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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서 쓰고 '태극기부대' 안으로 들어간 까닭

[영화 '삽질' 전국 투어] 감독의 편지

등록 2019.11.28 18:21수정 2019.11.2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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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제작한 4대강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은 10만인클럽(010-3270-3828)의 소중한 후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삽질>의 원작도서는 김병기 감독이 펴낸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오마이북 출간)입니다. 많은 응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26일) 고속버스를 타고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안동중앙아트씨네마에서 열리는 영화 <삽질>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동환경운동연합 김수동 의장님의 사회로 진행됩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뒤 시사회 및 언론 인터뷰에 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는데, 모처럼 혼자 있는 시간에 차 안에서 지난 한 달을 떠올려 봅니다.

[덤 앤 더머] 두 바보 기자가 울음 터트린 까닭
 

11월 13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뒤 찍은 인증샷 ⓒ 김병기

지난 13일, <뉴스타파>가 주선한 영화 시사회 때 1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김종술 기자가 울었습니다. 영화에 나온 큰빗이끼벌레를 먹어야 했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였습니다.

"4대강 사업 기사를 쓴 뒤 광고주 압력으로 제가 운영하던 지역신문사 문을 닫고,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3~4년 정도 4대강 기사만 쓰면서 버텼지만, 더 이상 빚을 낼 곳이 없었죠. 그래서 집을 샅샅이 털어서 나온 돈 2500원과 중고 컴퓨터를 판 돈 3000원을 가지고 마지막 취재에 나섰습니다. 가지고 간 빵이 다 떨어지고, 금강 물을 먹으면서 버텼는데...(울먹)"

옆에 있던 저는 "청승맞게 왜 그래, 바보처럼"이라면서 김 기자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김 기자가 큰빗이끼벌레를 발견한 것은 2014년 마지막 취재에 나섰을 때였습니다. 김 기자가 그때 말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다른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궁창 냄새 10배가 납니다. 손가락 두어 마디 정도 되는 만큼 떼어서 입에 넣었더니 시큼하더라고요. 몇 번 씹다가 꿀꺽 삼켰습니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생명체인데, 그냥 '괴생명체가 나타났다'고 기사를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내 몸에 나쁜 증상이 보이면 강의 생태계에도 나쁠 것이라고 생각해서 먹고 기사를 쓴 거지요."

요즘 검증 없이 받아쓰기하는 언론들을 가리켜 '기레기'라는 말이 회자되는데, 김 기자는 온몸으로 검증하면서 4대강의 죽음을 고발해 왔습니다. 영화 <삽질>을 만든 것은 김 기자와 같은 수많은 저항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날엔 제가 울었습니다.

"이 영화는 혈세를 낭비하면서 4대강을 망치고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기획 초기에 저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던 4대강 부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옆에 있는 김종술 기자처럼 죽어가는 4대강을 10년 동안 온몸으로 고발해온 저항자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울컥)"

영화 기획 초기에는 김종술 기자 등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생각이었다는 말을 하려다가 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김 기자와 함께 숙소에 들어와 카드키로 작동되는 엘리베이터 사용법을 몰라 안내데스크에 전화하고, 밀면 열리는 방인데 손잡이를 당기면 되는 줄 알고 카드키를 10여 번 갖다 대며 '네가 맞니, 내가 맞니' 하면서 실랑이를 했습니다. 결국 안내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해결할 정도로 두 기자는 4대강을 빼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 기자입니다.

한편으로는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12년 동안 4대강 사업을 추적한 영화 <삽질>을 세상에 쏘아 올린 것은 이래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 후배 기자가 이런 우리를 보면서 '덤 앤 더머 같다'고 말했지만 저는 <오마이뉴스>의 창간 모토인 시민기자와 상근기자의 환상적인(?) 결합인 듯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어떤 유서] 적진 깊숙이 들어온 느낌
 

광화문 광장에 차린 영화 '삽질' 홍보 부스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태극기부대. ⓒ 김병기

 
저는 최근 핸드폰에 유서까지 썼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4대강 사업을 취재한답시고 전국을 다니면서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남기는 글이었습니다. 광화문에서 한국 영화 100주년 행사가 있던 10월 26일의 전야였습니다. 그다음 날 저는 대한애국당 등 태극기 부대 한가운데에서 부스를 차려놓고 영화 <삽질>을 홍보해야 했습니다.

전날 저녁 산책을 하다가 생각하니, 4대강 사업을 주도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오 전 의원 등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대형 홍보물을 태극기 부대 앞에 내놓는다는 것이 아찔했습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핸드폰에 A4 용지 한쪽 분량의 유서를 썼더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음날 광화문 광장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밤샘 기도회를 한 어르신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박정희' '이승만' '박근혜'를 호명하며 '아멘'이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은 부스 앞을 오가며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날렸습니다.

"적진 깊숙이 들어온 느낌, 후덜덜~~ 영화 <삽질> 부스 앞에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심장이 쫄깃하네요 ㅠㅠ. 태극기를 든 할아버지는 내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 영화 14일 개봉하네, 씨X.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서 한 사람도 보지 못하게 하자구'라고 하네요."

약간의 실랑이는 있었지만, 전날 유서까지 쓴 것이 무안할 정도로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제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올린 마지막 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오늘 태극기 부대원인 이 할아버지, 4대강을 살려야 한다면서 사진기 앞에서 승리의 V자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로 당신들이 영웅'이라면서 과분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영화 <삽질>로 보수와 진보가 대동단결! 그 가능성을 확인한 대단한 캠페인이었습니다."

태극기 부대원들도 <삽질> 포스터에 스티커 붙이기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강물은 흘러야 한다"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이들에게 <오마이뉴스> 취재수첩을 무료로 증정했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유서까지 쓰면서 전날부터 호들갑을 떨었는데, 머쓱해졌습니다. 하지만 강을 살리자는 '상식'을 인정하는 데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응원] 백기완, 이철수, 박원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삽질' 홍보포스터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 김병기

 
개봉 전 시사회 때 꼭 모시고 싶었지만 아직도 영화를 보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맨발의 백발투사'로 불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입니다. 몇 달 동안 병상에 누워 계셨습니다. 11월 7일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몸무게를 여쭤보니 '42kg'. 거리에 나서서 사자 같은 갈깃머리를 휘날리며 호령하던 기백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간 영화 <삽질> 엽서를 보여드리자 한 손으로 쥐어서 사진을 찍도록 자세를 취해주셨습니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제게 힘이 되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백 소장님 곁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 채원희 연구원은 "백 선생님이 영화 <삽질>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라고 말씀해주셨다"고 전해주더군요.

백 소장님은 4대강 독립군 탐사보도 때 "날이 더우니 냉커피나 마시라"면서 격려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현장을 탐사보도할 때 전화를 걸어서 "지금 거기 기사를 봤는데, 낙동강 녹조가 그렇게 심하냐"고 우려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백 선생님을 <삽질> 엔딩 크레디트에 도움을 주신 분의 이름으로 올렸습니다.

15일에는 이철수 판화가께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방금 <삽질>을 보고 나왔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낯익은 양심가들과 치우지 못한 쓰레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쌓인 쓰레기를 치우기가 이렇게 어렵네요. 조용해지면 한번 봅시다."

감사하다는 전화를 걸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할 영화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 이철수 판화가와 함께 잠깐이나마 아스팔트의 거리에 엎드리며 4대강 생명평화 오체투지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이메일로 아래와 같은 '나뭇잎 편지' 한 장이 도착해 있더군요.
 

이철수 판화가의 나뭇잎 편지 ⓒ 김병기

 
"한가한 때가 아니지만 시간을 내서 <삽질>을 보았습니다. 수십조를 들여 강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눈먼 돈이 도적들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그 도둑놈들 건재합니다. 적폐의 일부인 거지요. 썩을 물에 사는 깔따구 유충, 큰빗이끼벌레 같은 인간들입니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운 환경 영웅들 얼굴도 보았습니다. 훈장이라도 주고 싶었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를 받아보는 8만여 명의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였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께서도 "시사회 때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응원 동영상과 함께 아래와 같은 손글씨 엽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내준 '삽질' 응원 글 ⓒ 김병기

 
영화 <삽질>을 개봉한 뒤 많은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감독인 저와 주인공인 김종술 기자를 불러주시기도 합니다. 러닝타임 94분의 시간을 <삽질>에 할애해주시고, 티켓을 구매하면서 응원해주고 계십니다. 생명평화의 정신으로 '4대강은 흘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만나는 게 반갑고 고맙습니다.

26일부터 <삽질> 홍보를 위한 지역 투어가 시작됐습니다. 이날 안동중앙아트씨네마에는 차로 2~3시간 거리를 달려서 영양군과 봉화군 등에서 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동네의 작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습니다. 다음날 울산언론발전을위한시민모임(상임공동대표 김정호)이 주관하는 130석 규모의 단체관람은 '만석'이랍니다.

투자배급사인 '엣나인필름'으로 공동체 상영과 단체관람 문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와 노동조합, 교육, 종교, 인권 단체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27일 현재 관객수 1만1천 명을 넘었습니다. 강을 살리자는 여론이 확산되려면 적어도 10만 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응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국민이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삽질> 극장 단체관람 혹은 대관을 원하실 경우 아래 내용을 참고하여 신청을 부탁드리며, 자세한 문의는 <삽질> 배급사인 엣나인필름(070-7017-3319, 평일 오전 10시~ 오후 7시)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단체 관람 최소 30명, 대관 상영 최소 100명, 세부조율 가능).

감사합니다.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 탐사취재 12년의 기록, 끝나지 않은 싸움

김병기 지음,
오마이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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