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못하면 지방의회가 한다"... '살찐 고양이 조례' 막전막후

[스팟 인터뷰] '살찐 고양이 조례' 발의한 김문기 부산시의회 민주당 의원

등록 2019.05.08 19:02수정 2019.05.0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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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회의 모습. ⓒ 부산광역시의회

 
부산시의회가 '큰일'을 벌였다.

8일부터 부산광역시 산하 공사·공단·출자출연기관의 기관장·임원의 연봉이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7배(기관장)·6배(임원)을 넘지 못하게 됐다. '부산광역시 공공기관 임원 보수기준에 관한 조례'가 시의회의장 명의로 공포됐기 때문이다. 조례가 공포된 이날 오전 9시를 기준으로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의 장의 연봉 상한은 1억4660만 원가량, 임원 연봉 상한은 1억2570만 원가량이 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6년에 발의한 '살찐고양이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가운데 광역의회에서 '살찐고양이조례'가 통과돼 효력을 얻은 것이라 그 파장이 작지 않다.

이 조례를 발의한 김문기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의원(동래구3)은 "다른 광역시의회에서도 들불처럼 조례 제정 움직임이 일 것으로 본다"라며 "국회가 못하면 지방의회가 한다는 엄청난 선례"라고 자평했다.

조례가 공포되기까지 난관도 적지 않았다. 지난 3월 29일 부산시의회에서 이 조례가 통과됐지만, 부산시는 오거돈 시장 명의로 '조례안 재의요구안'을 냈다. 다시 검토해달라는 요구의 근거는 법제처의 유권해석, 행정안전부(행안부)의 사전검토 의견이었다.

법제처는 "기관장의 보수 상한선을 제한하는 것은 (임면권자인) 단체장의 권한을 의회가 적극적·사전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써 단체장의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라며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으니 입안에 신중을 기해달라"라고 해석했다. 행안부도 이에 동조했다. 사실상 정부가 브레이크를 건 것. 하지만, 부산시의회는 지난 4월 30일 '살찐 고양이 조례'를 재의결했다. 재적의원 47명 중 44명이 찬성,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물론 또다른 난관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안부가 대법원에 '조례 효력 정지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문기 의원은 "행안부가 대법원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갈지는 모르겠지만, 양극화로 점철된 사회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는 쉽게 소송을 걸 것 같진 않다"고 내다봤다.


국회도 못한 '큰일'을 벌인 부산시의회, 조례 발의의 핵심적 역할을 한 김문기 의원에게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8일 이뤄진 전화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공공기관 성과는 미흡한데 연봉은 높아... 이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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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부산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동래구3). ⓒ 김문기 페이스북

 
- 오늘 조례가 공포돼 효력을 얻었다. 소감은?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의 변화와 혁신이 기대된다. 물론 부산시의 미온적인 태도는 유감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변화와 혁신이란 기치로 새로운 부산시 집행부가 당선했는데, 이미 통과된 '살찐 고양이 조례'에 대한 재의를 요구해, 변화와 혁신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재의결까지 됐는데 시장이 조례를 공포하지 않았다. 결국 시의회 의장이 공포했다. 부산시가 의회에게 자신의 역할을 떠넘긴 것이다.  물론 부산시가 직접 나서 '살찐 고양이 조례'를 공포하기 부담스러워 행안부 눈치를 봤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부산시가 그런 것도 적극적으로 못한다면 나중에 뭘 할 수 있겠나."

- 왜 '살찐 고양이 조례'를 발의했나.
"갑자기 나온 조례가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8대 의회를 개원하면서 시의원들이 부산시 최초로 공사·공단·출자출연기관 등 공공기관장의 인사청문회를 도입했다. 부산시의회가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때 2소위에 참여하면서, 공공기관에 대한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성과는 제대로 못 내면서 사업비는 오르고, 연봉이 오르더라.

변화와 혁신의 첫 단계는 공공기관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봤다. 다른 시·도의 공공기관과 비교해보니 부산시 공공기관이 전국 평균보다 연봉을 더 받고 있더라. 기관장·임원에 대해 혁신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성과는 미흡하고 임금은 치솟는 구조가 지속될 것 같았다. 공공기관의 경영을 합리화 하고 공공성을 살리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조례를 발의했다. "

- '저성과 고임금' 문제는 왜 발생한다고 생각하나.
"지난 지방선거 이전까지 특정 정당이 30년동안 부산시에 집권했다. 부임하는 시장마다 자기 사람들을 공공기관장에 앉혔다. 그런데 이 기관장들의 임금을 지자체장(부산시장)이 정하는 구조다. 얼마 올리자 하면 그대로 실현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봤다."

- 기관장은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7배, 임원은 6배로 했다. 산출근거는?
"연봉을 깎자고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연봉 현황을 보니까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7배, 6배를 받고 있더라. 여기서 더 이상 늘리지는 말자, 그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조사해보니 최저임금 월 환산액의 6~7배가 넘는 돈을 연봉으로 받는 기관장은 몇 군데 안나오더라."

민주당 시의원 발의, 민주당 시장 '디스', 민주당 정부까지 제동...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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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부산시장. 사진은 지난 1월 28일 오후 부산시청에서 부산롯데타워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정민규

 
- 왜 오거돈 시장은 '다시 논의해달라'고 했을까. 민주당 시의원이 발의한 걸 민주당 시 정부가 '디스'한 격이다.
"사실 시장님이 혁신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시장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부산시의 고위공직자(실·국장)들이 부산 시정에 관여하고 의사를 결정한다. 모두가 반대하는데 시장 혼자서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  

부산시 고위공직자들의 변화 의지가 없음이 '조례 재의요구'로 드러났다고 본다. 부산시 출자기관장이나 임원으로 시 고위공직자들이 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자기 자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 버리라고 시의회에서 강하게 이야기했다."

- 법제처는 왜 '지자체장 자율성 침해'라는 해석을 내렸을까. 향후 행안부가 법제처 해석을 기반으로 '조례 효력 정지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공무원 집단이 보수적이지 않나. 법제처가 법령이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판단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소득불평등이 날로 심해지지 않나.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못 본 것이다. 행안부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양극화로 점철된 사회 분위기를 봤을 때 쉽게 소송을 걸 것 같진 않다."

"심상정, 고맙다고 전화... 지방에 조례 제정 들불처럼 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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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부산시의회에서 '살찐 고양이 조례'가 재가결된 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환영의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 심상정 페이스북

 
- '살찐 고양이 조례'가 국회로 넘어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조례가 처음 통과 됐을 때, 심상정 의원한테 전화가 왔었다. 고맙다고 하더라. 부산시의회의 조례안 통과로 국회서 잠자고 있는 '살찐 고양이법'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조례를 발의한 뒤 다른 시도 광역의회 의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부산시의회 조례가 통과되고 공포까지 됐으니 이제 다른 지자체 광역의회에서도 들불처럼 조례 제정 움직임이 일지 않을까 예상한다. 어제(7일) 심상정 의원과 정의당 광역의원들이 '살찐 고양이법' 제정 추진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살찐 고양이법'도 급물살을 타지 않을까 점쳐 본다. 국회가 못하면 지방의회가 한다는 엄청난 선례를 부산시의회가 보여준 것이다. 지방자치 분권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살찐고양이법 #살찐고양이조례 #김문기 #오거돈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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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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