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1일은 동학농민혁명 첫 국가기념일입니다

동학혁명군위령탑에서 숙연해졌습니다

등록 2019.05.02 09:35수정 2019.05.0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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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탑이 있는 계단을 오르며 ⓒ 한미숙


   

위령탑 좌우로 돌탑이 있다. 돌탑 옆으로 울타리처럼 황토담이 둘러있다. ⓒ 한미숙

 
        

동학혁명군위령탑 ⓒ 한미숙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가 있었다. 대여섯 살 때 밖에서 놀다 들어와 심드렁해지면 괜히 엄마를 졸랐다. 잠투정이었던가. 잠이 올 듯 말 듯, 비올 때 날궂이 처럼 뭔가 캥겨 칭얼대면 엄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르팍에 올렸다. 여름 한낮이면 엄마 손에 들린 부채바람을 타고 노래 가락이 잠잠히 흔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노래는 어린 마음에도 구슬펐다. 그냥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노래를 들으며 나는 시나브로 혼곤한 낮잠에 빠졌다. 자장가로 들었던 그 노래가 동학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을 상징하며,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한 민요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고등학교때 역사(국사) 과목을 담당했던 한 여선생님은 때때로 시대가 겪었던 일을 전해주면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였다. 분하고 억울하여 울분에 찬 선생님의 심정은 수업을 듣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 특히 근대로 오기 직전,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의 시점에는 우리 스스로 애국투사가 되어 당장에라도 교실 밖을 박차고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그 정신은 3.1절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으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어릴 때 들었던 자장가와 동학혁명

'녹두장군'은 전봉준을 상징한다. 녹두는 콩알보다 또 팥알보다 작다. 전봉준은 그만큼 키가 작았다. 그의 왜소한 체구와 달리 단단한 기개만큼은 일본사람도 그 앞에서 작아지게 만들었다. 교과서에서 본 전봉준이 일본군에게 붙잡혀 서울로 이송될 때의 꿋꿋하고 당당한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또렷이 떠오른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관군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어 삼남(전라도,경상도,충청도)지방을 점령했다. 다시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공주 우금치 전투를 벌이던 중, 잘 훈련된 일본군이 개입하며 우수한 근대무기로 무차별 사격을 가하자 죽창을 든 혁명군은 거의 전멸했다.

부활절이 지난 4월 28일(일), 교회소모임으로 만나는 몇몇 사람과 우리는 공주 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탑을 가보기로 했다. 한 회원이 언젠가 가봤을 때, 위령탑주변이 풀이 우거지고 관리가 잘 안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동학농민군의 운명을 건 혈전의 장소. 우리가 갔을 때는 주차장과 위령탑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위령탑과 돌탑사이에 있는 봉화대(?) ⓒ 한미숙

   

만져보면 황토 흙을 바른 매끄러운 느낌이다. ⓒ 한미숙

   

동학혁명위령탑 안내문 ⓒ 한미숙

 
위령탑 근처의 나무들은 한 차례 비가 지나고 나서 그런지 푸른 기운이 감돈다. 연둣빛은 점점 진한 녹색으로 선명하다. 우직하게 서 있는 위령탑 좌우 양쪽의 돌탑에 바람이 휘 분다. 마치 죽창을 든 동학농민혁명군들의 함성이 바람으로 지나가듯.

동학혁명군위령탑' 안내문의 내용에서는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 11월 11일 천도교산하 동학혁명위령탑 건립위원회에 의해 건립 됨.>이라고 쓰여 있다. 
그 아래의  <... 1985년에는 한 사회단체에 의해 동학혁명과의 계승관계 등 이념갈등 소지가 있는 비문의 일부 문구(5.16혁명, 10월 유신, 박정희 대통령 등)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음....> 이라는 글로 미루어 보아 현재 우리가 만난 위령탑은 이후 새로 손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글은 이 대목에서 참고가 된다.
박정희 개인의 견해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동학접주여서 어릴 적부터 동학에 각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기념탑 등에 반영되었다. 1963년에는 정부 주도로 황토재에 갑오동학혁명 기념탑이 세워졌고, 1973년에는 정부의 후원으로 천도교에서 공주 우금치에 동학혁명군 위령탑을 건립하였다. 동학혁명이란 용어는 천도교에서도 수용되었다. 따라서 농민은 동학에 끼어들 틈이 없었는데 농민을 삽입하면 계급 투쟁적 성격이 강해진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이선근 등 어용사학자들의 협조가 컸다. 

-<이이화의 못다 한 한국사 이야기>(푸른역사, 2000) 중에서
 


'인내천' '우금티를 넘어 평화로~' '대동세상' 의 글이 있는 펼침천을 따라 오르는 길. ⓒ 한미숙

   

언덕을 넘으면 이렇게 탁 트인 너른터가 나온다. 기념일에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할 것 같다. ⓒ 한미숙

  

이정표 사이로 산을 오르는 길. ⓒ 한미숙

   

다양한 모양의 나무장승. 그 장승에 써 있는 글들 또한 동학의 정신이다. ⓒ 한미숙

   

농민세상을 외치는 장승 ⓒ 한미숙

   

누워있는 설치물이 마치 그날에 스러진 동학군인 것 같다. ⓒ 한미숙

       
위령탑을 지나 옆으로 난 언덕길을 오르면 탁 트인 너른 터가 나온다. 나무로 만든 각기 다른 장승들이 한 줄로 서 있고, 한 켠에는 설치물로 세워놓았을 사람형상의 '작품'이 길게 누워있다. 서 있던 형상이 비바람에 쓰러진 것으로 짐작된다.

 동학농민군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최대격전지 공주 우금치전투는 1894년 남북연합농민군이 공주감영을 점령하기 위해 관군 및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수차례 벌이며 패배한 곳이다. 그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을 걷다보니 모두들 숙연해진다.
  

돌아가는 길. ⓒ 한미숙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의 갖은 수탈을 자행함으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 오는 5월 11일(토)은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첫 기념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각종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개정안이 심의, 의결되어 기념일로 제정되었다고 밝혔다.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을 기념일로 최종 선정됨에 따라 기념식을 개최하며,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가 재인식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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