘 알아요. 우리가 요령을 피우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간절함이 없으면 수많은 노동자가 알아차렸을 거예요. 우리가 최선을 다 해서 기도하고, 법회하고, 싸우면서 활동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이 노동자 대중들로부터 기본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고요. 차별금지법도 그렇게 해야 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국사회의 과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김한나 활동가, 양한웅 위원장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도 참여하면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도 활발하게 연대하시는데,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양한웅 : "무지개행동에는 2014년 서울시인권조례 사안으로 서울시청 점거농성에 결합하고 난 이후에 들어갔어요. 최근에는 워크숍도 하고, 작년에는 부산, 대구, 제주도 퀴어문화축제에도 다녀오고요. 반대하는 스님은 거의 없어요. 천만 다행이죠.
김한나 : 보수적인 분도 많으시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면서 스님들께서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도 성소수자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해요. 성소수자 초청 산사음악회, 성소수자 부모 초청 행사도 진행했고요."
양한웅 : "불교는 사람에 대해서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고, 나타난 현상이라고 봐요. 인간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두 전생의 업으로 태어나고 죽으면서 끊임없이 윤회를 반복하고 있고,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거죠. 또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 탐진치(욕심, 화, 어리석음)가 사라지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차별 없는 세상, 눈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차별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지향하는 교리가 불교라고 생각해요. 차별급지법도 그래서 중요하고요."

- 2020년에 사회노동위원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면서요?
양한웅 :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도회를 해보려고 해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2주에 한 번씩, 1년이든 2년이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꾸준히 하는 거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같이 하고, 성소수자, 빈곤, 장애 등 각 운동단위에서도 함께 하고, 스님들 발언만 하면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문화노동자 동지들을 초청해서 공연도 하고요."
김한나 : "이런 방식이 저희가 할 수 있는 활동이죠. 저희 종단에서도 매년 신년 기도회를 하면서 몇 년 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종단이 애쓰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으니까요. 시작을 잘 해서 지지치 않고 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양한웅 : "스님들이 함께 모인 사회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정을 했어요. 스님들께 '잘 생각 하세요'라고 말했죠. 한 번 결정하면 계속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하시겠다고 해요. 차별금지법은 우리 한국사회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 차별과 혐오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런 시대에 종교가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한나 : "종교가 힘없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면, 종교의 역할이 무엇일지 의문이에요."
양한웅 : "차별이 없어야 할 종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인데… 불교뿐만 아니라 세속화되고 자본화된 종교가 현재의 틀을 벗어나서 종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하고, 그 계기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양한웅 : "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아주 긴 싸움이 될 테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한국사회에서 힘없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힘들더라도, 사람도 많이 모이지 않더라도 모두 합심해서 한다면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반드시 제정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약한 힘이지만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한나 : "저희가 꾸준히 하면 우리 스스로 무지했던 부분들이 변화하면서 서로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캠페인이 되고 공론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공론의 장을 자꾸 만들어야 많은 분들이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요. 그러면서 혐오와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 소식지 '월간 평등업'에도 게재됩니다.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차별 #혐오
댓글2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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