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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과 빼빼로에 밀려도 되는 걸까

정체불명 외래문화와 상술에 휘둘리지 않도록 생각의 근육 키워야

등록 2019.11.11 09:07수정 2019.11.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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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10월 31일이면 어디서건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콕 찍어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랫말이 늦가을에 어울리는 스산한 멜로디에 실려 사람들의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된 까닭이다. 발매된 지 4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해마다 오는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흥얼거린다.

그런데, '잊혀진 계절'의 위세가 예년만 같지 못한 것 같다. 벌써 10년도 더 된 우스갯소리지만, '붉은 노을'을 부른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문세라고 대답하면 구세대고, 빅뱅이라고 말하면 신세대라 눙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월 31일' 하면 순간 떠오르는 게 무엇인지를 두고 세대를 구분 짓는다고 한다.

물론, '잊혀진 계절'이라고 답하면 영락없는 구세대고, 신세대는 노래 제목은커녕 멜로디조차 낯설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10대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래를 난생 처음 들어봤다는 20대 청년들도 있다. 최근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지만, 수십 년간 10월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 했던 '잊혀진 계절'만큼은 되레 빠르게 잊히고 있는 셈이다.

이게 다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할로윈)' 때문이다. 어릴 적 어린이집과 유치원 시절부터 할로윈의 세례를 받아온 요즘 아이들에겐 10월 31일은 설날이나 추석 못지않은 '명절'이다. 아이들은 10월 초부터 할로윈을 기다리며 마음 설레어하고, 당일 입을 의상과 소품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을 한다는 경우도 있다.

할로윈을 공식 학사일정에 포함시킨 초등학교도 많고, 요즘엔 중학교에서도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는 양 행사를 치르는 분위기다. 심지어 일부 고등학교에서도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차원에서 할로윈을 활용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어릴 적부터 모두가 할로윈을 즐겨왔기 때문이란다.

알맹이는 버리고 껍데기만 받아들인 천박함

주변의 여러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학교 축제를 해마다 10월 31일에 맞춰 치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당 학교 선생님들의 설명에 따르면, 일단 학생회에서 학년 초 축제날을 할로윈에 맞춰달라고 강하게 요구한다고 한다. 더욱이, 할로윈에 익숙한 20~30대 젊은 교사들이 동조하면서 아예 몇 해 전부터 요일과 상관없이 축제날을 10월 31일로 못 박게 되었다고 한다.

할로윈에 날짜를 맞춘 축제이다 보니, 무대 배경도 할로윈에 맞게 꾸며지고 공연의 내용도 대개 엇비슷하다. 학교마다 악마 복장을 한 채 걷는 할로윈 패션쇼와 할로윈 메이크업 콘테스트, 호박 가면 만들기 등이 빠지지 않는다. 학교의 특색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할로윈이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형국이다.

학교마다 축제날이 같다보니 팬시점이나 마트 등 상가들이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할로윈 상품 진열대를 따로 만들어놓는가 하면,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이라는 이름을 써 붙여두고 호객하는 풍경도 흔하다. 참고로, '트릭 오어 트리트'란 '과자를 안 주면 장난을 칠 것'이라는 뜻으로, 아이들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할로윈의 풍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할로윈에 친구들끼리 과자 등 선물을 나누는 건 어느새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일 서로 데면데면해지지 않으려면 담임교사들도 학급 아이들에게 싸구려 사탕 하나씩이라도 건네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자발적으로 기괴한 복장 차림으로 아이들 앞에 서는 젊은 교사가 있는가 하면, 할로윈에 익숙지 않은 나이 든 교사들에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날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이유로, 할로윈 행사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할로윈의 본뜻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신자 아닌 사람이 부활절을 그저 달걀 먹는 날로 여기듯 시끌벅적한 행사만 남은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할로윈을 굳이 '명절' 삼는다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단절된 사회에서 이웃과 교류하는 계기로 삼을 때라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할로윈을 앞두고 영어 이름을 짓도록 했다는 한 아이의 천진난만한 '증언'은 알맹이는 버리고 껍데기만 받아들인 우리의 천박함을 보여준다. 그의 영어 이름은 '데이비드(David)'였는데, 이후 영어 보습학원을 다니면서도 계속 사용한 덕에 진짜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린 것 같다고 했다. 그가 다닌 유치원 이름도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였단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교육 절실

학교마다 할로윈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을 무렵, 이곳 광주의 모든 학교 교문엔 똑같은 크기와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올해 11월 3일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난 지 90년이 되는 날로, 광주광역시와 시교육청이 주관하는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민족운동이라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정부는 '학생의 날'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그런데, 매일 교문을 드나들면서도 현수막에 눈길을 주는 아이는 드물다. 그래선지 11월 3일이 광주학생항일운동은커녕 '학생의 날'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5.18과 8.15를 헷갈려하는 마당에 그깟 '학생의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대수일까 싶지만, 불과 사흘 전 할로윈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못내 서운하다.

근래 들어선 학교에서도 기념행사를 생략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3.1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처럼 '학생의 날' 즈음이면 기념행사를 갖거나 계기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았는데, 요즘엔 웬만해선 찾아보기가 힘들게 됐다. 교사들의 관심마저 사위어가는 마당이니, 이러다 달력에서조차 이름이 누락될까 두려울 지경이다.

할로윈을 뻑적지근하게 보낸 아이들은 열하루 뒤 또 다른 '명절'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이른바 '빼빼로 데이'가 그것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특정 제과업체가 광고에 적극 활용하면서 아이들에겐 11월 11일은 봄철 '발렌타인 데이' 못지않은 중요한 날이 됐다. 당일 빼빼로를 주고받지 않는 관계라면, 친구가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반면, 아이들 중에 이 날이 정부가 농민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한 '농민의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06년부터 정부가 나서서 '가래떡 데이'로 바꿔 부르자며 줄곧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빼빼로 데이'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되레 정부가 특정 제과업체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조롱마저 들린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탓할 순 없다. 무릇 교사라면 어려서 할로윈과 빼빼로에 길들여지기 전에 다른 볼거리, 먹거리, 생각거리, 즐길 거리를 발굴해 아이들 앞에 펼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정체불명의 외래문화와 특정 기업의 상술에 휘둘리지 않도록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결국 열쇠는 교육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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